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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Mar 18. 2024

‘시발’에서 글로벌로 성장한 K-자동차

태초에 시발이 있었다.

 ‘광나루 한강공원 수영장행 340번’ 

몇 년 전 미얀마 양곤에서 본 서울시 시내버스다. 서울에서 보던 시내버스 모습 그대로였고 한글도 지우지 않은 그 모습 그대로였다. 거짓말 같은 진짜다. 그 버스를 보자마자 무작정 뛰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예전에 타고 다녔던 340번 버스라 반가웠고, 낯선 땅에서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한글 때문에 흥분해 나도 모르게 냅다 뛰었던 것이다. 가까이 가서 보니 겉모습은 서울 시내에서 달리던 모습 그대로이긴 한데 이곳저곳에 미얀마 글자로 도배되어 있었다.  

미얀마 양곤의 한국산 중고 시내버스: 서울시에서 운행하던 340번 버스

중고버스를 수입해 다시 도색하지 않고 운행하는 이유가 비용 문제도 비용 문제지만 한국에서 온 버스라는 것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중고 버스라도 한국산에 대한 믿음이 깊다고 현지 가이드가 귀띔해 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수명이 거의 다 되어 가는 버스를 한국산이라며 좋은 마음으로 타는 미얀마 사람들에게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과거 일본이나 미국이 쓰던 중고품들을 들여와 써야 했던 우리나라가 겹쳐졌기 때문이다. 하긴 세월호도 일본에서 쓰던 중고품 아니었던가. 우리나라에서 쓰던 수많은 한국산 중고 자동차가 동남아시아 등 제3세계에 수출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 뒤로 여행했던 라오스에도 역시 수많은 한국산 중고차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물론 지금 세계 각국에 돌아다니는 차가 모두 중고차는 아니다. 한국은 이제 세계 10위 안에 드는 자동차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최근 다녀온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에서도 어딜 가나 현대, 기아 등 한국산 상표를 달고 다니는 자동차를 볼 수 있었다. 요즘은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도 한국산 자동차를 종종 볼 수 있다. 격세지감이다.


불과 50여 년 전, 한국이 자동차를 만들어 수출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정주영 회장 말고는 없었다. 1955년 미군이 쓰다 버린 드럼통을 펴서 만든 최초의 자동차 始發(시발)에서 시작한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이제 세계 톱클래스 생산국으로 성장하였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발표한 ‘2022년 자동차 산업 평가 및 2023년 전망’ 보고서에 의하면 2022년 글로벌 시장에 수출한 K-자동차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코로나19 봉쇄로 인한 공급망 차질, 반도체 수급 부족 등 연이은 글로벌 악재에도 불구하고 230여만 대 수준이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시장 점유율 8.1%로 2021년에 이어 글로벌 3위를 유지했다. 우리나라 수출 규모에서 다른 산업 수출 규모가 워낙 커서 미미해 보일 수 있지만 불과 50여 년 전 드럼통을 펴서 만들던 나라가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강국이 되었다는 성과는 거의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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