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도 어린 나에게 오빠라니 이거 참!
“오빠!”
한적한 시장통에서 할머니한테 들었던 오빠 소리는 내가 들었던 오빠 소리 중 단연 압권이었다. 오빠라니? 이국 땅 소도시 시장통에서 할머니에게 오빠라는 모국어를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미얀마에서 K-드라마 인기는 상상이상이다. 주로 자막으로 방영하는 K-드라마를 자주 접하다 보니 드라마 속에서 자주 나오는 ‘오빠’라는 말을 배우게 되어 나에게 격에 맞지 않게 쓴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이도 훨씬 적은 나에게 할머니가 오빠라고 부르는 사태를 겪고 보니 K-드라마 인기의 부작용쯤으로 생각되었다. 현지 가이드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이런 오해 요소가 몇 가지 더 있었다. K-드라마에는 유독 재벌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점과 유부남들도 애인이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런 드라마로 인해 한국인의 일반적인 가정 모습도 부잣집 모습으로 생각하게 되며 불륜이 일반적인 문화로 그려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드라마 한 편을 세계인들이 동시에 보는 OTT 시대 우리 문화에 대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드라마 작가들이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OTT 플랫폼 시대가 열리면서 K-드라마는 더욱 빠르고 넓게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 다양한 K-드라마를 접하게 된 세계인들은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색다른 재미에 빠져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K-드라마의 매력으로 신선한 소재, 다양성, 스피디한 전개, 현실적인 스토리, 표현의 섬세함 등을 꼽는다. 또한 K-드라마는 배우들이 장면 장면마다 섬세한 감정을 화면에 뿌려 놓는 것이 매력이라고 말한다. 드라마나 영화는 다른 어떤 콘텐츠보다 문화 전파력이 훨씬 광범위하고 파급력도 크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세계인들은 언어, 음식, 패션, 뷰티 등 모든 한국 문화를 간접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간접 경험은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게 만들고, 한국 음식에 대해 궁금해하며, 한국산 제품 구매자가 되기도 한다. 더 나아가 드라마 촬영지에 대한 방문 욕구는 한국을 여행지로 선택할 확률을 높여준다.
K-드라마의 인기는 최근에 일어난 일만은 아니다. 일본 중년 여성들 팬들에게 욘사마 열풍을 일으킨 겨울연가가 있었고, 동남아, 중동, 남미까지 전 세계에 인기리 방영되었던 대장금도 있었다. 이러한 K-드라마 인기와 함께 한류라는 말도 함께 널리 통용되기 시작하였다. 사실 ‘한류’의 어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1990년대 후반 중국에 불기 시작한 한국 대중문화 유행 흐름을 갑작스러운 추위로 비유해 ‘한류寒流’의 동음이의어 ‘한류韓流’로 표기하며 한국 대중문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했다는 설도 있고, 한국 대중문화 바람이 먼저 불었던 대만에서 ‘하일한류(夏日韓流 여름에 부는 한국 바람)’ ‘일진한류(一陣韓流 한바탕 한류)’ 같은 표현을 쓰면서 비롯되었다는 주장, 1999년 우리나라 문화관광부가 제작한 ‘韓流-Song from Korea’라는 홍보용 음반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종합해 보면 기원이 어디가 되었던 K-팝, K-드라마 등의 인기에 대해 1990년대 후반 한자 문화권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쓰기 시작한 용어로 보면 된다. 기원이 어찌 되었던 지금은 그 의미가 확장되어 한국 문화의 흐름을 말하는 것으로 통용되고 있으니 소모적 논쟁은 그만하기로 하자.
90년대 말부터 수출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에 알려지기 시작한 K-드라마는 그 잠재력을 바탕으로 코로나 팬데믹 시기 급속하게 확장한 OTT 플랫폼 시장에서 꽃을 피웠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오징어 게임이라는 신선한 K-드라마는 세계인들을 홀딱 빠져들게 하며 K-콘텐츠 붐에 불을 지폈다. K-콘텐츠는 지금 OTT 플랫폼을 타고 세계 문화시장에 그 영향력을 더욱 확장해 가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이제 전 세계는 궁금해하며 기사를 쏟아 내고 있다. ‘글로벌 스트리머들이 서울로 몰려드는 한국 TV붐의 내막’ 최근 올라온 미국의 대표적인 시사경제지 블룸버그의 헤드라인 문구다.
세계인을 홀딱 반하게 한 K-콘텐츠의 매력, 그 뿌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바로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힘이다. 한국인의 유전자 속에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K-이야기 유전자가 들어 있다. 19세기 초 천주교 포교를 했던 프랑스 신부들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 사람들은 천성이 돌아다니기와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한국천주교회사/1874)고 평가했다. 포교하는 입장에서 대상자 분석을 누구보다 더 면밀하게 관찰했을 것을 감안하면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것이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또 다른 기록을 보면 조선 후기(17세기 중엽)에는 돈을 받고 책을 빌려주기 위해 필사하는 세책(貰冊)이 유행하였다. 이는 한글소설의 성행으로 생긴 유행으로 청장관 이덕무는 ‘세책에 빠져 가산을 탕진한 사람이 있다’고 기록하며 과도한 세책으로 인한 폐해를 걱정하기도 했다. 조선 후기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힘들었던 시대에 책을 빌려 읽는 세책이 유행이었다니 밥을 굶어도 이야기는 굶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국인 유전자 속에는 분명 이야기꾼 유전자가 들어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좋아하는 K-유전자는 경제적 여건이나 글자를 모르는 백성을 위한 ‘판소리’ 탄생의 바탕이 되었다. 무성영화 시대 변사의 시초는 조선의 이야기꾼들이다. 이들은 청중을 자극하고 흥분시켜 이야기가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딱 멈추었다. 청중들이 뒷이야기를 재촉하며 돈을 던져야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이는 K-드라마가 제일 잘한다는 밀당 K-엔딩, 즉 일일 연속극을 마칠 때 다음 편을 반드시 보게 하는 고급 기술이다. 이런 K-엔딩이 진가는 몰아 보기가 가능한 OTT에서 마법 같은 효과를 보여주었다. ‘1편만 봐 야지’했다가 밤새 정주행 했다는 사람이 부지기수인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이렇듯 K-드라마, K-영화의 글로벌 인기도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한국인들이 이 땅에 살아오면서 체득한 문화, 즉 한국인의 섬세한 감정 표현할 수 있는 언어, 최고의 문자 한글, 한국인의 기질, 정서,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야기꾼 기질 등 다양한 K-문화 유전자가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