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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Jul 25. 2019

에라이 나도 나리 되긴 껐다.

청계산 종주기

에라이 나도 나리 되기는 껐다]

지난 주말, 해장 산행을 겸하여 네 시간 넘게 걸리는 청계산 종주를 감행했다. 원래는 몸 상태가 별로라 간략하게 이수봉까지만(1시간 반 거리) 오를 심산이었다. 허나 지금 한참 제철인 나리 한번 영접해 볼 욕심에 허덕대는 허벅지를 끌고 무리한 산행을 시도한 것이다. 

목적지는 청계산 매봉에서 옥녀봉 가는 길에 있는 ‘참나리 군락’지였다. 등짝으로 계곡에 폭포수 떨어지듯 흘러내리는 내 더러운 땀을 느끼며 마침내 당도하니 참나리는 보이지 않고 그냥 흔하디 흔한 장삼이사 필부필부 무명용사들뿐이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멀찍이 참나리 옷자락이 스치기에 언능 달려가 보았다. 군락이 아니라 참나리 하나가 꼿꼿하게 대를 올리고 화알짝 피어 있었다. 근데 가까이서 보니 참나리 꽃대 주변에 하얀 분가루 같은 것이 붙어있어 마치 상처에 고름 덮인 얼굴이었다. 선뜻 내키지 않아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다 포기하고 그냥 옥녀봉으로 향했다. 괜히 분한 마음에 땅바닥만 쳐다보고 걷는데 손 많이 타 보이는 얼굴만 말끔한 원추리가 눈에 들었다. 꿩 대신 닭으로 한 장 찍어 왔다.

오늘 핸드폰 사진 정리하다가 문득 든 생각, 

‘본질을 보지 못하고 그저 화장발만 탐했으니 너도 별 수없구나. 에라이 천박한 놈 같으니라고. 감히 참 나리님을 무시해? ‘나리’ 보는 눈이 고정도니 너도 ‘나리’ 소리 듣긴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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