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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홈즈 Jun 03. 2019

산다는 건 다 그런거래요

사건의 재구성


할머니:”언능 들어라”
할아버지:“미친나 니가 들어라”
할머니:“그냥 들어라”
할아버지:“싫다 니가 들어라”
등산로 초입 내팽개쳐진 등산지팡이를 사이에 두고 노부부가 설전을 벌이고 있다. 호기심천국인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 하였다. 허나 평소 빠른 발걸음으로 단련된 내 두발은 거기까지의 정보만 취득한 채 현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티 안 나게 걸음속도를 조절하며 사건현장을 최대한 긴 시간 관찰 하는 기술을 연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나고 나니 더욱 호기심이 극대화 되었다. 저 나이에도 저렇게 유치하게 싸우는구나. 그러니까 자빠져 있는 저 지팡이는 그냥 지팡이가 아니라 둘의 자존심이 걸린 지팡이라는 말이지. 음~

‘주말을 맞아 모처럼 노부부는 등산을 하기로 했다. 아침을 차려 먹고 간단하게 먹거리를 챙겨 산행을 시작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산을 오르던 중 남편이 어떤 말에 평소 성격대로 발끈하여 지팡이를 내동댕이쳤다. 젊어서부터 그렇게 속 썩이던 그 승질머리. 다시 그 지랄병이 도지니 아내는 참지 못하였다. 아내는 이제 더 이상 참을 일이 없다. “들어라” 아내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며 육박전도 불사할 태세다. 결국 참은 것은 아내다. 아내가 다시 지팡이를 들어 남편에게 건네고 산행을 시작한다. 마치 방금 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상이 취득한 정보로만 재구성한 사건의 추정 전말이다. 등산을 마치고 내려 오는데 내 추측이 맞는 듯하다. 저 앞에 그 노부부가 도란도란 얘기하며 하산 중이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그류? 안 그류?


※어제 청계산 국사봉 가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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