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만 영화 감상평
코로나가 창궐한 지 어언 2달이 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코로나를 두려워하지 않는 봄은 이곳저곳에서 불쑥불쑥 꽃들을 피워 낸다. 우주의 한 구석탱이 지구라는 작은 별에 붙어사는 지구족들의 하찮음을 새삼 느끼는 날들이다.
코로나가 창궐하건 말건 남들은 불금이라고 이 술집 저 고깃집 숨어서 여전히 흥청망청이다. 소심한 나는 조용히 술상을 차려 방구석에 똬리를 틀었다. 10년도 더 지나 이제는 영 스마트하지 않은 것 같은 스마트 테레비 버튼을 이리저리 누르며 영화 한 편을 골랐다. 작년 가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 김보라 감독의 ‘벌새’다. 원래 너무 유명하고 상 많이 받은 영화를 이상하게(아마 루저스런 콤플렉스일 지도 그도 아니면 그냥 승질드러븐 거고) 잘 안 댕긴다. 하나 벌새는 내용도 모르지만 그냥 보고 싶었다. 아니 보고 싶었지만 아무 기대 없었던 영화쯤으로 해두자.
영화의 배경은 1994년이다. 그 해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이듬해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었지. 지금 생각해도 마치 영화 같은 재난과 폭력이 난무하던 시대였지. 소주 한잔 홀짝이며 축 늘어진 채로 영화를 보노라니 추억과 뭔지 모를 분노 같은 감정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복학생인 나는 그때 알바로 연명하던 시기였다. 넋 놓고 보다가 극 중 영지 선생(한문학원)이 창가에서 불러주던 노래에서 정신이 번뜩 들었다. “잘린 손가락 바라보면서 소주 한 잔 마시던 밤~” 내 삶에서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았던 노래다. 그 시절 복학생은 노동을 잘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늘 노동해방을 부르짖었다. 허나 80년대 말 학생운동 끄트머리를 쫓다 군대 다녀온 복학생은 급변하는 조류에 혼란을 겪고 있었다. 거기에다 갑자기 고(苦) 학생이 돼버린 현실 때문에 하루하루가 뒤죽박죽이었다. 가슴에는 늘 울분을 담은 채 나는 그런 허한? 마음을 핑계 삼아 매일 술집에서 시간을 때웠다. 알바를 끝낸 저녁이면 학교 근처 술집에 틀어 박혀 후배들 앉혀놓고 조미료 잔뜩 묻힌 썰을 풀었다.
추억을 버무린 감상에 빠져 멍하니 영화 속을 헤매다 한마디 대사가 뒤통수를 후려쳤다.
“은희야, 너 이제 맞지 마. 누가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워. 알았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요즘 봄을 타는지 며칠째 머릿속이 평소보다 더 멍충이었다. 나 원래 추남이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봄도 가을스럽고 가을도 봄스럽고 이건 뭐 나이 드니 호르몬이 뒤죽박죽인가 보다. 호르몬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갑자기 눈이 먹먹해지며 가슴이 답답해졌다.
‘난 맞서 싸운다고 싸우며 살아온 줄 알았는데 문득 보니 나는 이미 가진 자? 였고... 여전히 맞는 사람 천지인 이 세상에 나는 지금 누구에게 감히 맞서 싸우라고 할 수 있을까? 성수대교 무너질 때 난 그 학원 선생(영지)처럼 열혈 학생이었는데...... 그 뒤로 난 무엇을 위해 싸웠던가?’
영화 속 노래가 귓가를 스치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잘린 손가락 바라보면서 소주 한잔 마시는 밤
덜걱 덜컥 기계소리 귓가에 남아 하늘 바라보았네
잘린 손가락 묻고 오는 밤 설운 눈물 흘리는 밤
피 묻은 작업복에 지나간 내 청춘 이리도 서럽구나
하루하루 지쳐진 내 몸 쓴 소주에 달래며
고향 두고 떠나오던 날 어머님 생각하며
술에 취해 터벅 손 묻은 산을 헤매어 다녔다오
터벅터벅 찬 소주에 취해 헤매어 다녔다오’
열심히 살아온 것은 맞는 거 같은데 지금 나는 그저 나이 먹은 그저 그런 사람 중 한 사람. 뭐 그렇다고 비양심적으로 살아오지 않은걸 다행이라 여기며(자기 합리화) 남은 소주를 마셔 버렸다.
코로나도 무서워하지 않는 이 따땃한 봄날에 나도 봄처럼을 바라며~
※한 줄 영화평:큰 사건이나 장치 없이 잔잔하지만 뭔지 모를 그런 게 올라오는 영화! 나이 들어서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