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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르 Apr 12. 2021

20210412 딸기철의 고민

과도하게 넘치지 않게 할 것


우리집에는 법적으로 아무관계 없는 아버님이 있다.

호칭은 불러본 적 없지만, 아저씨라고 할 때도 있고 아버님이라고 할 때도 있다.  결혼하기 전 진짜 시아버님은 돌아가신 지 오래여서 실물을 뵌 적 없으니 이 비 법적 관계의 아저씨가 어떻게보면 아버님인 셈이다. 아버님은 우리 아이를 정말 예뻐해주신다. 마치 진짜 자신의 친손녀라도 되는양 하루종일 아이 영상만 들여다 보고 있고, 카톡으로 영상이나 사진만 보내주기를 기다리신신다. 그리고 아버님의 집인 논산에서 우리집에 올라올 때면 항상 논산 딸기를 두박스씩 사가지고 오신다. 아이가 딸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이는 딸기보다는 포도를 더 좋아하는데, 논산에서 딸기가 많이 나니 자기가 사줄 수 있는 최선인 논산딸기 사다주시는 것을 스스로의 소소한 기쁨으로 간직하고 계시는 것 같다.



우리집에서 과일을 먹는 사람은 나와 아이 뿐인데, 사실 이 딸기가 애물단지가 되어버리는 것은 딸기 먹는 속도가 딸기 썩는 속도를 못 따라 가기 때문이다. 가져다 주신 지 얼마 채 되지도 않아 빨리 물러버리기 일쑤다. 빨간 열매 겉부분이 부분부분 까맣게 되거나 딸기의 끝쪽부터 허여멀건한 곰팡이가 올라온다. 오늘도 여전히 딸기를 다 먹기 전에 맛이 가기 시작한 딸기의 거뭇해지는 부분을 살살 도려내고, 하얀부분은 툭 잘라내 딸기를 구제했다. 갈아서 먹자니 딸기의 촉촉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아쉽고 얼려버리자니 딸기철 생딸기를 먹을 수 있는 묘미가 사라지니까, 싱싱한 딸기도 죽은 딸기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의 딸기를 해치운다는 느낌으로 먹어치우게 된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늘 넘치다보면 소중한 줄을 모르는 법.


베란다에 가득퍼지는 달달한 딸기향과는 달리 썩어 뭉그러지는 딸기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 아침 발 등에 불똥 튄 듯 서둘러 딸기의 상한 부분을 도려내면서 빨리 딸기철이 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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