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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청 Sep 22. 2020

마음으로 대화한다는 것

그림책을 만드는 이유


달이 비치는 방 (2016), 진청


사람 간에 입으로 대화하지 않고 마음으로 대화한다고 느낄 때는 그렇게 많지 않다.

넓고 얕은 인간관계보다는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와 매번 진심 가득한 마음으로 대화하기는 쉽지 않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말보다는 글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꼭 하고 싶은 중요한 말이 있거나,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싶거나, 혹은 얼굴 보고하기에는 낯부끄러운 말이 있는 경우에는 편지를 써서 마음을 전한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책이라는 매체에 편안함과 매력을 느낀다. 입으로 하는 이야기는, 내가 아차 하고 실수할 수 있고, 나도 모르게 의도하지 않은 말이 나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글로 하는 이야기는, 내가 사전에 고심하고 완성시킨 후에 상대에게 공유할 수 있다.

달변가는 아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속에 많은 나는, 그 이야기들을 풀어낼 매체를 그림책으로 정하고 현재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는 중이다.


한 삼 주전쯤이었을까, 특별한 경험을 했다.

그 날은 내가 오랜 시간을 들인 그림책 프로젝트의 마감일이었다.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알게 된 그림책 편집자가 있는데, 나이도 한 살 차이고, 취향과 관심사도 비슷해 일로 만난 사이임에도 깊이 친해질 수 있었다.


언니는 많은 그림책들을 봐오고 편집해온 사람이고, 내 작업들도 오래 봐왔기 때문에, 그림책 작업하면서 작업 과정도 공유해주고, 의견을 구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의 마감일 전에도 언니에게 더미북(가제본)을 보내주었다.


언니는 더미북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후 마치 내 마음에 들어와 본 사람처럼 내가 그림책을 쓴 의도와 마음을 읽어줬는데,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내가 의도했지만 미처 표현하지 못한 말들도, 수려하고 따뜻한 단어들로 새롭게 해석해주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내 그림책을 논하며 마음으로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 벅차고 기뻐서 눈물이 났다. 작가를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내 마음에서 탄생한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새삼 다시 느낀 날이었다.


창작의 길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만을 가지고 걸어간다는 건 정말로 녹록지 않다. 바닥이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날에는, 스스로의 재능에 대한 근원적인 의심까지 들 때도 있다. 그럴 때에는, 내 작업이 누군가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고, 내 작품을 마음으로 읽어주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그건 내게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용기와 위안이다.



인스타그램: @byjeanc

웹사이트: https://www.artbyjea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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