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취향 연대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취향이 변하는 것을 보면, 모르는 새에 스스로의 어떤 면들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스레 느껴져 신기하고 흥미롭다.
어렸을 때는 절대 먹지 않다가 크면서 좋아하게 된 음식 중에 토마토가 있다. 토마토를 좋아하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는데, 요새는 장을 보면 늘 장바구니에 있을 정도로 냉장고 터줏대감이 되어버렸다.
옷 취향도 많이 변한 것을 새삼 느낀다. 장식이나 패턴이 많은 옷만 사던 내가 요새는 무지의 옷만 찾는다.
그렇지만 가장 크게 느끼고 있는 취향의 변화 중 하나는 그림 그릴 때 색 쓰는 취향의 변화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나는 노란색과 갈색 계열을 절대 쓰지 않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색 편애'가 심했다. 물감 세트를 사면 빨간색, 파란색, 흰색은 재구매를 종종 해야 할 정도로 닳는 속도가 빨랐는데, 노란색과 갈색은 새 것처럼 그대로였다.
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자주 쓰는 빨강, 파랑 계열도 무조건 흰색이나 회색을 섞어 톤 다운시킨 색만 썼다. 그래서 예전 그림들을 보면 대부분의 그림의 지배적인 색은 연보라, 연하늘, 연두 등의 부드러운 색이다.
노란색이나 갈색을 쓰면 큰일 날 것처럼 굴던 내가 신기하게도 요새 자주 쓰는 색 중 하나가 노란색과 갈색이다. 얼마 전에 노란색 물감을 대용량으로 새로 구매했고, 갈색 물감 튜브는 점점 홀쭉해지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부드러운 색들을 지배적으로 쓰긴 하지만, 예전 그림과 비교했을 때 강한 색들을 훨씬 많이 사용한다. 비슷한 계열의 색들만 사용하던 과거와 비교해, 보색을 좀 더 과감하게 쓰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많은 색들을 그림 속으로 가져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색에 대한 '편애'가 심했다고 하면, 요즘은 색에 대한 '박애'가 생긴 것 마냥, 정말 모든 색이 예뻐 보인다.
내 인스타그램 계정에 들어가 가끔씩 몇 년 전 게시물까지 스크롤을 내려보면 과거 그림과 현재 그림의 색 차이가 선명해 스스로도 신기하다. 의도한 것이 아닌데 자연스럽게 취향이 변했고, 변한 취향이 그림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앞으로도 취향의 변곡점은 수없이 많겠지. 몇십 년 뒤 나의 아카이브가 훨씬 더 차곡차곡 쌓이게 되면, 그때 한 번 나의 색의 연대기를 만들어보는 일도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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