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
그림의 재료는 흔히 건식 재료와 습식 재료로 나뉜다.
건식 재료로는 파스텔, 오일파스텔, 콩테, 크레용, 색연필 등이 있고, 습식 재료로는 수채물감, 유화물감, 아크릴 물감, 과슈, 분채, 석채, 포스터 칼라 등이 있다.
어떤 재료를 선택해 그리느냐에 따라 그림의 분위기가 확연히 바뀌기도 하고, 그래서 자기와 합이 맞는 물성의 재료를 찾는 것이 중요하기도 하다. 나 역시 선호하는 재료와 선호하지 않는 재료가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정말 중요한 재료는 화방에서 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내가 아는 가장 훌륭한 그림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림 그리는 사람은 세 부류로 나뉜다.
손으로 그리는 사람, 마음으로 그리는 사람, 그리고 영혼으로 그리는 사람.
아무리 손이 좋아도 마음으로 그리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영혼으로 그리는 사람을 마음으로 그리는 사람이 이길 수는 없지."
신기하게도 사람이 만드는 모든 것에는 만든 사람의 '기' 같은 것이 들어있고, 사람은 영물이기 때문에 이를 간파한다. 형식적이고 기계적으로 그리는 그림과 내 영혼의 일부가 담겨있는 그림은 질적으로 다르고, 내 경험상 관람자들도 본능적으로 차이를 느끼는 것 같다.
때로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다져진 기교로 그려진 정밀화보다는, 아무 기본기 없이 그려진 아이들의 그림이나 뒤늦게 취미미술을 시작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그림이 좋게 느껴지는 건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이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 역시 그림을 늦게 시작한 편이고, 굳이 대학에서 전공하지 않아도, 어렸을 때부터 훈련을 받지 않아도, 모든 사람 안에는 자신 외에 다른 이는 가질 수 없는 자신만의 씨앗이 있다고 믿는다. 성장과정 중에 미처 그림을 접해보지 못했더라도, 끄집어낼 수 있는 기회만 있다면 누구든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낼 재능과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사진이 없던 중세시대 유럽처럼 있는 그대로를 똑같이 그리는 그림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색이 얼마나 담겨 있는지다. 그건 손으로 단지 누군가를 모방해서 이뤄지는 일이 아니고, 스스로를 탐구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고, 그리는 행위에 오롯이 집중하며 영혼의 일부를 마치 화면 위로 구현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결국 중요한 건 몸이 얼마나 그림을 잘 그리는지가 아니라 그림에 자신이 얼마만큼 담겨있는 지다.
그런 측면에서, 오히려 그림을 제대로 배워보지 못한 건 메리트로 작용하기도 한다. 나는 나만의 그림 스타일과 분위기가 확실해서, 명패 없이도 내 그림인지도 알겠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 편이다.
종종 어떻게 자신만의 그림스타일을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그림을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작하면 날 것 그대로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내 스타일을 알 수 있다. 입시미술도 접해보지 못했고, 다른 그림들도 많이 봐보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온전히 나의 그림체를 처음부터 성립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내게도 그 이후로 오랫동안 갈고닦는 시간이 필요했고, 앞으로도 뼈를 깎는 노력이 더 필요하겠지만, 독창성의 측면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가 유리할 수 있다.
그래서 혹시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열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두려워 말고 도전해봤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은 하지 못한 자신만의 놀라운 이야기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내가 해냈다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분명히 할 수 있다고 작은 용기를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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