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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청 Sep 28. 2020

그림은 체력전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일각고래 드로잉 (2020), 진청


대학생 때는 통학하며 웹툰을 많이 봤다.

지하철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한 방편이었기 때문에, 분명 봤는데도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안 나는 웹툰이 대다수다. 그렇지만 그중에서 기억에 잊히지 않는 웹툰 중 하나는 윤태호 작가의 <미생>이다.


기억에 남는 명장면들이 셀 수 없지만, 아래 장면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생각이 나는 대목이다.

<미생> , 윤태호


나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하는 걸 싫어했다.

학창 시절 체육시간에 선생님 눈을 피해서 나무 그늘 아래 친구들과 앉아 수다 떨던 애들 중 한 명이 나였다. 하다못해 피구도 싫어해서 내 친구한테 내 목숨을 넘겨주고 선 밖으로 나와서 수업 끝나기만을 기다리기도 했다. 게다가 운동신경도 안 좋고, 운동을 하지 않아도 살이 잘 찌지 않는 체질이라서 운동과는 담쌓고 살았다. 


그렇게 살아도 20대 초반까지는 별 무리 없었으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체력이 버텨주질 않았다. 별 걸 하지 않아도 피곤하고, 약속은 꼭 하루 건너 하루 잡아야 하고, 밤이라도 새우는 날이면 다음 날은 반쯤 죽은 좀비처럼 걸어 다닌다.


그림은 은근히 체력 소모가 많은 행위다. 캔버스나 종이에 붓을 왔다 갔다 칠하다 보면 팔이 금세 아프다. 특히나, 동양화 같은 경우는 한지를 사서 바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바탕칠을 하고 밑 작업만 하는 데에도 하루 이틀이 꼬박 걸린다. 바탕칠은 대여섯 번을 방향을 바꿔가며 해야 하기 때문에, 종이가 큰 경우나 여러 장일 경우에는 바탕칠만 해도 하루 작업을 다한 것처럼 피로가 몰려온다. 


또, 회사를 다니면서 허리가 많이 안 좋아졌는데, 퇴사한 후에도 가끔씩 허리에 무리가 올 때가 있다. 코어 근력이 부족해 허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쓰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그림 그리는 사람에게 눈, 손목 그리고 허리는 어떻게든 지켜야 하는 신체기관이다. 결국, 알고는 있지만 실천을 하지 않았던 정답으로 돌아왔다. 운동을 하자.


다행히 여름부터 새로 쓰게 된 성수동 작업실은 서울숲과 한강이 가깝다. 그래서 저녁을 먹고 삼십 분이든 한 시간이든 걸으려고 하고 있다.


운동을 반강제적으로 시작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집에서 작업실까지 교통이 굉장히 불편하다. 버스를 타면 50분이 걸리는데, 그중 30분이 걷는 시간이다. 그래서 시원해진 최근에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 시작했다. 오르막 내리막이 많은 길이라 처음 자전거를 타고 작업실에 왔을 때는 도저히 다시 못 타고 가겠어서 자전거를 작업실에 놓고 버스를 타고 갈 정도였다. 지금은 놀랍게도 자전거로 집과 작업실을 왕복하고도 새벽 세시에 잘만큼 체력이 그새 늘었다. 


내 꿈은 열정을 잃지 않는 할머니가 되어서, 칠순이 되든, 여든이 되든 그림을 그리는 삶을 계속 사는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체력을 키우고 건강해져서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는 몸을 갖춰야 한다. 


<미생>의 문장처럼, 체력 없는 정신력이란 구호에 불과한 것이다. 몸과 마음은 외면하며 갈 수 없고, 서로를 보호하고 지지해주며 가야한다. 평생 동안 하고 싶은 일을 정한 지금은, 우선 체력을 기를 때다.



인스타그램: @byjeanc 

웹사이트: https://www.artbyjean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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