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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Nov 15. 2020

밥 한끼

언젠가 마음이 지치고 외로운 사람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내 무지함이 너무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 사람의 마음을 살리고 싶었지만 내겐 그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어떤 것도 준비되어있지 않았다. 좋은 위로라는 걸 당장 어디에 가서 사 올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좋은 위로가 어떤 건지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지치고 힘든 사람을 만날 때마다 자주 같이 우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너무 아플 것 같은 게 꼭 내가 데인 것처럼 느껴져서 종종 같이 울어버리는 거다. 같이 눈물을 흘리다 헤어진 날은 내가 몹시 수치스러웠다. ‘네가 뭘 안다고, 얼마나 안다고 아는 척을 해’ 아파서 운다는 건 그 아픔을 알아야만 가능한 일이데 말만 듣고 아는 척 한 내가 너무 창피했다. 그리곤 두 번다시 아는 것처럼 울지 말자를 다짐했지만 누군가의 슬픔에 나보다 먼저 눈물이 마중하지 않는 은 없었다. 눈물은 내가 지배할 수 없는 독단적 감정의 산물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마음을 들은 날은 노련한 심리상담가이고 싶었다. 몇 마디 말로 그의 지친 마음을 심폐소생 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난 그것과 비슷한 어떤 지식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난 한없이 초라해졌다. 때로는 어떤 사람의 울 수조차 없는 아픔을 만나기도 했다. 어디서 오는 아픔 인지도 명확하지만 결코 끊어낼 수 없는 올가미가 되어 당장을 한동안을 힘들게 할 고통이었다.


난 밥을 짓기로했다. 먹여서라도 살리겠다는 의지가 담긴 한 끼였다. 음식 솜씨가 좋은 건 아니었지만 우리 가족을 먹여 매일을 살린 솜씨는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해서 아끼는 그릇을 꺼내 갓 지은 하얗고 고슬고슬한 밥을 점잖게 담고 제철 나물 몇 가지와 노릇하게 구워낸 박대를 간장으로 다시 한번 짭조름하고 달달하게 조려냈다. 파채를 얇게 썰어서 생선위에 가지런히 올렸다.      


길게 내려온 소매를 걷어 올리고 왼손 엄지와 검지로 오른손의 젓가락질을 거들며 생선조림을 잡아 뜯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밥 위에 올려 맛있게 먹어주었다. 유쾌한 얘기를 곁들이면서.     


끼니를 만드는 건 시간 위에 그리는 삶의 가장 기본이며 중요한 일이다. 하루를 버텨낼 에너지를 넉넉히 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필요한 심폐소생술이다. 그러나 하루에 세 번이나 준비하는 끼니는 그 일의 숭고함을 잊게 만들 만큼 너무 빈번했고 그래서 하찮은 일처럼 여겨졌다. 당연한 듯 하지만 수고로움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 불특정 다수에게 열려있는 식당이 있지만 그건 대가를 지불하고 얻는 허기를 채우는 음식일 뿐이다. 집에서 만드는 끼니는 준비하는 사람한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의 매일을 챙기는 일이다. 개개인의 몸 특성에 맞게 정성껏 준비하는 특별함이 있다. 몸뿐 아니라 마음도 살찌운다.      


어느 날 내게 끼니를 대접받은 사람이 말했다. “지은아 네가 심폐소생술을 하는 정혜신 같아.” 나는 이 말이 너무 좋아서 그만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졌다.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다. 난 아무것도 없지만 아픈 기억이 많은 사람이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을 적극적으로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픈 사람들에게 나의 아픔은 어쩌면 동병상련이라는 위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어떤 아픔도 닮은 듯 닮지 않았다. 같다고 생각되는 아픔도 느끼는 사람마다 깊이가, 모양이 다 다르다는걸 안 순간 더 이상 그들의 아픔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내 아픔을 위로로 건네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밥이 맛있게 된 날엔 이 밥이 또 누구를 살릴 것인가 기대하게 된다. 나는 자주 다른 이들로 인해 하고 싶은 게 바뀌는 사람이지만 한 끼를 맛있게 만들고 싶은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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