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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끼

by 지은

언젠가 마음이 지치고 외로운 사람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내 무지함이 너무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 사람의 마음을 살리고 싶었지만 내겐 그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어떤 것도 준비되어있지 않았다. 좋은 위로라는 걸 당장 어디에 가서 사 올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좋은 위로가 어떤 건지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지치고 힘든 사람을 만날 때마다 자주 같이 우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너무 아플 것 같은 게 꼭 내가 데인 것처럼 느껴져서 종종 같이 울어버리는 거다. 같이 눈물을 흘리다 헤어진 날은 내가 몹시 수치스러웠다. ‘네가 뭘 안다고, 얼마나 안다고 아는 척을 해’ 아파서 운다는 건 그 아픔을 알아야만 가능한 일이데 말만 듣고 아는 척 한 내가 너무 창피했다. 그리곤 두 번다시 아는 것처럼 울지 말자를 다짐했지만 누군가의 슬픔에 나보다 먼저 눈물이 마중하지 않는 날은 없었다. 눈물은 내가 지배할 수 없는 독단적 감정의 산물처럼 느껴졌다.


누군가의 마음을 들은 날은 노련한 심리상담가이고 싶었다. 몇 마디 말로 그의 지친 마음을 심폐소생 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난 그것과 비슷한 어떤 지식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난 한없이 초라해졌다. 때로는 어떤 사람의 울 수조차 없는 아픔을 만나기도 했다. 어디서 오는 아픔 인지도 명확하지만 결코 끊어낼 수 없는 올가미가 되어 당장을 한동안을 힘들게 할 고통이었다.


난 밥을 짓기로했다. 먹여서라도 살리겠다는 의지가 담긴 한 끼였다. 음식 솜씨가 좋은 건 아니었지만 우리 가족을 먹여 매일을 살린 솜씨는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해서 아끼는 그릇을 꺼내 갓 지은 하얗고 고슬고슬한 밥을 점잖게 담고 제철 나물 몇 가지와 노릇하게 구워낸 박대를 간장으로 다시 한번 짭조름하고 달달하게 조려냈다. 파채를 얇게 썰어서 생선위에 가지런히 올렸다.


는 길게 내려온 소매를 걷어 올리고 왼손 엄지와 검지로 오른손의 젓가락질을 거들며 생선조림을 잡아 뜯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밥 위에 올려 맛있게 먹어주었다. 유쾌한 얘기를 곁들이면서.


끼니를 만드는 건 시간 위에 그리는 삶의 가장 기본이며 중요한 일이다. 하루를 버텨낼 에너지를 넉넉히 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필요한 심폐소생술이다. 그러나 하루에 세 번이나 준비하는 끼니는 그 일의 숭고함을 잊게 만들 만큼 너무 빈번했고 그래서 하찮은 일처럼 여겨졌다. 당연한 듯 하지만 수고로움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 불특정 다수에게 열려있는 식당이 있지만 그건 대가를 지불하고 얻는 허기를 채우는 음식일 뿐이다. 집에서 만드는 끼니는 준비하는 사람한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의 매일을 챙기는 일이다. 개개인의 몸 특성에 맞게 정성껏 준비하는 특별함이 있다. 몸뿐 아니라 마음도 살찌운다.


어느 날 내게 끼니를 대접받은 사람이 말했다. “지은아 네가 심폐소생술을 하는 정혜신 같아.” 나는 이 말이 너무 좋아서 그만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졌다.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다. 난 아무것도 없지만 아픈 기억이 많은 사람이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을 적극적으로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픈 사람들에게 나의 아픔은 어쩌면 동병상련이라는 위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어떤 아픔도 닮은 듯 닮지 않았다. 같다고 생각되는 아픔도 느끼는 사람마다 깊이가, 모양이 다 다르다는걸 안 순간 더 이상 그들의 아픔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내 아픔을 위로로 건네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밥이 맛있게 된 날엔 이 밥이 또 누구를 살릴 것인가 기대하게 된다. 나는 자주 다른 이들로 인해 하고 싶은 게 바뀌는 사람이지만 한 끼를 맛있게 만들고 싶은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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