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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Nov 18. 2020

바람의 생

바람처럼 언제 어디로 사라졌다

어디에서 와서 다시 시작할지 알 수 없는 삶을

그 시작과 끝이 알고 싶어 전 생을 떠돌아도

아무 대답 없음을

가슴 한편을 잠가둔 채로 살아간다

평생을 구하고도 얻지 못하는 답을

바람은 알고 있을까.     


다만 바람처럼 그곳에 잠시 머물렀다는 것을

새까맣게 타버린 하얀 가루만 남기고

너의 손에서 파르르 떨리다가

텅 빈 차가운 방을 지키고

때때로 너의 시선에 머물며

어느새 흔적조차 자취를 감춘다


바람은 다만 충실할 뿐

선한 바람이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선한 바람도 때론 낙과를 일으킨다는 것을

함께 함으로 얻어지는 모든 것과

함께 함으로 잃게 되는 모든 것이다


그곳엔 천지를 비추는 빛과

대지의 젖줄인 비가 함께 하고

온갖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존재가

서로 껴안아 최고의 열매를 맺는다

혼자 할 수 없는 모든 것이다

그들 중 하나라도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달콤한 향기는 사라지고

그들 중 하나라도 게으름을 떤다면

탐스럽고 맛있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성난 바람이 모든 것을 집어삼킬 수 있는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다는 것을

그 또한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 낸 것이 아님을

모진 태풍에 휩쓸려 본 그대는 알 것이다

꾸역꾸역 혼자 일구어낸 화(火)는 없다는 것을

시시때때로 얼굴색을 바꾸는 불꽃도

허공에서 혼자 타오를 수 없음을 안다     


삶은 때론 우리가 손댈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고

휩쓸리다 혼자이다 섞이고 다시 혼자가 된다

바람처럼

누구나 선한 바람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원하지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다만 웅크리는 일 뿐일지도 모른다


혼자이고 혼자이지 않은 것

그것이 바람의 답이라면

기꺼이 휩쓸리는 삶도

혼자 타다 촛농처럼 아무렇게나 눌어붙고 싶은 삶도

생(生)인 것을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다시 어느 틈에서 나고 자라고 또 어디로 사라지는지

서로에게 기대었다가 휑하니 멀어져 가는

바람은.

바람이 가는 길을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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