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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Sep 16. 2020

지극히 생산적인 죽어있는 시간.

가끔은 혼자 있고 싶다. 하지만  그 시간에 뭐를 하고 싶은지  모를 때가 훨씬 많다. 하고 싶은 게 준비되어 있는 사람들이 항상 부러웠다. 그럼에도 난 가끔 혼자이고 싶다. 그런 날은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오래오래 앉아있었다. 적게는 한 시간에서 많게는 네 시간까지도. 마주 보는 티브이의 까만 화면엔 내가 나왔다. 티브이 속 나를 초점 없는 눈으로 바라보며 손가락 한마디도 꼼짝 않고 앉아있었다. 그러다가 오줌이 마려워도 내 방광이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텼다. 의식이 나를 자꾸 화장실로 이끌었기 때문에, 혼자인 시간을 내 몸속 방광에 붙들려 있다는 게 그다지 즐거운 일은 아니었으므로 그냥 화장실을 갔다 오고 말지 하는 생각도 했었다.      


베란다 창밖으로 보이는 회색빛 하늘이 좋다. 바로 앞 넓은 테이블 위에 아이의 책이나, 그림도구 장난감이 올라가 있지 않아서 더욱 좋다. 밖에서 들리는 언제 태어났는지 모를 풀벌레 소리가 염치도 없이 남의 집까지 려와서 더더욱 좋다. 가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공을 야멸차게 때리는 야구 방망이의 소음도 커다란 베란다 창을 넘어 들려오지만 그건 아득히 먼 곳에서 오는 백색 소음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죽어있는 시간 같이 느껴졌다. 회색의 하늘 아래 모든 것이 형형색색 컬러로 움직이고 있지만 오직 나는 검은색으로 죽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손을 뻗어도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을 것처럼, 소리를 질러도 바로 옆 강아지 조차도 반응하지 않을 것처럼. 들리지 않는 비명을 보는 것 같기도 했고 존재하지 않는 마임 같기도 했다. 죽어있을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난 종종 필요했고 소름 끼치도록 좋지만, 끔찍할 만큼 외롭기도 했다.     

  

항상 학교를 다니던지 회사를 다니던지 둘 중 하나는 세끼 밥을 꼬박꼬박 먹는 것처럼 하루도 거르지 않고 했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을 할 때도, 오늘 퇴근 후 송별식을 했으면, 다음날 새 회사에서 환영식을 하는 식이었다. 내가 벌지 않으면 안 될 때였다. 결혼을 하고, 처음으로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보냈었다. 처음 삼일은 몸이 날아갈 듯 가뿐했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고 즐기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난 충분히 행복했다. 곧 삼일이 지나자 난 죄책감이 느껴질 만큼 낯설었다. 처음으로 어떤 곳에도 소속되어있지 않음이 실감 나자 사회가 나를 밀어내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 느낌은 나를 도태된 낙오자로 만들어 불안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어딜 가도 누굴 만나도 바쁜 사람들만 눈에 들어왔다. 커피숍을 가도 회의를 하는 사람들이 눈이 띄었고, 신호를 기다리면서도 초록불로 바뀌기가 무섭게 뭐가 그리 바쁜지 종종걸음으로 어디론가를 향해 정신없이 가는 사람들뿐이었다. 모두의 시간은 빠르게 흐르는데 내 시간만 그 길 위에서 멈춰 선 것 같았다.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과 죽어도 하기 싫은 마음이 매일 다투었고 그 해결되지 않은 마음은 종종 짜증으로 변했다. 아무도 일을 하라는 사람이 없는데. 충분했다고 좀 쉬어도 된다고 하는데 내 마음 한편에 영영 사회와 단절될 것 같은 두려움이 도사렸다. 지금껏 힘들게 달려온 내 삶에 대한 보상이라도 실컷 해주면 좋으려 만. 그렇게 쉬고 싶고 일을 그만두고 싶었던 나인데 난 넘쳐 나는 시간을 감당하기에 영리하지 못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를 위해 무언가 배운다는 게 생산적이지 않으면 왠지 해선 안될 일처럼 느껴졌었다. 항상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기 때문이었을까. 내 몸 구석구석 배어있던 결핍의 흔적이 좀처럼 씻겨지지 않았다. 뭘 해야 즐거울 수 있을지 난 알지 못한 채로 보이는 몸은 가만히 버티고 그 속내는 마냥 시끄럽게 돌아가는 세탁기처럼 그러나 빨래라는 결과물도 없이 난 시간을 탕진했다. 아니러니 하게도 티브이 앞에 앉아 까만 화면을 보고 있는 일은 생산적이지도 않는데 그것 만큼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 시간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천천히 내 머릿속의 생각을 하나씩 밖으로 끄집어내다가 불현듯 보게 된 시간에 놀라 끄집어낸 생각들을 싸잡아 아무렇게나 다시 머리에 쑤셔 넣었다. 그 틈에 찢기고, 떨어뜨린 생각들이, 나무에서 떨어지자 쓰레기가 되어 쌓이는 낙엽처럼 잡념이 되어 나뒹굴고 또 잊혔다.      


아이가 학교 대신 집에서 온라인 클래스를 하는 동안은 가질 수 없는 시간이었다. 거의 24시간을 함께 지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어떻게든 내가 숨을 쉬는데 필요한 죽어있는 시간을 만들려 노력한다. 생각해보면 내가 죽어있는 시간이 내가 살아갈 시간의 에너지를 만드는 가장 생산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 잿빛 하늘이 나를 죽어있는 시간으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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