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은 Sep 28. 2020

사랑을 채우는 시간

내 나이 마흔이 여태 살아온 날 중 가장 지옥이었다면 이상한 거겠죠. 더한 날도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그때를 가장 지옥이었다고 말하는 이유는 다 괜찮다고 이제 잘 살아보자고 뭐든 총량의 법칙이 있다는데 더 나쁜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을 때 경험한 거라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아이를 낳고 보니 주변에 많은 훌륭한 엄마들이 있었어요. 정말 다 잘났더라고요. (잘났다는 말 진심이에요. 비아냥 아니고요.)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거 꾸준히 해서 좋은 학교 좋은 직장 다녔고 계속해서 관련된 일들을 해나가고 있었어요. 그들은 생각도 훌륭했어요. 차곡차곡 쌓인 것들이 사회에서 어떤 행사. 행위를 하더라도 빛을 발했어요. 그들이 잘난 분야는 서로 달랐어요. 그래서 경쟁할 필요도 없었지요. 누가 더 잘났나 견줄 필요는 더더욱 없었어요. 서로 응원하고 잘할 수 있게 격려하면서요. 서로 다른 엄마들의 취미에 관심을 기울였어요. 함께 미술관을 다니고, 음악을 듣고, 화분을 사고, 작가의 그릇을 보면서요.     

 

저요? 저는 조금 달랐어요. 항상 함께 했지만 내가 그들보다 잘하는 분야는 없었어요. 그들이 너무 완벽했기 때문에. 처음엔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냥 같이 느끼고 즐기고 그게 다였어요. 하지만 난 그들이 관심 갖는 곳에 관심이 없었어요. 미술도 음악도 화분도 그릇도. 어느 날 내 것이 아닌 것을 사들이고 감상하고 내 것이 아닌 것을 듣고 있는 나를 봤어요. 그래도 뭐 내가 모르는 분야를 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딱히 내가 좋아하는 것도 관심 갖는 것도 없었으니까요. 아. 하나요. 딱 하나 있었어요. 가정이요. 가정만큼은 어떤 것보다 관심이 많았어요.      


난 잘 살고 있었어요. 왜냐면 아들 하나 키우는 저를 보며 항상 최고로 힘들다고 아들 너무 잘 키워줘서 고맙다고 치켜세워준 남편이 있었으니까요. 남편은 술도 담배도 안 해요. 아이가 태어나서는 곧장 퇴근해 집에서 매일 설거지에 청소에 많은 부분을 함께해줬어요. 혼술을 좋아하는 저를 위해 항상 술을 사다 쟁여놔 줬고요. 아이가 잠든 후 하루 종일 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얘기하면 신랑은 마치 자기 일인 양 어떨 때는 흥분하며 어떨 때는 내가 말하는 상대에게 육두문자를 써가며 또 다른 때는 깔깔 웃어가며 들어줬어요. 난 세상에서 내가 제일 행복한 것 같았어요. 난 무엇이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조금 거만해지기도 했던 것 같아요.      


남편이요? 우리 남편은 프로그래머예요. 결혼 전 같은 직장에서 칠 년 근무했어요. 결혼과 동시에 저는 퇴사를 했고 남편은 남았어요. 이런저런 문제로 남편이 이직을 하려 할 때마다 붙잡는 분이 계셨어요. 그럴 때마다 신랑은 그놈의 정이 뭔지 어쩔 수 없이 눌러앉았어요. 그분은 신랑과 같이 그 회사를 만든 분이셨어요. 버티다 버티다 신랑은 마음의 병을 얻었어요. 회사일은 집에서 입도 뻥긋 안 하는 신랑이라 혼자서 더 외롭게 쓸쓸하게 버텼을 거예요. 그 외로움이 신랑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어요. 다 싫어 세상 다 싫어를 얼굴에 대문짝만 하게 쓰고 다니는 신랑을 보며 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어 고민했어요. 자신도 챙길 여력이 없던 신랑의 행동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 힘든 사람처럼 보였어요.


 저는 하루하루 눈치만 늘어갔어요. 차라리 왜 힘든지 알았더라면 나는 나를 미워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요. 그땐 그걸 몰랐어요. 끝이 없는 바닥으로 추락했어요. 떨어지는 몸은 산산조각이 나서 뿔뿔이 흩어지는 것만 같았어요. 흩어진 나를 찾을 방법이 없었어요. 아들은 어쩌나, 신랑이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같이 살 수 있을까, 출처도 없는 물음에 내 마음을 다 소진해버렸어요.


불안이었어요. 불안이란 놈이 과거를 기반으로 몸뚱이를 키워갔어요. 우린 과거의 기억으로 불안을 봐요. 과거의 기억이 없다면 불안의 형체를 알 수 없을 테니까요. 행복했던 과거로 난 다시 돌아가고 싶은데 돌아갈 수 없어서 괴로운 거예요. 비참한 거예요. 지금 내가 처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면밀히 들여다 보기보다 과거에 집착한 거예요. 그 불안은 힘들어하는 신랑을 걱정한 게 아니고 외면당한 것 같은 나를 걱정한 거예요.   

  

그렇게 난 작아졌어요. 그렇게 난 불안했고. 고통스러웠어요. 사람들을 만나면 나만 빼고 모두 행복해 보였어요. 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난 무엇이 되고 싶었어요. 무엇이 될 수 없어서 몸부림쳤어요. 보여주고 싶었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렇게 해서라도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던 거예요. 내가 무엇이 되지 않아서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내 두뇌를 채워갔어요. 점점 비대해지는 뇌는 비대해지는 만큼 나를 괴롭혔어요. 거울을 봐도 보기 싫은 내가 있었어요. 어딜 가도 자신이 없었어요. 모임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 목소리가 양처럼 떨리고 눈물이 나려고 했어요. 그런 시간을 방법도 모른 채로 일 이년을 버텼어요. 때론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숨까지도 내 마음대로 안 쉬어졌어요. 사랑이 바닥난 거예요.      


신랑은 회사를 그만뒀고, 혼자 회사를 만들었어요. 자기만의 공간이 생기자 신랑의 표정은 달라졌어요. 미간의 인상이 펴지고, 가끔 웃더니 자주 웃었어요. 신랑이 나를 싫어한 게 아니었고 아침마다 회사로 향해야 하는 마음이 지옥이었데요. 그 얘길 듣고 신랑의 지난날이 몹시 안쓰럽고 불쌍하기까지 했어요. 그 고독을 마주하고 책임감에 안간힘을 썼을 마음이, 걸레가 되어가는 마음을 잡아 꿰매느라 힘들었을 생각을 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파요. 우린 다시 서로를 보듬어요. 물론 너무 힘든 시기에 둘 다 방법을 몰라서 함께 홍수에 휩쓸려 떠내려갔지만 정신을 차려 어느 쓰러져가는 지붕으로 간신히 올라갔고 다행히 무사히 구조됐어요.      


내가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행복한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 불안해하지 않았다면. 그냥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보았다면. ‘아 지금 신랑이 뭔지 모를 것에 많이 힘들구나’ 하고 맛있는 음식 해주고. 조용히 바라봐주고. 자주 웃어주며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했다면. 스스로 굴로 들어가 기승전 내 탓을 안 했다면 신랑은 오로지 자기의 필요함만을 채웠으면 됐을 테니 우리의 상황은 달랐을 거예요. 그랬다면 바보처럼 눈물이 우리를 쓸어낼 홍수를 만드는 것을 보고만 있진 않았을 거요.     


얼마 전 아들의 축구 훈련에 같이 간 아들과 신랑한테 전화가 왔어요. 집에 가는 길이라며. 스피커를 통해 신랑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나 모기 물렸어. 두방이나.”

“두방이나? 어디 물렸는데?”

“얼굴이랑 손등이랑”

“아이고 오빤 볼 때가 얼굴밖에 없는데 얼굴을 물리면 어떡해. 이런 나쁜 모기.”

내 말에 아들이 소리를 질렀어요.

“뭐라고! 엄마 아빠가 잘생겼단 말이야?”

“몰랐어? 아빤 얼굴 빼면 시체지~”

제 말에 신랑이 기분 좋게 하하하 웃었어요. 아들은 우웩 하며 웃었고요. 그렇게 끊임없이 채워가요. 달도 차면 기울고, 잔도 차면 넘치듯이 채울 때까지는 노력을 해야 해요. 다 차서 넘치기 시작하면 좀 더 편안한 상태가 돼요. 사랑은요. 말로 설명할 수도 행동으로 표현할 수도 없지만. 무엇이 되는 것이랑 내가 무엇인 것이랑 아무 상관없는 거였어요. 아니 난 이미 지은이예요. 더 이상 무엇일 수 없는 그냥 딱 지은이요.


우리는 현재를 살아요. 현재를 살면서도 현재를 보지 않고 기억이란 스크린을 통해 모든 것을 봐요. 도넛에 설탕을 묻히듯 현재에 과거를 묻혀요.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을 찾듯 가장 편한 방법을 찾는 거예요. 하지만 틀렸어요. 현재는 있는 그대로만 봐야 해요. 그러려면 지금에 집중해야 해요. 어떤 상황에서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방법으론 지금을 행복하게 살 수 없어요.      


지금의 나를 봐요. 난요. 마흔두 살이고요. 조금 긴 갸름한 얼굴에 작은 코를 가졌어요. 머리카락은 어깨를 훨씬 지나 길었고요. 앞 머린 없어요. 눈썹이 진한 편이고 쌍꺼풀이 있어요. 세상에 태어날 때 무엇보다 측은지심을 많이 갖고 태어났어요. 그래서 눈물도 많고요. 겁이 정말 정말 많아요.

난요. 초삼 아들과 강아지와 벌써 세 번째 가출한 도마뱀을 키우고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살아요.

그것만으로 된 거예요. 다른 거는 필요 없어요. 지금은요 그게 나예요.     

작가의 이전글 상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