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km 마라톤 후기와 시리즈 완결
러너스하이(Runner's High) 란
고강도의 신체 운동 과정에서, 엔도르핀 활성화로 인해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쾌감과 행복감을 가리킨다고 한다.
특히 운동 초반 산소를 쓰는 단계가 아닌
30분 정도 달리며 무산소로 전환된 이후 급증한다고 하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 개념 중 하나였다.
5km 마라톤을 뛰기 전까지는.
달린 지 5분도 안 되어, 맘 속으로 100번은 외쳤다.
‘아 진짜 벌써부터 힘든데, 어떻게 달리냐…’
함께 출발한 주자들 속에서
뒤처지지 않게 달리고 있었지만
이미 내 페이스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처음부터 내 속도가 어떤지
질문해 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마라톤을 계속 이런 속도로 달리는 게 맞아? 내가?’
시작부터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미 의문점이 들었을 땐
다시 어떻게 조절해야 될지 조차 막막했다.
반면, 옆에서 함께 달리는
친구의 얼굴에는 여유가 있었다.
“저한테 맞춰주지 않아도 되니까
편하게 더 속도 올리셔도 돼요.”
“네네”
친구가 내 앞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제 나의 목표는 친구와 거리가 멀어지지 않는 것.
그것 하나만 바라보고 달리기로 했다.
돌이켜 보니 왜 그토록
‘뒤처지지 말자’ ‘친구와 멀어지지 말자’라는
생각 밖에 못했는가 싶다.
참가 자체나 완주의 의의를 둘 수도 있고
자체 기록 경신도 목표가 될 수 있는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건 너무나 많은데
나는 왜 그저 속도에만 급급했던 걸까?
-
반환점이 살짝 보일 때쯤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는 것도 사치스러워졌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숨이 차올랐고
이제 와 멈추거나 걸으면, 끝까지 못 달릴까 봐 무서워서
그냥 달릴 수밖에 없는 ‘나’만 존재했다.
반대편에서 우리 쪽을 향해 자전거를 타고 오며
‘파이팅’을 외치는 중년 남성의 격려도
물을 준비해 주시는 분들의 ‘힘내세요’도,
평소라면 감사함 듬뿍 감동을 받았을 나이지만
주변을 보거나 액션 하나하나에 반응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앞장서던 친구와의 거리가 어찌 됐든 간에
곁에 사람들이 어떻게 달리고 있든 간에
아무것도 신경 쓸 겨를이 없이
그냥 다리를 멈추지 않는 나만 있을 뿐이었다.
-
그렇게 달리다
어느샌가 반환점을 돌았다.
이제 내가 달려온 길을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하니 안심이 되었다.
절반이나 왔다는 것,
길을 알고 뛰는 게 참 뭐라고.
그리고 웬걸?
좀 더 속도를 낼 힘이 생겼다.
어느샌가 옆에는,
아까 나를 앞질러간 주자가 보였다.
이번엔 내가 그를 앞질렀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나는 또 추월을 당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라는 말이
이런 거구나…’
-
이 뒤에는,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다.
30분대 후반대로 결승선을 통과했고
빨리 뛰는 내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붉어진 얼굴에 땀이 엄청 흘렀고
친구와 기념사진을 찍고, 우리는 헤어졌다.
고작 30여분 달렸을 뿐인데
시작의 막막함부터, 나와 타인의 속도,
잡념이 사라지는 순간과 마지막 스퍼트까지.
마라톤은, 회사 밖 밥벌이라는 새로운 시작을 앞둔 내게
나의 속도와 ‘페이스 조절’의 의미에 대해
많은 질문거리를 던져 준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고요하고 이른 아침,
난 맛있는 커피 한 잔을 사들고
나의 페이스대로 하루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