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질문’을 통한 ‘공동 탐구’ 정신 소크라테스 정신이 깃든 소크라틱세미나

by 비타민들레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니 우리 같이 탐구해 보면 어떤가?


‘질문’을 통한 ‘공동 탐구’ 정신

소크라테스 정신이 깃든 소크라틱 세미나와 질문에 대하여.


그림책토론교육지도사 마지막 실습과정_그림책 기반 교육프로그램 설계 발표 중


여러분, ‘소크라테스’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너 자신을 알라’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으셨나요?


이번 그림책 토론 교육 지도자 수업에서

‘소크라테스’의 정신이 깃든 ‘소크라틱 세미나’를 실습하며

제가 느낀 ‘질문’과 ‘자기 이해’ ‘코칭’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소크라테스의 위 말은

정말 겸손하고, 또 오늘날 ‘성찰’, ‘메타 인지’가

각광받고 요구되는 시대에

얼마나 앞서나간 정신일까요?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의 ‘무지’를

‘질문’을 통해 깨닫게 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가 질문을 던지면

제자가 확신에 차 어떤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 그 대답이 너무 단정적이거나,

편파적이라 하더라도

소크라테스는 ‘틀렸다’고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온갖 반어법, 비유법 등을 활용해

계속 질문을 던지면, 대화 후반에

제자는 이렇게 답했다고 해요.


‘모르겠습니다’


‘질문’을 통한 ‘무지’의 깨달음

결국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무지하므로 끊임없이 배워야 할 것’

내가 확신이 든 생각이 절대적 ‘진리’가 아닐 수도 있음을 깨우치는 것을

강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개인의 ‘당연한 것’ ‘신념’ 마저도,

한낮 지식과 주관적 경험에 심취하지 않도록

진정한 의미의 ‘지혜’를 탐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한 것이죠.



이번 교육에서 소크라틱 세미나에 활용한

그림책 이야기는

한 [뱃사공 노인과 부유한 젊은이] 이야기였습니다.


어느 날, 뱃사공 노인의 손님으로

도시에서 많이 공부한 부유한 젊은이가 탑니다.


젊은이는 뱃사공에게 묻죠.

역사, 과학, 수학을 공부했는지,

위인을 아는지, 어느 유명한 곳에 가봤는지 등

가난한 마을에서 아버지의 대를 이어

일평생 뱃사공만 했던 노인은 이를 알리 만무했고

청년의 뽐내기 질문에 모두 ‘모른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죠.


그러자 젊은이는 노인에게 ‘헛살았다’고,

그걸 모르면 ‘사는 의미’가 없다며.

정말 중요한 것을 모르고 산다며 타박을 주죠.



이에, 노인은 깊은 슬픔을 느낍니다.



이윽고, 폭풍우가 치면서

나룻배는 뒤집어질 위험에 처하자 노인은 묻습니다.



“손님은 수영을 할 줄 아십니까?”



“수영? 할 줄 모릅니다.”



이윽고 거센 파도는 배를 덮치고,

수영을 할 줄 아는 노인은 이윽고 가까운 육지에 다다르지만

주변에 젊은이 손님은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



이 이야기로 어떻게 소크라틱 세미나를 진행했을까요?


‘모든 사람’이 사회자가 되는 것이

‘소크라틱 세미나’의 핵심인데요.


발언권이 있는 좌석과 그렇지 않은 좌석을 구분하여

두 개의 원을 만듭니다.


안 쪽 원에 있는 참여자만 발언을 할 수 있고,

바깥쪽 원에 있는 참여자가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싶다면

안쪽 원의 좌석에 앉으면 됩니다.


소크라틱 세미나 실습중입니다!


각자 떠오르는 질문과 나의 생각을 나누고,

때로는 바깥쪽 원에 앉은 나의 조원들과 의견을 나누는데

이때 재밌는 건,

조원의 의견을 내가 정리하고 대변하는 게 아니라

조원 토론 이후의 ‘내 생각과 답변’을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떠오른 질문은,

- 무엇이 청년과 노인의 배움을 다르게 했을까?


- 정말 중요한 것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또 무엇일까?


- 우리는 현실 세계 속에서, 어떤 캐릭터와 더 가까운가?


등 이야기의 교훈이 ‘뭔지’는 알 것 같지만

모두가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아닌

다른 시각으로 이 이야기를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


저는 제가 떠올렸던 질문이

최대한 ‘의도’를 배제하고 싶었고

이건 제가 지금 하는 일인 ‘코칭’과도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질문’을 통한 자기 이해와 발견을 촉구하는 측면에선

소크라테스 질문법과 코칭이 매우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대화의 끝, ‘무지의 깨달음’을 상대방에게

일깨우고자 하는‘의도’를 가지고

질문을 했습니다.


바로 ‘의도’가 있고 없고 가

‘코칭’과 크게 다른 점입니다.

코칭’은 고객이 풀고 싶은 ‘이슈’와 ‘원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고 얻기 위한 자원이,

모두 ‘그 사람 내면’에 있다고 믿어주며,

조금 더 현재 기반의 미래지향적인 상상을 하게

도와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 이슈가 해결되면 당신에게 어떤 좋은 변화가 있을지,

그렇게 되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것과

그 실행 의지가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호기심을 갖고 질문을 하는 것이죠.


의도를 가지지 않고, 진짜 생각해 볼만한 ‘질문 거리’,

그 질문 거리를 참여한 학습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화두를 던지고 진행하는 게

저의 그림책 활용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역량이겠구나를 배운 유익한 실습이었습니다.


이외에도, 전지를 가지고 찬성-> 반론-> 제반론을

서술한 ‘전지토론’과


자리를 바꿔가며 마인드맵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은 ‘월드카페’ 토론,


월드카페 토론을 진행한 전지

그리고 하나의 그림책을 선정하여,

질문 및 토론 방식을 정하는 ‘프로그램 기획’에 이르는 실습까지

그림책과 질문법, 다양한 토론 기법을 배울 수 있었던

2025년 제 여름의 알찬 시간들이었습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교수자가 학습자에게

진행자가 참여자들에게.


우리는 책 하나, 이야기 하나,

무수히 많은 질문과 성찰을 할 수 있습니다.


질문은 나를 가두는 틀을 깨고,

또 다른 가능성으로 이끌어줍니다.


그림책이 낯선 세계를 열어주듯,

질문은 나를 익숙함에서 꺼내

새로운 생각의 길로 이끌어 줍니다.


그림책과 질문, 둘 다 삶을 넓히는

작은 출발점이 아닐까요?



읽어주시는 여러분 감사합니다!!

신나게 발표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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