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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elyn H Jan 30. 2024

선배님, 저와는 참 다르시네요.

왕관은 없는데, 그 무게는 견뎌야 하는 그대. 선배님!

혹시 직장에서 '선배'로 불리시나요?


조직에서 언제까지나 귀염받는 막내로 지내면 좋겠지만, 때가 되면 그 자리는 물려주고 누구나 '선배'의 위치에 오르게 됩니다. 사실 '위치'라고 하기엔 선배가 공식 호칭이나 직위가 아니기에 애매합니다만.

대리나 과장 같은 직급이 사라져가는 현 상황에서, 자신보다 먼저 입사했거나 나이가 많은 동료에게 혹은 공과사를 넘나들며 언니/오빠 같은 친한 존재를 부를 때 무난히 쓰이는 호칭 아닐까 싶네요. 

평등하고 열린 조직 문화를 지향한다는 명분 하에, 가령 ooo님으로 부르거나, 아예 영어 이름을 쓰자는 기업들이 있지만, 여전히 관행이나 사적 관계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변칙적(?) 호칭이 쓰이기도 합니다. 


선후배의 관계가 단단히 맺어지면 비즈니스만이 아니라, 개인 생활까지 일부 공유하기도 하고 남과는 다른 정서를 나누는 사이가 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물론 선배라 부르지만 마음 속으론 ‘꼰대’로 분류하고 멀리 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자주 뵙고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존경하는 '찐'선배님도 흔치 않지만 계시지요. 저에게도 여러 선배님들이 계셨고, 반대로 저를 선배로 대접해 주는 후배님들도 적잖게 있습니다. 


얼마전, 새로운 프로젝트를 리드하게 된 제 후배 A가 상담을 요청했어요. 

A는 친하게 지내던 후배 B와 일을 함께 하게 되면서, 더 이상 사적 친분만이 아닌 공적 관계를 맺게 되었기에 부득이 함께 하게 된 일의 퀄리티나 근태, 커뮤니케이션 태도 등 다양한 요소에 대해 B에게 조언하게 되었다고 해요. 

프로젝트 리더로서 자신은 당연한 코멘트를 한 것이고 후배에 대한 진심어린 충고라고 생각했는데, 돌아온 B의 대답은 전혀 예상 밖이라, 신경전을 벌이다 약간의 충돌이 있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A에 따르면) 대화 도중, B는 A의 의견에 전혀 동의할 수 없고, 되려 A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받아쳤다는군요.  “아 정말, 선배님과 저는 참 다른 사람이네요.” 라고.


선배를 무시했다며,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어 보이는 후배의 말과 태도에 A는 격분했습니다. 급기야 본인 때는 그렇게 일을 배우지 않았고, 저연차 때는 '태도가 전부'라는 나름의 명언을 투척하였지요.

아무튼 직장 생활에서의 고민의 8할은 일보다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어려운 사람, 맞지 않는 사람,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그냥 싫은 사람.


이야기가 격화되면서 저는 둘 사이의 일을 판단하기 보다, A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도움 될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선배로서 무조건적 지지와 편애가 아니라, 조금 따끔하더라도 순도 높은 관심과 애정을 주자고요. 제 경험까지 곁들이면서 상당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결론은 비교적 심플했습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전혀 다른 사고 방식을 갖고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해 왔다는 점을 인정할 것.

상대를 설득하려면,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명확하게 논점을 이야기할 것.

본인의 방법론대로 일을 하게 하려면 상대를 능가하는 역량을 가졌음을, 즉 '압도적'임을 보여줄 것. 

상기의 사항들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말을 삼가하고 다음 기회를 살필 것.


그간 쌓인 조직 생활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결국 비즈니스에서는 ‘사람을 이기려 하지 말고, 상황을 이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을 이기려 할수록 관계는 어긋나기 쉽다고. 그러니, 함께 문제를 해결한다는 마음으로 처한 상황에만 포커스를 맞추려고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선배의 위치에서 겪어야 할 ‘아름다운 성장통’이 아니겠느냐고 위로했습니다. 


제 후배 A는 저보다 훌륭한 인재였습니다. 

몇 주 뒤. 우리는 다시 만나 그 후에 벌어진 일을 업데이트했습니다. A는 그 때 저와 나눈 이야기를 떠올리며 자신이 과연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B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생각을 정리했다고 하더군요. 

그 결과 조금은 강압적이었던 자신의 태도를 먼저 반성했고, 후배와 터놓고 솔직히 이야기했다는군요. 

덕분에 요즘은 한결 대하기 편해졌고 B의 장점도 발견했다며, 꽤 만족해 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 주었다니 고맙기도 하고, 적잖이 놀라웠습니다. 저였다면 아마 속만 끓이고 있거나, 또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을지도 모르는데, A는 자기객관화를 통한 자아 성찰과 관계 개선이라는 멋진 결과를 이끌어냈으니까요.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람 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선배인지, 후배인지 뭐 그리 중요한가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지점마다 간혹 아름답지 않은 일이 벌어지는데, 그 갈등과 상처를 봉합하고 성숙해지는 것도 서로 마주서고자 노력한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연을 만나고 이야기도 나누겠지요. 때떄로 대하기 힘든 사람을 만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세련된 ‘선배’가 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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