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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elyn H Feb 27. 2024

오피스 빌런_감정 투척자

마음에도 '방범창' 하나 달아두세요!

부정적 감정이 곧 태도가 되는 사람을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가령, 집안 일로 기분이 상한 채 출근을 해서 동료들에게도 불편함을 여과없이 드러낸다거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상대방 탓을 하며 사사건건 날을 세우는 사람들을 가끔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러다 위험하게 감정의 '선'을 넘어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경우를 목도합니다. 오피스 빌런의 무례함을요.


15년도 더 된 오래된 이야기긴 합니다만, 컨설팅업에 첫발을 들여놓았을 때 일이 떠오르네요.

당시 대단한 경험도 능력도 없던 저는 동료들보다 업무에 시간을 더 많이 투입해야 했습니다. 늘 야근이었지요. 언제쯤 내 몫을 당당하게 잘 해낼까 하루하루 염려하면서요.

당시 팀 리더는 소위 인맥도 좋고, 스펙도 훌륭한 여성분이셨습니다. 같은 여성인데다 저와는 비교할 수 없이 프로젝트 경험이 풍부한 분이기에, 늘 배우는 자세로 따랐고 그 분도 저를 잘 대해주셨어요. 


그러던 어느날. 한창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살짝 삐걱거리고, 옆팀과 클라이언트 영업 경쟁이 불붙으면서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분은 모두가 눈치 볼 정도로 예민해지고, 매사에 극도로 신경을 곤두세웠어요. 날마다 팀원들을 일일이 압박하고 몰아 부쳤습니다. 그때까지만해도 그건 엄연히 일에 대한 것이니, 어느 정도는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잘하자, 다짐하면서요. 


그런데, 스트레스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희한한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낮 동안 일로 한참 시달리다 겨우 맞이한 늦은 저녁의 퇴근길, 갑자기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그 분은 통화하는 내내 상사에의 불만, 팀원들 험담, 조직 내 위치에 대한 불안감을 프로젝트에 대한 걱정과 조직에 대한 염려인 것으로 포장하면서 어두운 감정을 드러냈습니다. “이런 이야기하는 사람, OO이 밖에 없는 거 알지? 다 너 믿어서야.”라고 덧붙이면서 더 이상 할 말 없게 만들기도 했고요. 

그 때의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이제 막 들어간 조직에서 리더의 눈 밖에 나는 것은 절대 안될 일이었으니까요. 좋든 싫든 매일 30분 이상 이어지는 긴 통화를 감내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분의 이직으로 문제는 일단락되었고, 그렇게 그 '사건'은 잊혀졌습니다. 


그로부터 십수년이 지난 몇해 전. 대대적 조직 개편과 (임원)승진을 앞둔 연말 즈음, 알고 지내던 부서장 한 분도 저녁마다 전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직에 대한 불안한 전망, 임원 포지션에 향한 없는 열망, 상사와 동료(경쟁자)에 대한 뒷이야기 등 패턴은 과거와 비슷했지요.

통화가 몇 날을 거듭되고 시간이 길어지면서, 과거의 일이 불현듯 내 안의 비상등을 켰습니다. 아... 계속 이렇게 지내다가는 상대가 무단투기하는 감정에 대책없이 휩쓸리고, 끝내 쓰레기통처럼 여겨지겠구나, 하는 직감같은 것이었어요. 


사실 각성은 했지만 묘안은 없었기에, 부득이 ‘거리두기’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전화가 와도 김이 빠질 때까지 회신을 늦추거나, 다른 일을 하고 있어 통화가 쉽지 않겠다 메시지를 보내는 등 우회적 회피 방법을 썼습니다. 몇 번 반복되자 슬슬 눈치를 챘는지, 자연히 연락 횟수가 줄고 본인의 감정을 저에게 일방향으로 푸는 일은 현저히 줄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일단락된 것이지요.


누구든 각자의 감정은 소중합니다. 이유야 어쨌든 치밀어 오르는 분노도, 억누를 수 없는 괴로움도, 사라지지 않는 불안감도 모두 인간적으론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상대가 나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태도와 방식이 정제되어야 한다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꼭 필요한 순간, 절제된 형태면 좋겠지요. 그게 어쨌거나 퇴근 후 저녁 시간은 아닐테구요.


지인 하나는 비슷한 상황에서 본인은 정면 대응한다고 하더군요. '듣기 좀 불편하다, 자제해달라’고 말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다시는 그런 일이 없다면서요. 물론 저처럼 소심한 사람은 쉽지 않은 방법입니다만. 

어떤 방법이 좋을지는 사람마다 상대마다 다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다른 사람도 우리를 소중히 대할 거라는 겁니다. 만일 ‘감정 투척자’ 빌런이 여러분이 정한 선을 마구 넘어, 감정을 내던지려 한다면, 상처입지 않도록 미리 ‘마음의 방범창’ 하나씩 마련해 두는 게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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