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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im Sep 17. 2020

부모를 닮는다는 것

Day 11

1.

초등학교 때 학교 숙제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한 명씩 적어오기"

출제하신 선생님의 의도는 역사책을 읽거나 위인전을 읽고 오길 기대했던 것 같다.

너무도 멋지게 적들을 물리치고 나라를 지키고 영토를 넓히는 등 업적을 남긴 

조상들의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각자 생각해볼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숙제였을 것이다.


나는 그날 밤 책상에 앉았다가 라디오를 켰다가 카세트테이프를 틀었다가 뒤척이며 고민에 빠졌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책이랑 담을 쌓고 살았던 시기라 아는 사람도 딱히 없었고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는 노래방에서 몇 번 불러본 정도라고나 할까. 그러다 문득 멀리서 찾을 필요가 있나 싶어 '아버지'라 크게 쓰고 불철주야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시고 책임감 있는 모습들이 닮고 싶다고 썼다. 막상 아버지라 쓰고 나니 괜스레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 아래에 '어머니'라고 작게 쓰고 형과 나를 위해 매일 밥해주시고 돌봐주시는 따뜻한 마음을 닮고 싶다고 썼다.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제출했는데 선생님이 막 웃으셨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돌아가며 발표를 시키는데 에디슨, 세종대왕, 이순신 등 위인들이 나열되는 라인업에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친구들은 웃고 난리가 났고 그 순간에 나는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었다. 선생님은 괜찮다고 다독여 주셨지만 그러고 며칠 동안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었다.


한참을 지나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 나 자신이 기특하기도 하다. 부모를 존경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복된 가정환경 속에서 살아온 것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2.

아버지처럼 성공한 사업가가 되고 싶어 이른 나이에 창업을 결심했고(비록 거듭된 실패에 살짝 주눅이 들긴 했지만), 그 냉철한 판단과 고독한 싸움, "실패의 어머니는 성공이 아니라 실패는 실패다"라고 절벽 앞에서 언제나 배수의 진을 치고 최선을 다하셨다는 그 마음가짐을 배우고자 오늘도 결심을 다지곤 한다. 하지만 현실의 난 아빠보단 엄마를 많이 닮아 정이 많고 온순하며 끈질긴 고집 같은 건 찾아보기 어렵다. 승부욕이 없어 패배를 쉽게 받아들이고 노력은 하지만 끝장 볼 정도로 파진 않는다. 글보단 그림이 좋고, 쓰는 것보다 그리는 걸 좋아하는 모습까지 엄마를 꼭 닮았다. 외모까지 엄마를 닮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빠 아들이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정도이다. 인간적인 면에서, 인생을 더불어 살아감에 있어서는 엄마를 닮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덕에 내 주변엔 친구가 참 많다. 반면 그렇게 닮고 싶은 아빠는 닮아 가는 게 쉽지 않다. 어렸을 때부터 늘 아빠의 인정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한 역사이기에 다 큰 지금도 뭔가를 증명하기 위한 과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축구를 열심히 한 것도,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좋아하는 그림을 포기하고 인문계 진학을 한 것도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어 했던 어린 나의 생각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전혀 다른 아버지 모습을 닮고 싶은 나는 아직까지 집착하는 것을 보면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과연 그 길에 끝이 있을까 싶지만. 



3.

닮은 모습, 닮고 싶은 모습을 잘 섞어보면 어떨까? 내 마음대로 되진 않겠지만 내 존재가 부모의 합으로 만들어진 것이니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볼 일이다. 



3. 

아빠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한다고 떠들던 어린아이는 커서 어린아이들의 부모가 되었다. 

나의 자식들도 나중에 커서 엄마 아빠를 가장 존경한다고 기꺼이 말할 수 있는 그런 부모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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