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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im Sep 18. 2020

타임머신

Day 12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내게 타임머신이 있어 과거의 어느 날로 다녀올 수 있다면...

가장 즐거웠던 날로 갈까?

가장 후회되는 날로 갈까?

가장 슬펐던 날은 아닐 테고,

가장 화가 났던 날도 아닐 것이다.


나는 언제를 선택할까?


딱 한 번의 기회이기에 가장 그리운 날을 선택하기로 했다.

지금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 그 날로.


슝.


초등학교 5학년 가을 어느 날, 날씨가 선선하니 하늘도 높고 단풍이 들어 멋들어진 풍경이다. 

일요일인 오늘은 작은할아버지 댁에 놀러 가는 날이다. 어려서부터 작은할아버지가 친할아버지 대신이었다. 촌수로 따지면 복잡하지만 5촌 아재는 삼촌으로 불렀고 아직도 삼촌이다. 촌수와는 달리 그만큼 가까운 친척이었다. 작은할아버지를 아파트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파트에 사셨는데 어린 기억에 쉽고 친근하게 부르려고 아파트 할아버지라고 정했던 것 같다. 작은할아버지 댁에 놀러 가면 세상의 신기한 물건들은 다 있었다. 그래서 더 재밌었고 놀러 가는 게 기대됐다.


할아버지 직업은 외항을 다니는 무역선의 선장이셨다. 한 달, 때론 6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도 세계를 돌다가 복귀하셨는데 내가 간 그 날이 할아버지께서 부산항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6개월 정도 떠나시기 전, 다 같이 가족 식사를 하던 자리에서 뭐 갖고 싶은지 물어보셨다. 평소에는 딱히 갖고 싶은 게 없었는데 그 해에는 워크맨(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이 갖고 싶다고 말씀드렸었다. 그래서 더 기다려지는 날이기도 했다. 차를 타고 할아버지 댁에 가는데 어찌나 설레는지 달리는 차가 기어가는 듯이 느껴졌다. 도착해서 단숨에 뛰어 현관문 앞에 서서 벨을 누르고 반갑게 맞이해주시는 할머니와 삼촌 사이로 할아버지께 뛰어갔다. 유독 할아버지와는 스킨십이 자연스러웠는데 다 커서까지도 프랑스식 인사법인 비쥬로 반가움을 나눴을 정도이다. 그만큼 친구 같이 좋았던 할아버지였다. 


방긋 웃으시면서 꺼내는 워크맨 박스를 보는데 기뻐서 어쩔 줄 몰라했다. 드디어 쪼그려 앉아 카세트를 켰다 껐다가 형 눈치 보면서 라디오도 크게 틀지 못했던 지난날들을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현재는 사라진 AIWA라는 브랜드의 개인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당시만 해도 소니의 워크맨과 양대 산맥이었다. 그 선물 받은 워크맨이 너무 좋아 그날 밤 잠자리에 들 때 머리맡에 포장 그대로 놓고 잠들었었다. 금색으로 도금된 둥글게 깎인 외형이 너무도 멋졌다. 비록 재생해본지는 10년도 지났지만 아직 고향 서랍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왜 그 날을 선택했을까?


선물을 받아 기쁜 날이기도 했지만 일요일 오후 해 질 녘 거실 깊게 든 노을의 색이 너무도 선명히 기억난다. 맛있게 차려진 저녁 상과 할아버지, 할머니의 미소, 삼촌의 장난도 생생히 기억난다. 아주 따뜻한 그곳의 향기, 장면이 너무도 그립기 때문이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사무치게 보고 싶다. 언제나 내 얘기를 경청해주셨던 그 대화가 너무도 그립다. 천변길을 걷던 아파트 앞 거리의 풍경도 그립고 백양나무에 붙어 있던 장수하늘소를 잡았던 기억도 그립다. 


딱 하루가 주어진다면 그때로 돌아가 보고 싶은 할아버지를 안아드리고 싶다. 그리고 얼른 돈 벌어서 꼭 용돈 드리고 싶다고 했던 약속 꼭 지키고 싶다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다 같이 모여 앉아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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