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kim Sep 19. 2020

냉정과 열정사이

Day 13

1.

대학생활이 빨리 끝나길 바란 건 아니었지만 빨리 사회생활을 하고 싶었다. 

돈을 번다는 것은 자립의 첫걸음이자 생산성을 갖는 상징적인 변화라 생각했다. 


2.

구직활동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매해 최악의 구직난이라는 표현이 있듯 바늘 틈새처럼 좁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대학생활을 나름의 기준(?)으로 열심히 했기에 학점도 또래에 비해 많이 낮았고 시험 자체에 대한 반항심 때문에 소위 스펙이라고 하는 시험 성적표도 변변치 않았다.


3.

조금 다른 방식으로 구직활동을 했다. 가고 싶은 회사의 행사가 있을 때마다 쫓아다니며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명함을 돌리고 인사를 했다. 잠깐이라도 대화가 성사되면 이 회사에 정말로 입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곤 했다. 하지만 공채 과정에서 공정성 문제로 인적성 검사라는 변별 테스트를 통과해야 면대면으로 만나는 기회가 생기는데, 이 시험이 아이큐 테스트와 같이 나에겐 쉽지 않은 벽과 같았다. 매번 시험을 볼 때마다 속으로 거부감을 토로했는데, 원하는 인재상을 뽑는 건지 지능검사를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매번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내가 자신 있는 면접고사를 볼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가고 싶었던 모 회사에 명함도 그렇게 뿌리고 얼굴 도장도 찍었지만 결국 첫 관문을 돌파하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4.

성격상 패배를 잘 받아들인다고 앞의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좌절이라고 하면 조금 더 슬프고 잇단 '취업 패배'에 의기소침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이를 받아들일 때마다 뭔가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승부욕이 강한 편도 아닌데 뭔가 성취하고자 하는 욕구가 불타올랐다. 7번 정도 패배했을 땐가 활화산이 폭발하듯 의지도 가장 강해졌다. 가려가면서 넣던 입시원서도 어떤 일이든지 해보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바뀌었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겠다는 마인드셋의 변화와 함께 기계처럼 지원하기 시작했고 그중 몇 군데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그중 한 군데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5.

어렵게 입사한 첫 직장에서 취업준비생의 그때를 기억하며 업무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신입사원 연수부터 부서 배치를 받아 OJT까지 그렇게 열심히 할 수가 없었다. 1 지망은 아니었지만 차선으로 배치받은 부서도 더 큰 비전을 스스로 만들며 정말 열심히 배우고 선배들을 쫓아다녔다. 초년생부터 큰 기회가 있으련만 언젠가 불태울 그 날을 위해서 땔감을 채워나갔다. 


6.

그렇게 온 마음을 줬던 첫 회사가 2년 차가 되면서부터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망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무리하게 투자하고 관리를 못한 이유가 컸다. 이유가 어쨌든 간에 내부적으로는 동요했고 엑소더스가 시작됐다. 첫 직장에서 맞이한 첫 위기였고, 그 처음이 너무도 강력한 한방이기에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침몰하는 배에서 침착하기는 어려웠지만 망하는 회사를 경험해보는 것도 참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마음을 고쳐 먹었다. 


7.

누군가의 잘못과 실수, 의사결정의 실패를 수습하는 것이 쉽진 않았다. 책임질 사람은 위에 있겠지만 그 실무 단위의 일들은 미래지향적이지 않고 과거에 얽매여 있기에 한창의 나이가 짊어지기엔 너무도 무거운 짐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심리적 동요와 푸념, 한숨을 이겨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거기에 일까지 저러하다면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침몰하는 배에서도 스멀스멀 생겨나는 인간의 본성, 게으름과 현실 도피, 자기 합리화, 헛된 희망 같은 쓸모없는 감정의 잔해들을 바라보면서 내 결정권이 나에게 있지 않음을 처절히 느끼며 탈출을 결심했다. 그때는 이미 활화산 같던 초심은 사라지고 없었다.


8.

미래로 가는 첫걸음이자 내 인생에 있어 상징적인 이벤트였던 취업과 직장생활의 첫 페이지가 순식간에 불타고 연탄의 재처럼 식어버렸다. 바로 이직을 했지만 마음이 전과 같진 않았고 다소 기회주의적으로 판단하기도 했다. 이 회사의 재무 건전성은 어떤가? 얼마나 미래 가치가 있는가? 내 인생의 시간을 쏟을 만한가? 등등의 질문들로 채우다 보니 오히려 집중하지 못하고 금방 또 퇴사하게 되었다.


9.

그렇게 두 번의 퇴사를 경험하며 일에 대한 결정권과 열정을 되찾기 위해 창업의 길로 들어섰던 것 같다. 온전히 나에 의한 일이 되어야 하기에.

매거진의 이전글 타임머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