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2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 코앞이다.
올해는 그동안의 명절과는 조금 다르다.
첫째로 코로나 19라는 생활 전반의 변화와
둘째로 대목의 영업으로 인한 귀경 시점과 방법의 변화가 그러하다.
아직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발동 중으로 코로나 19의 여파로
정부에서는 이동 자제 권고가 내려왔고
여전히 100명 가까이의 확진자가 매일 발생하고 있고 말이다.
이 시국에도 새 가게를 오픈한 용감한(?) 나는
업의 특성상 추석 대목의 장사를 무시할 수 없는 터라
여차 저차 한 영세한 구멍가게의 사정 때문에 직접 추석을 준비해야 했다.
그리하여 귀성 행렬이 몰리기 전 하루 이틀 먼저 고향에 내려갔었던 지난날들과는 달리
올해는 직접 추석 전날까지도 가게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항상 KTX를 타고 내려갔었다면
올해는 표 예매에 처음 실패하면서 이리저리 찾다가 결국 비행기표를 구했고
추석 전날 내려가기로 일정을 확정하였다.
유독 우리 집은 명절과 가족 모임, 제사에 엄격했다.
다소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집안 얘기와 족보, 뭐 이런 굴레가 평생 따라다녔기에
저항하기보다는 순응하는 쪽을 택했고 우리 집은 이렇구나 받아들였다.
결혼 이후에도 정말 고맙게 아내도 깊게 이해해주었고 명절 갈등, 고부 갈등 없이 잘 지내고 있다(나만의 생각은 아니길).
유독 올해 상황이 많이 변했다. 명절을 위협할 정도로 위기감이 만연하고
가족 친지들이 한데 모이는 것보다 안전이 중요해졌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이런 농이 오간다고 한다.
"조상은 어차피 비대면, 거리두기 안 하면 조상 직접 대면"
정확하진 않은데 대략 이런 문장이었다.
제사도 랜선으로 지내거나 가족 식사도 랜선으로 하는,
그런 비대면의 문화가 어색하지 않은 현실이 되었다.
어쩌면 코로나 19가 미래의 모습을 빠르게 앞당긴 것 같다. 그리고 강제로 적응하게 만들었다.
옳고 그름의 문제로 정의하기보다 현실을 반영하는 하나의 현상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가족과 고향이라는 의미이다.
추석은 단순히 명절이기 때문에 모이는 것도 있겠지만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고 살아 내기 바쁜 일상의 회복
장르로 치면 휴머니즘에 가까운 인간과 사회성의 의미가 강하다.
내가 살아왔던 유년시절의 그곳에서 삶을 되돌아보는 반성의 의미도 있겠고
마음의 안식에도 큰 의미가 있다.
사실 내 기준에서, 남자 기준에서 작성되는 글이기에
긍정적인 의미를 강조할 수 있지만
반대로 아내의 기준, 여자의 기준에서 보면
또 하나의 적응해야 하는 환경의 변화나 가족의 의미로 발전하기 위한 과정일 수 있다.
그 과정 속에서 괴로울 수도 있고 인내해야 할 순간도 매번 경험할 수도 있다.
이런 상대성의 논리에서도 추석이라는 명절이 주는 의미는 있다.
반드시 긍정적일 수만도 없고 부정적이지만도 않겠지만 말이다.
받아들이는 과정,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
위와 같이 휴식과 반성, 대화와 적응, 발전, 인내의 차원에서도 추석은 역할을 할 것이다.
혼자일 때보다 신경 쓰고 배려해야 할 부분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추석의 의미를 되새겨 보며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에 대한 생각,
내 입장과 가족의 입장, 부모의 입장, 형제자매의 입장, 변화하는 환경 등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고 의미 있는 추석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