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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im Sep 14. 2020

나의 10대, 내가 좋아했던 기억들

Day 8

나의 10대를 돌이켜 본다.

특히 밀림 속 치열한 전쟁터 같았던 중학교 시절을 생각해본다.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말이 특히 와 닿는다.

인생에 더는 없을 일탈과 반항의 시기이기도 하다.

당시의 그 시간 속에서는 누구도 현실을 살지 않았던 것 같다.


전쟁터 같다는 표현도 다소 과장된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남아 있는 나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딱 그런 모습이었다. 

존재의 강함을 견주고 살아남기 위해 매일을 고군분투하는 일상의 반복이자, 

뭘 위해 왜 그러는지도 모르는 행동의 반복,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심, 

그런 게 멋져 보인다는 착각 속에 사는 시대와 공간이었다.


영화 비트, 넘버 3, 태양은 없다, 친구 같은 반항하는 청춘의 이야기들, 누아르 같은 장르의 19금 영화들이 

인싸가 되기 위해 당연히 봐야 하는 플레이리스트에 있었고, 

두 번, 세 번을 보고 나면 전염병처럼 중2병에 걸린 중학생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방화가 불가능할 정도의 큰 화재의 현장이 되기도 했다.


당시 영화 속 가상 세계와 현실의 괴리 속에서 자아의 모델링에 실패한 이탈자들도 다수 생겼던 시기이기도 하다. 무리 지어 행동하며 책임 또한 N분의 1 혹은 0에 수렴하던 그런 놀이와 행동들, 그리고 문제아 낙인, 멀어지는 학교 생활과 교우들의 관계, 그런 모습들을 많이 목격했던 것 같다.


대단히 어둡고 어지러웠던 시절들 속에 내가 좋아했던 기억들을 찾을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분명 그 속에서도 내가 좋아했던 기억들이 있다.


축.구.


축구라는 스포츠가 당시의 날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오직 하나에 몰입할 수 있는 소재가 되어 주었고 방어할 수 있는 물리적인 힘과 버틸 수 있는 정신적인 지지, 

그리고 건강한 취미를 함께할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을 만들어 주었다. 


공과 축구화, 뛸 수 있는 운동장만 있으면 혼자이든 여럿이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언제나 어디든 행복하게 공을 찰 수 있었다.


매일 같이 등교 전 새벽에 나가 홀로 연습했던 순간들

3교시 마치고 쉬는 시간에 다 같이 도시락 까먹고 점심시간 1시간을 통째로 반 대항 축구 경기에 썼던 기억들

학교 마치자마자 친구들을 모아 댄디뽀(대댄찌, 엎치라 뒤치라 등등 각 지역 방언이 많지만)로 나눈 팀으로 한 두경기를 마치고 교문 앞 슈퍼에서 앉아 유리병에 든 450원짜리 콜라, 사이다를 마시며 껄껄 댔던 기억들

주말마다 '아이러브사커'라는 사이트에서 학교별, 팀별로 온라인으로 약속하고 만나 경기를 펼쳤던 기억들

비공식 축구부를 만들어 지역 대회에 참가하고 준결승 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어 승부차기까지 갔었던 기억

집에 와서 얼른 씻고 데스크톱 앞에 앉아 피파99 축구 게임을 했던 기억

9시 뉴스가 끝나면 이어지는 스포츠 뉴스에서 내 우상이었던 제네딘 지단의 경기 결과를 기다렸던 기억들

체육 선생님이 주신 축구 교본을 읽으며 써먹지도 못하는 전술을 상상 속에서 펼치고 기본기를 훈련했던 웃지도 못할 학구열이 뿜뿜했던 기억들


나열하면서도 '내가 이렇게 살았구나' 싶을 정도로 축구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거의 모든 신체적 에너지를 운동에 쏟아부었던 그때 그 시절

반항심과 일탈로 작고 큰 사고들도 있었지만 다행히 다시 돌아와 중심을 잘 잡을 수 있었던, 

큰 위기를 무탈하게 지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 그런 소중한 길잡이 '축구'이지 않나 생각해본다.


때론 경쟁, 승부에서 지고 낙담할 때도 있었지만 인생이 단지 패배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고

내일을 위해 더 노력하고 성취하고 부딪히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연습을 하면서 

육체와 정신 모두 단단해졌던 것 같다.

그 동력으로 전쟁 같았던 시기 속 긴 터널을 자연스럽게 빠져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나의 10대, 내가 좋아했던 기억을 어둠 속에서 더듬어 보다가 

오늘날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이 문득 떠올랐다. 


"마음이 어지러울 땐 그냥 뛰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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