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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와레몬나무 Sep 05. 2019

낯설음의 자유

습관은 만들기는 어려워도 일단 만들어진 것은 쉽게 잊혀 지지 않는다. 아들이 떠난뒤에는 그의 이름을 부를 일이 없지만 딸아이를 부르거나 누구를 지칭할 때는 나도모르게 그의 이름이 불쑥 튀어나왔다. 심지어 남편은 나를 부를때에도 그의 이름을 들먹거렸다. 그럴때만다 우리는 당황하여 뒤수습을 어떯게 할지 몰라 멈칫했다. 

세상에는 같은 이름이 얼마나 많은지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거릴때가 있었다. K의 딸래미 이름도 아들과 같아서 그가 무심결에 아이의 이름을 언급했다가 머쓱할 때가 있었다.

"생각없이 딸애 이름을 말했다. 네 아들도 같은 이름이재? 미안타."

"괜찮아."

친구가 딸래미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미안해하는 상황이라니여러가지로 친구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자식을 있을법한 사람들끼리는 흔히 주고받는 질문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애가 몇이예요?"라는 것은 모든 두뇌 회로가 멈추는 것 같았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의 모임에 갈 일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오지랖넓은 외국친구들은 기회가 생기면 포터럭 파티나 저녁식사 모임에 초대했다. 매번 거절했더니 가끔씩은 집에 데릴러오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런 질문이 오가면 나는 애가 하나라고 해야할지 둘이라고 해야할지 머리속이 정리가 되지않고, 어쩌다 둘이였는데 이젠 하나밖에 없어라고 하면 그 순간 모임은 엄숙하게 변화고 내게 질문한 사람은 나보다 더 당황하여 "아임 쏘 쏘리쏘리"하는 말을 연발한다. 친구들이 배려하여 만든 자리를 나때문에 분위기를 망치는 것 같아 무척 미안했다. 이럴때는 외손주의 사망에 대해서 일절 말하지않는 친정모친이 부러웠다.

그런데 같은 질문도 장소에 따라 다르게 느낀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날 카미노 포르투갈을 걸을때였다. 카사 페르난다( Casa Fernanda)는 순례자들에게 자신의 집을 내어주고 스프를 대접하는 곳이라 포르투갈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곳이다.(지금은 사립알베르그로 운영중) 나도 호기심이 발동하여 지나는길에 잠깐 들렀다. 주인 페르난다는 마당에서 침대보를 널다말고 부억으로가서 차를 한잔하자고 안내했다. 한국에서 온 어머니와 아들, 리투아니아에서 온 청년그리고 브라질에서 온 페드루가 있었다. 

페르난다가 차와 커피를 준비하는 동안 한국 순레자는 믹스커피를 맛보이며 순간 자리는 커피이야기로 진지했다. 그러나 옆자리에 앉은 페드루는 영어대화에 소극적이고, 내가 포르투갈에 산다는 얘기를 듣자 그는 포르투갈어로 말을 걸었다. 흔히 그렇듯이 우리는 순례길 일정을 시작으로 어느새 가족관계까지 말하게 되었다. . 

 그는 이혼하고 아이 둘을 키우며 사는 보잘것 없는 변호사라고 소개하더니 "아이들이 몇이나 되요?"라며 물었다. 눈시울이 조금 시큰했지만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아들의 부재를 당황하지 않고 말한 것에 스스로 놀랐다. 길에서 낯선 사람들과 이국의 언어로 말하는 것은 자유롭게 만들었다. 

무엇때문일까? 길에서 만나는 이들의 감정을 나의 친구들과 같이 부담느낄 필요가 없고, 페르난다 집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자신만의 속도로 걷기때문에 다시 만날 일은 없고 설령 만난다치더라도 그는 스쳐가는 사람일 뿐이다. 게다가 둘이서 다른 화제 다른 언어로 말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헤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한번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쉬웠다. 낯선 길에서 자유를 얻은 것과 동시에 나는 스스로 아들의 부재를 말 할 수 있는 용기도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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