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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와레몬나무 Sep 06. 2019

삶의 이해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도 자신은 해당되지 않을거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것이 이별, 슬픔, 상실 과 같은 어두운 감정을 동반하는 일은 특히 더 그렇다. 대개 그런 일을 겪는 사람들은 팔자가 사납거나 전생에 지은 업보때문이지 "보통인생"은 그런 일에서 빗겨난 것처럼 여긴다. 보통이 담고있는 실체가 불분명해도 사람들은 보통만한 것도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나쁜경험은 '"특별하게 나쁜팔자"를 타고난 사람으로 한정짓는다. 나는 그랬다.

보통은 좀 밋밋해서 특별한 것을 좋아하면서도 내인생에서 험한일은 일어날 거라고 생각한적이 없다. 그런데 아들을 잃은 뒤 길을 걸으면서 "보통"이 가장 "특별"한 것임을 깨달았다. 타인의 아픔에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것도 그때부터 였다. 

나는 길에서 많은 삶과 죽음을 보고 들었다. 

카미노 포르투갈을 걷기 시작했을 때 카미노 카페에서 L을 알게되었다. 그의 순례길록은 참고할 사항이 많았다. 길표시와 꼼꼼한 사진정리, 특히, 물집예방을 위한 현실적인 조언이 도움이 되었다. 나는 그가 포르투갈 길을 걷다가 "카미노천사"( 길에서 친절을 베푼 사람을 부르는 말)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은 속내를 들었다. 나는 그 마을 지나면 잠깐 들러서 인사말을 전하리라 약속했다. 

 수소문끝에 그 분을 찾았지만 유방암을 돌아가신 뒤였다. 불과 3-4년 전만해도 살아계셨던 분이 돌아가시다니! 부탁한 사람도 찾아보겠노라고 장담한 나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삶이 영원하지 않고 언젠가는 마칠때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 가까이에서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다니 얼마나 한심한가!

 어느날, 걷다가 비를 만났다. 비는 순례길에서 가장 무섭다. 포르투갈 북부 민뇨(Minho)와 스페인의 갈리시아 지방의 비는 보슬비처럼 하루종일 부슬부슬 내리거나 바람을 동반한 폭우가 내리기 때문에 우산이나 비옷으로 피할 수 없다. 이럴 때는 결국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 잠시 피했닥 가는 것이 상책이다. 

 카페에 들어갔을 때 엄마와 딸로 보이는 청년 둘이 앉은 테이블이 보였다. 며칠전부터 그들을 보았지만 늘 웃고있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얼핏 들으니 큰언니가 발목을 삐여서 더이상 걸을 수 없는 상태였다. 3명이 다 중도포기할지 집으로 돌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다친 사람은 택시를 타고 가는걸로 마무리 되었다. 

 카페에서 나올 때 담배를 피우러 나온 작은 딸을 만났다. " 엄마랑 같이 걷는게 보기 좋으네요."라고 했더니 "엄마가 작년에 자궁암 수술을 받았어요. 엄마가 건강이 회복된 기념을 이곳을 걷고 싶다고 하셔서......"라며 희미하게 웃었다. 예상치 못했던 대답에 "봉 카민요!"만 남기고 헤어졌다.

Valença 와 Tuy 사이의 미노다리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북쪽국경선

 삶이 있는 곳엔 질병과 죽음이 있지만 나는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오십도 되기 전에 참척을 안고 산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자책한 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또, 성당의 필로리(Pillory)를 지날 때마다 자박하고 싶을 때는 얼마나 많았던가. 아들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 것을 탓하며 돌이라도 맞았다면 조금이라도 죄갚음이 되었을텐데, 자식을 먼저 보내고 삼시세끼를 먹고 사는게 치욕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토마르에서 알바이아제르(Alváiazere)로 갈때 넘어져서 얼굴이 퉁퉁부어올라도 마땅히 내가 받아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걸으면서 모든 삼라만상은 삶과 죽음이 함께 있으며, 자연을 보면서 죽음도 헛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유칼립투스 나무껍질과 코르크 나무도 묵은 껍질이 벗겨져야 새 껍질이 나오고, 썩은 껍질은 비옥한 땅이 되어 새로운 싹을 틔우게 하는 것을 보았다.

 유칼립투스는 부족한 강수량에도 끈질기게 생명을 유지하고, 코르크 나무는 심은지 40년이 지나야 코르크를 수확할 수 있다. 그 후 9년 동안 코르크 나무는 여리디여린 붉은 살을 드러내고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피딱지같은  상처가 아믄 자리에 두툼한 코르크가 재생되지 않는가!

 남편은 "민재가 생각보다 좀 일찍 헤어졌지만 넌 이제 자유야. 이건 민재가 주는 선물이야."라고 종종 말했다. 아들이 주는 선물,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삶의 이치를 제대로 보는 것이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슬픔을 나라고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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