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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와레몬나무 Sep 10. 2019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

 한국에서 수술과 방사선치료를 마친 후 포르투갈로 들어왔다. 내시경 시술에 잇달아 수술과 입원 그리고 방사선 치료로 지쳤다. 체중은 20킬로나 빠지고 피부는 바베큐 꼬치에 걸려있는 닭살처럼 뼈와 분리되었다. 손을 씻다가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아무리 비누칠을 하고 헹궈도 열 손가락 손톱눈과 오른쪽 새끼손가락에 있는 까만점이 지워지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항암주사 부작용이었다. 항암주사는 비정상적으로 자란 종양을 제거하는 목적이지만 현대기술로는 정상세포의 손상도 불가피하다.  부작용은 사람에 따라서 그리고 치료부위에 따라서 다르다.   

나자레(Nazaré)윗마을과 아랫마을을 연결하는 푸니쿨라

 직장은 자궁을 비롯한 난소, 질과 가깝기 때문에 이를 치료 할때는 여성의 생식기관 손상도 불가피하다.  어떤 경우에는 직장수술 한 자리가 제대로 아물지 않아 배설물이 질로 나오는 누공현상이 생기기도 하고 수술한 자리가 터져서 다시 꿰메기도 한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부작용은 없었지만, 덕분에 나는 더이상 생리를 하지 않게 되었다. 나로서는 생리를 하지 않는것보다 방사선 때문에 붉어진 항문이 더 큰 문제였다. 그것은 앉지도 눕지도 못하게 만들고, 설상가상으로 2/3 이상 잘라낸 직장때문에 화장실에서 사는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치료를 돕고, 몸을 회복하기 위해 걷는것이 무슨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20분도 화장실과 떨어져서 살수 없는 지경인데 밖에 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비내리는 리스본

암환자로 사는것은 신체적인 불편과 더불어 정신적으로도 견디기 힘들었다.  "여성다움"을 갈구하며 살지 않았지만 장기의 일부를 떼어내고 방사선 때문에 갑자기 생리까지 중단되자 뒤숭숭했다. 게다가 방귀는 생각지도 못한 직장암의 후유증이었다. 다른 후유증은 퇴원전에 간호사에게 들어서 아는 것이지만 방귀는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었다. 직장암 환자들이 방귀때문에 생긴 에피소드를 암환자 카페에서 읽었는데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포르투갈에 돌아온 후, 딸애도 와서 반가웠지만 방귀때문에 함께 있을수 없었다. 횟수도 문제지만 냄새는 더 고약했다. 얼마나 냄새가 고약했으면 딸애는 엄마 잃으면 방귀냄새로 찾을 수 있다고 했을까. 

나자레바다

방귀를 흘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냄새가 나도 묵묵하게 참던 남편이 조용히 일어나면 "아프니까 그렇지?"라며 당당한척 소리쳤지만 부끄러웠다. 

암의 재발과 전이는 떨칠수 없는 걱정이었다. 머리가 아프거나 허리가 아프면 혹시 뇌와 뼈에 전이가 되지 않았는지 심지어 모기한테 물린 자리도 의심했다. 그래서 정기검진이 있을 때마다 "암보다 정신병으로 죽을것 같아요."라고 말했다.의사는 대부분의 암환자들이 겪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라고 했다. 

암환자로 사는것은 어떨때는 '까짓것 사람이 늙으면 별수있나. 미니멀라이프가 유행이듯 전이된 장기도 좀 잘라내면서 살면되지. 그리고 이승에 있으나 저승에 있으나 어디든 가족이 있으니까 든든하네.'라며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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