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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와레몬나무 Sep 04. 2019

자신을 들여다보는 가장 쉬운 방법

               

어떤 인문학자는 걷기는 두발로 사유하는 철학이라고 한다. 언뜻보면 두발을 앞뒤로 왔다갔다 교차하는 것이 무슨 철학씩이나 될까 의아하다. 그러나 하루 아니 몇시간이라도 온전히 걸어본 사람은 특별한 기술과 장비가 필요없는 것에 왜 심오한 틀로 해석했는지 알 수 있다. 

 사실 걷기는 어떤 틀에도 갇힐 수 없는 것이지만 굳이 철학을 들이댄 것은 "자기를 돌이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를 돌이켜 보는것" 은 철학의 본질 "회의"혹은 "반성"과 같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네 자신을 알라"고 역설한 것도 이때문일 것이다.  

왼쪽 돌기둥의 노란색 화살표--산티아고로 가는 길

요즈음 사람들은 직장과 사회생활에 치여서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다고 하지만 혼자있는 시간이 많아도 그렇기는 매한가지다. 아들이 떠난 뒤, 나는 특별히 하는일은 없었다. 가끔씩 출장오는 직원들의 밑반찬을 만들고, 한끼 식사대접하고, 남편이 퇴근할 무렵에는 가면을 쓰듯 파운데이션으로 얼굴톤을 조정하는 것 뿐이었다. 그렇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것은 생각조차 못했다. 집안에 있는 물건 하나라도 깊은 생각에 빠지게 만들고 알수없는 나락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걷기는 달랐다.

폰트리마

혼자걷든 동행이 있든 걷기는 혼자 걷는것과 같다. 휴대폰을 보면서 걷는것도 동행과 말하면서 걷는것도 힘이 들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한다. 자신과의 대답이 시작되는 것은 바로 이때다. 자신의 내면으로 질문이 쏟아진다.요가와 명상도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고, 생각을 버려야 하지만 걷기는 자신의 내면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간다. 

그리고 닫힌공간에서 하는것과 무척 다르다. 집에서 조그마한 사물하나라도 보면 감정이 요동치고 그날 하루는 추스리지 못할만큼 가라앉는데 길에서는 달랐다.

 걷는 사람들은 목적지를 잘 찾아가기 위해서 이정표, 마일스톤, 리본등을 잘 보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나무둥치와 돌부리, 떨어진 나무조각 등을 잘보고, 길위의 생명이 꺽이지않도록 풀포기하나 조심해야 한다. 그러니까 걷기는 성찰과 경계가 적절하게 이루어지는 곳이다.

억척스러운 민뇨지방 사람들tㅓㅇ

 하루종일 비오는 어느날, 오래동안 짓누르던 문제를 해결했다. "가버린 자식은 잊어야 한다"는 것때문에 마음한켠이 언제나 무거웠다. 잊으려고 하면 더 그립고 보고싶고, 그리워하자니 나날이 힘들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잊을 필요가 없었다. 어미와 자식의 관계, 16년을 공들였던 사랑을 어찌 잊을수 있는가. 나는 잊는것 보다 그와 나누었던 일상과 생각 그리고 사랑을 간직하며 살기로 했다. 때로는 그것이 견디기 힘들지라도 그 16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게 아닌가!

리마는 망각의 강 레테(Lethe)에서 왔다.

작은 생각이지만 그것은 전환이고, 삶이 바뀐다. 

상실감이란 눈에 드러나지 않고, 상실감을 겪는 사람조차도 감정을 숨기기 때문에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슬픔은 나무에서 뻗어나온 가지와 같아서 내버려두면 어디까지 뻗을지 아무도 모른다. 아들을 잃은 상실감은 어떻게해도 돌이킬수 없는 사실인 것을 그걸 받아들이지 못해 애꿎은 조문을 들먹이며 나를 들볶았다.   그것은 스스로를 나약하고 좌절하게 만드는 것이자 상실감 보다 더 심각한 문제였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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