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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와레몬나무 Oct 19. 2019

차마고도

길은 또다른 길을 부른다

2016년 7월, 나는 포르투갈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포르투갈로 떠나기 전에는 서울 언저리 보다는 경기남부의 끝자락에 살았다. 그곳의 지리는 익숙해서 어디를 걸어야 하는지 알고, 함께 걸을 친구들이 있었지만 아들과 함께 살던 그곳에 돌아갈 수 없었다. 남편과 의논끝에 그 집을 처분하기로 했다. 그래도 남의 손에 넘겨주기 전에집을 보러갔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자 우리는 여전히 이곳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학교가는 버스를 타던 곳, 학원가는 길에 더우면 들러서 아이스크림 사던 슈퍼, 그의 절친 Y가 사는 집....... 주마등처럼 지난일이 떠올랐다. 속에서 뭔가 물컹거리며 생목을 타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잠깐 사이에 잡고 있던 핸들이 꺽였다. "뻥"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지만 이미 자동차는 아파트 화단을 넘고 그 바람에 타이어는 찢어졌다.   

리장(Lijiang)에 사는 토속부족의 민족의상을 입은 소녀 

새로 자리잡은 곳은 20여년 전에 살았던 곳이지만 인천부두를 대체할 새로운 항구와 서해안 개발붐때문에 걸을 만 한 곳을 찾을수 없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아파트 숲이었다. 아쉬운대로 아파트 내를 걸었지만 낮에는 햇빛이 뜨겁고, 밤에는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열기때문에 걸을 수가 없었다.

서울에 있는 지인이 정기저긴 걷기모임에 초대를 했지만 멀어서 몇번가고 그만두었다.

 그 무렵, 신혼시절에 사택에서 함께 살았던 M을 알게된 것은 다행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도 암수술을 받은 전력이 있어서 매일 집근처를 걷고 주말에는 등산을 다니고 있었다. M덕분에 논과 밭이 어우러져 있고, 불타는 노을이 이쁜 길을 알게되었다.  

나시객잔으로 올라가는 길에 내려다 본 풍경

그런데 어느날 K는 뜻밖의 계획을 말했다."차마고도".  차마고도는 카미노에서 만났던 마크때문에 처음 알게되었지만 언어의 장벽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K는 중국어를 잘하는 S와 가기때문에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K와 마크는 모두 카미노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차마고도는 카미노에서 만났던 두 개의 인연때문에 걷게 되었다. 

  차마고도는 실크로드 보다 200 여년이나 앞서서 교역이 시작되었으며 운남성(중국어로 윈난)의 명물 보이차를 실고 메리설산을 넘어 테베트의 수도인 라싸까지 가는 약 3000km 대장정이다. 교역의 시대에는 윈난과 스촨, 티베트를 연결하고 멀리 인도, 네팔, 서남아시아로 이어지는 대동맥을 말하지만 현재 우리가 다닐수 있는 길은 그중의 아주 일부분이다. 나시객잔에서 호도협이 있는 티나객잔까지 약 16km에 불과하지만 옥룡설산과 합바설산의 위용을 느낄수 있다.

 리장에서 호도협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한국인 3명을 만나서 빵차(미엔빠오처, 작은 승합차) 타고 나시객잔까지 가려고 했지만 점점 가팔라지는 황토길을 오르기엔 부족했다. 게다가 전날 내린 비때문에 황토길은 더 미끄럽고 군데군테 패인 웅덩이에서 차는 더 이상 올라오지 못했다. 운전사는 엑셀레이터를 밟고 남성들은 뒤에서 힘껏 밀어보지만 소용없었다. 운전자는 차를 포기하고 우리와 함께 나시객잔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S는 목적지에 가서 돈을 줘야 하는데 미리 주었기 때문에 이런 사단이 났다고 말하면서 못마땅해했다. 그가 중국문화에 대해서 잘 알지만 나는 오랜만의 외유에 투덜거리는 S가 마음에 들지않았다.  


상황이야 어찌됐건 운남성 골짜기는 아름다웠다. 운남성은 중국의 57개 민족 중에서 54개 민족이 산다는 것을 들었을땐 믿기지 않았는데 눈으로 보고나니 믿겨졌다. 

골짜기 골짜기마다 부족이 살고 있을 것같고, 그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은 거대한 장강을 타고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그 옛날 저 땅을 밟고 걸었을 마방과 말이 걷고 강을 건넜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차마고도의 아름다움을은 가족을 두고 먼길을 떠나는 마방과 말못하는 짐승의 비애가 어우러져서 만들어진 것 같았다.

나는 길을 걸을 때 가끔씩 뒤를 돌아보는 버릇이 있다. 지나온 길을 보면 똑바로 곧는 길보다 휘휘 굽어진 길이 더 아름답듯이 사람도 우여곡적을 겪은 사람의 인생은 깊이가 있어서 굽은길처럼 보일것 같았다. 

차마객잔의 바나나파이

 나시객잔에 이르자마자 화려한 부겔빌레라 아래 마부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곳부터 유명한 28밴드 고갯길이 시작된다.객잔에서 사람을 태우지 못한 마부는 "말 타세요. 말 타!"라고 외치고, 용케 사람을 태운 말은 워낭소리를 쩔렁이며 걸었다.

 28밴드는 생각했던 것 보다 그리 힘들지 않았다. 덕유산 향적봉 올라가는 정도의 깔딱고개가 한번 정도 있고, 고개길만 지나면 포슬포슬한 백설기같은 흙길이 나온다. 마부와 말은 28밴드 마지막 능선에서 왔던 길을 돌아간다. 마부는 말을 타지않고 걸어서 내려간다. 집안의 처자식을 생각해서 돈벌이의 최전방에 나선 말을 아끼는 마부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척박한 환경에서 서로를, 사람도 짐승을 배려하는데 정작 나는 동행들을 이해하지 못하다니 부끄러웠다. 

따쥐마을의 어느 객잔에서

설상가상으로 트래킹에 익숙하지 않는 S가 빗길에 넘어져서 무릅에서 피가났다. 가늘게 내리는 비는 앞을 볼 수 없고 우리는 근처에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겉으로 봐서는 객잔못지않게 큰 집이지만 세간살이는 간소했다. 그러나 가족모두가 저녁을 준비하는 따뜻하고 화목한 집이었다. 젊은부부와 웨이남매가 사는 곳이었다.

웨이의 아버지가 S의 무릅에 약을 발라주고, 젊은 아내는 중도객잔까지우리를 데려다 줄 차를 불렀다. 

 그 동안 나는 웨이와 인사를 했다. 나의 이름과 국적을 말하자 자신은 상그릴라에서 중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했다. 웨이와 마당으로 나오자 S는"이 집 딸래미가 영어를 잘한다는데요?"라고 말했다. 말 대신 엄지를 치켜 세웠더니 웨이의 아버지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중도객잔 가는길에 만난 중국소녀 웨이집

나는 왠지모르게 코끝이 찡했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갑자기 뜨거운 물이 얼굴을 타고 흐르는 것 같아서 몸을 돌렸다. 

운전해 줄 차는 생각보다 늦게 왔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후회했다. 운전기사는 고산증의 대표적인 증세인 딸국질과 하품을 번갈아가면서 했다. S는 조수석에서 끊임없이 운전기사한테 말을걸고 K와 나는 손잡이를 잡고 기도를 했다. 운전사는 커브를 돌때마다 전진과 후진을 번갈아 가며 했는데 나는 그가 후진을 할 때마다 손에서 마른땀이 나는것 같았다. 가까스로 중도객잔까지 왔다. 

 이틑날 중도객잔 발코니에서 지난밤에 온 길을 보았다. 28밴드가 계속 이어진것 같았다. 운전기사가 후진을 할 때마다 혹시 바퀴가 빠지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은 기우가 아니었다. 여전히 오금이 저렸다. 

아침공기는 무척 차갑고, 일행들과의 불편한 기류도 진사강의 탁류처럼 뿌옜다. 전 날, 관계를 풀기위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더 꼬여서 해결될 기미가 없어서 나는 이렇게 불편하게 다닐거면 따로 다니자는 말까지 해버렸다. 나의 선포를 예상하지 못한 S는 냉정을 찾고 며칠 더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여러가지로 고생한 S에게 미안하고 홧김에 뱉은 말을 사고하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티나객잔으로 내려가는 중 관음폭포에 이르렀다. 바윗속에서 뿜어나온 물줄기 소리가 마치 징을 때린것처럼 울려서 옹졸한 마음을 후벼파는것  같았다. 

그때 폭포소리를 가르는 S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폭포수 밑에 가서 서 봐요. 사진하나 찍어줄께요."

못이기는 척 발걸음을 옮기는데 S가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는데 이곳에와서 까맣게 잊어버렸어요. 우리 식구들이 깜짝 놀랄거예요."라며 소리쳤다.

"어머, 그럴수도 있어요? 여기가 해발 2345m예요."

지상에서 가장 높고 아름다운 길에서 다시 만날수 없는 좋은 친구를 아슬아슬하게 잡는 순간이었다. 티나객잔으로 내려갔더니 아침 일찍 출발한 사람들이 미리 와 있었다. 그들은 호도협으로 내려가고 우리는 달빛이 비취는 계곡 람월곡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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