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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와레몬나무 Oct 24. 2019

랑탕마을을 넘어 코사인 쿤다

모든것을 가질수는 없다


걷기를 취미로 삼은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걷기를 시작하고나서 나는 농부들이 계절마다 하는 일을 알게되고 무엇보다도 자연을 가까이에서 느끼게 되었다. 봄에는 배꽃이 흐드지게 피고, 모내기할때는 논에 물대는 일이 중요하고, 배꽃이 진 자리에는 배가 열리고, 한여름과 추석 사이에 복분자를 추수한다. 봄에 심은 벼는 잠깐 사이에 어른 허리춤까지 자라있고, 그때쯤이면 땡감과 밤톨도 영글기 시작한다. 또, 감이 저절로 땅으로 떨어질때가 되면 밤톨도 떨어지고, 푸르던 들판도 황금빛으로 변한다. 느닷없는 태풍때문에 나락이 쓰러져도 추수할 때는 어김없이 돌아오고, 볏짚을 잘라낸 자리는 서해의 노을이 가득 채운다.   

랑탕으로가는길

 그러나 언제부턴지 집집마다 공기청정기를 두고 생활하고, 밖에서 걸을 수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많은 것은 안타까웠다. 나는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는 것처럼 걸을 곳을 찾았다. 수술 이후에 그나마 컨디션을 잘 유지하는 것은 걷기 덕분이었는데 ,면역력은 예전같지 않았다. 

어느날, 눈이 침침해서 병원에 갔더니 포도막염이라고 했다. 의사는 가능하면 눈을 쉴 수 있게 하는 게 제일 좋고 피곤하면 재발하기 때문에 주의하라고 했다. 복용하는 약과 안약까지 써서 3주 뒤에 나았지만 재발을 밥먹듯이 했다.  

라마호테로 가는길의 콜라강

 공기, 깨끗한 공기를 생각하다 문득 월정사에서 만난 네팔리가 떠올랐다. 사진을 찍고 있던 그에게 모친과 나의 사진을 부탁하는 것이 계기가 되어 오대산 국립공원에 대하여 몇마디 나누었다. 그는 자신의 나라에 있는 랑탕 국립공원에 꼭 가보라고 했다. 자료를 조사하기 위해 네팔과 히말라야 트래킹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마침 랑탕트래킹을 앞두고 있는 B를 만났다. B는 나보다 서너살 많은 남자고, 그는 네팔에 가는 것이 세번째라고 했다. 

머리장식이 많은 우두러미 노새지만 짐은 힘겹다

 네팔에는 에베레스트를 비롯하여 칸첸중가, 마니슬루,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 등 8,000m급의 히말라야 봉우리와 그 아래 3-4000m급의 봉우리가 있다. 그동안 차마고도를 비롯해서 키나발루(Kinabalu, 비록 정상은 가지못하고 베이스캠프에서 3,800m 머물렀지만), 사파(Sapa)를  다녔지만 그것들은 모두 네팔에 있는 작은 봉우리였다. 세계의 트래커들이 카트만두에 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체르고리에서 바라본 전망

 하지만 남편은 나의 네팔행을 마뜩찮아 했다. 열악한 위생때문에 혹시 몸에 탈이 날까봐 걱정했지만 나는 포도막염을 핑계댔다. 맑은 공기와 계곡을 걸으며 미세먼지 때문에 숨구멍을 닫아버린 세포가 대자연의 품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은 상상만해도 좋았다. 만년설이 쌓인 웅장한 산, 쪽빛 하늘과 푸른 대기에 잠든 도시! 바로 내가 상상했던 네팔과 랑탕이었다. 아뿔사!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했을 때에 나의 상상은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카트만두는 세상먼지가 모두 모인곳 같았다. 웬만하면 한 나라의 수도에 있는 중심도시 타멜(Tamel)은 웬만하면 깨끗할법도 한데 네팔은 그런 예외는 없는것 같았다.   

 체르고리(CherGori)정상

왜냐하면 네팔의 먼지는 히말라야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산을 갖는 댓가였기 때문이다. 높은 산이 둘러싸인 도시는 분지가 되고, 밖으로 나가지 못한 먼지는 도심 곳곳에 덕지덕지 쌓여 있었다.

 "조용한 대기에 잠든 도시'는 트래커들의 설레임과 흥분 그리고 그들을 상대하는 장사치들로 들썩였다. 네팔리는 감정표현이 마치 어린이와 같았다. 기쁘면 가지껏 크게 웃고 화가나면 새벽이든 밤이든 악다구니 쓰면서 고함을 질렀다. 대신에 흥이나면 낯선사람을 가리지않고 노래를 불렀다. 

라우레비나(3,910m)에서 본 일몰

나의 일정은 사브루베시에서 간진곰파(Kanjin Gompa, 3,670m)까지 갔다가 코사인 쿤드를 넘어 순다리잘(카트만두)로 내려오기로 했다. 랑탕계곡의 콜라(Khola)강은 징소리를 내며 사납게 흘러서 네팔이 세계 물부족 국가라는게 믿기지 않지만 길은 팍팍해서 걸을때마다 먼지가 일었다.   

바위에 그린 자연표지석, 나의 일정은 사브르베시 -->랑탕의 끝 강진리 -->뱀부마을(현재의 지점) -->코사인쿤다로 가는 15일 여정임

랑탕은 한마디로 공존의 땅이다. 이곳에 사는 타만족과 티벳족, 트래커들, 짐승과 사람, 불교와 힌두교, 산사람과 죽은 사람이 함께 산다. 이웃마을에 결혼식이 있으면 2-3000m 의 고지를 마다않고 달려가는 타만족 이웃이 있고, 짐을 나르는 노새와 비대한 몸을 흔들며 풀을 찾는 야크와 염소, 붉은 원숭이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트래커들을 희롱하는 길이다. 공존은 정신세계도 예외가 아니다. 불교와 힌두, 두 종교는 히말라야 능선에 고인 신물, 코사인 쿤다(Kosain Kunda, 4,380m)조차 종교적 성지로 공유한다. 이곳의 이치가 이렇다보니 그들은 죽은 사람을 묻은 땅위에 여전히 살고있다.

2015년 4월 25일에 랑탕에는 규모 7.8의 대지진이 일어났다. 랑탕마을 계곡은 한여름의 정오때처럼 평온하고 조용했다. 롯지에는 점심먹는 사람들과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로 붐볐는데 갑자기 엄청난 진동과 산사태가 일고 마을전체가 쓸려버렸다. 200명이 넘는 주민과 많은 여행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아름다운 랑탕마을은 이제 전설이 되었고, 우리가 걷는 길은 죽은 이들 위에 새로 만들어진 마을이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마니석(티벳 불교경전을 적은 돌)과 마니차(풍차처럼 돌리면서 기도하는 것)가 많이 보였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없는 삶과 죽음이 하나일수 밖에 없는데 어리석게도 그것을 구분하여 잊느니마느니 얼마나 속을 끓였던가.

한껏 멋을 낸 가이드와 타만족 아기, 롯지에 묵었던 한국인이 써 준 메뉴판

길에서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곳곳에 배움이 있다. 포터 마일락은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않고 수년간 포터일만 해온사람이지만 나는 그로부터 다른사람을 배려하고 나누는 법을 배웠다. 나는 간식을 항상 마일락과 나누었다. 그런데 롯지에서 쉴때, 주인 아주머니께서 한국산 과자를 좋아하신다고하자 마일락은 간식보따리를 아주머니께 주었다. 지켜보던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그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없었다. 전날 떠난 가이드는 나의 간식통조차 자신의 아이에게 준다고 가지고 갔는데 비교되었다. 가진 것이 많지않음에도 나눔을 한 그의 얼굴은 라우레비나의 석양 보다 더 찬란했다.

 코사인 쿤다로 오르는 길은 바위산이며 호수에는 고운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눈발은 점점 굵어졌다. 나는 우리와 반대쪽에서 넘어온 네팔리 대학생들과 호수가로 내려갔다. 반은 얼어서 은빛으로 빛나고, 얼지않은 호수는 신성이라도 들어있는 것처럼 신비로웠다. 청년들은 점프샷을 찍으며 즐거워하고 그들의 웃음소리가 하늘에 퍼졌다. 나는 얼음위를 걷다가 드러누웠다. 눈발이 날리는 하늘은 그리운 얼굴조차 흐릿했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언제나 함께 있을거야. 엄마가는 곳에 너도같이!'

그 사이에 롯지에는 새로운 손님들로 붐볐다. 랑탕과 달리 이곳은 수목한계선을 넘어서는 지역이라 땔감이 부족했다. 음식을 조리하는 네팔리가 부엌에 이불을 펼때까지 난로가 있는 부엌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물티슈로 얼굴을 닦으려 했지만 그것마저 꽁꽁 얼어서 점심을 먹을때서야 비로소 씻을수 있었다. 코사인 쿤다에서 치사파니(ChisaPani, 2165m)를 거쳐 카트만두 계곡에 있는 순다리잘로 내려왔다.  

룽다(Lung ta), 오색의 사각처네 만트라나 라마교 경전을 목판으로 찍은 기도깃발, 수직장대에 매단것은 타르초(Darchor)라고 한다.

순다리잘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공항으로 갔다. 포카라로 들어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배낭을 정리하다가 코사인 쿤다 호수에서 떠 온 물병을 보았다. B에게 연락했더니 그는 벌써 한국에 도착해서 쉬고있었다. 물은 코사인쿤다를 노래불렀던 B에게 주려고 떠왔지만 순간 모친의 얼굴이 스쳤다. 공존과 화합의 물, 모친과 나의 인간적인 이해와 모친의 종교와 나의 종교가 화합되기를 함께 빌었다. 


눈내리는 코사인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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