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리브와레몬나무 Aug 27. 2019

그날


신트라 페나성(PALACIO PENA)


 포르투갈의 7월은 뜨겁다. 태양은 아침부터 한여름 해변가의 태양처럼 한 줄기 햇살만 닿아도 따끔하다. 등교길에 보는 하늘은 짙은 푸른색 잉크를 뿌려놓은 듯 푸르고 눈부셨다. 멀리 신트라(Sintra) 산 봉우리에는 맑은 날에만 볼 수 있는 삿갓 구름이 걸렸다. 

 삿갓구름이 산봉우리  근처를 에워싸고 있어서 마치 신트라 산이 왕관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구름은 포슬포슬 잘 구워진 시폰케이크처럼 신선하고 창문을 내리고 손을 뻗으면 금세라도 잡을 수 있을것 같았다. 

 여느때처럼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 평범한 날이지만, 신트라의 날씨가 맑은 것은 보기드문 일이었다.  

 포르투갈은 여름에 비가오는 날이 드물지만 신트라는 구름이 끼고 비가오는 날이 잦다. 

 "엄마, 구름이 왜저래 기분나쁘게" 

"난 이쁘기만 한데. "

"구름속에서 뭔가 나올것 같지 않아?"

"그러지마. 저긴 바이런이 에덴의 동쪽이라고 말했던 곳이거든."

아래에서 올려다 본 페나

아들은 10년만에 돌아온 포르투갈 생활을 신기해했다. 17개월 아기로 왔다가 초등학교 입할 할 무렵에 들어갔으니 기억할리 없다. 그래서 이곳에서 보는 것은 무엇이든 신기해했다. 생산연도가 씌여진 자동차번호판, 고등학생들의 선택수업, 하버드 출신의 교사 등 무엇이든 대단한 발견자처럼 말했다. 그러나 그날의 구름에 대해서는 너그럽지 못했다.

 학교에 가는 길이고 이튿날은 포르투갈에 이사온 집들이 겸 남편의 생일로 분주했기 때문에 구름얘기는 그것으로 끝났다. 학교는 방학이지마 농구캠프가 있었다. 캠프는 1주일 전에 시작하여 그날이 끝나는 날이었다.

 아들은 중학교 체육시간에 드리블과 슈팅 시험때문에 농구공을 만져보았지만 포르투갈에서는 딴판이었다. 체육시간에 하는 농구수업도 정식 게임을 하듯이 학생들끼리 편을 나누어 했다. 수업시간에 승부가 나지 않으면 게임은 자연스럽게 방과후에도 이어지고, 부족한 기량도 연습하곤 했다. 

신트라 맑은날 멀리 카스카이스해변까지 보인다

 농구캠프에 참가한 몇몇은 학교대표 선수로 뿝히는게 꿈이었다. 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리스본에 있는 국제학교는 1년에 한 번 스포츠 축제가 있다. 그 중에서 농구는 아들이 다닌 학교가 해마다 우승을 하는 종목이어서 프라이드가 대단했다. 

아들은 운동을 좋아하지만 농구 캠프에 들어간 것은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였다. 은행송금 문제로 등록이 늦어지자 친구들은 왜 같이 하지 않느냐고 종용했다. 나는 아들이 포르투갈에 온지 4개월 정도 되었고 학교 생활이 의외로 피곤하다고 했기 때문에 집에서 쉬었으면 했다. 그러나 그는 브라질 월드컵에 같이 가기로 약속한 카를로스와 같은 동네에 살앗던 캐넫언 에드뤄드 그리고 한국인 친구 S도 캠프에 있었기때문에 참여하고 싶어했다. 게다가 아들은 카를로스와 더불어 양 팀의 골게이터였기 때문에 아들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무어인의 성에서 본 신트라궁(PALACIO NACIONA DE SINTRA)

" 엄마, 내가 우리팀 리더야. 코치 선생님이 가르쳐 준 기술을 잘 이해한다고 조금한 연습하면 훌륭한 선수가 될거라고 했어."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갑자기 무리하면 안돼.축구보다 농구가 훨씬 격렬한것 같애. "

"사실 그렇긴 해. 나도 운동을 안하다가 하니까 힘들어. "

"좀 쉬면서 해야 되는데, 지난번에도 농구하다가 기절했는데 그것도 아직 병원에 못가봤잖아."

"오늘만 하면 캠프 끝이니까 주말에 아빠 생일파티하고 다음주에 가요."
"아니면 마치고 같이 병원가볼까?"

"안되요. 농구마치고 이스라엘 친구가 초대했잖아. 걔네 아빠가 내게 대해서 궁금해하시는 것 같애. "

"그래. 그럼 이번주는 엄마도 이래저래 안될것 같고 월요일에 가보자."

학교에 내리는 아들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다. 자동차 시동을 켜고 사이드미러로 아이가 가는 뒷모습을 한참 보았다. 아들을 다시 차에 태울까 생각하다가 집에 벌여둔 일이 있어서 돌아왔다. 

 아들이 다닌 지 얼마되지 않는 외국인 학교에 잘 적응하고, 같이 다니는 친구들도 있고 , 게다가 친구의 아버지까지 아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60여일 만에 한국에서 보낸 이사짐을 받아서 집들이를 하는 날인데  마음은 안정되지 않았다. 아들의 긴 그림자를 봐서인지 이상하게 일도 손에 잡히지않고 생일케이크 만드는 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친구집에 가기 전에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올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열 여섯이나 된  아들일에 너무 관여하는 것 같아 포기했다. 문득 가구점에서 준 유리잔이 생각났다.

 전날 학교 근처에 있는 가구점에서 서랍장을 사기로 했는데 주인은 유리잔 2개를 덤으로 주었다. 하지만 주문은 취소했으니 덤은 돌려줘야 할 것 같았다. 마침 가구점도 학교근처에 있기 때문에 운전중에 다시 망설였지만 바로 가구점으로 갔다.

유리잔을 대나무로 만든 의자에 놓는 순간 "쨍그랑" 소리가 났다. 의자는 등받이가 없어서 유리잔이 든 종이가방이 떨어졌다. 가방을 보니 유리잔 하나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그때 낯선 전화번호가 휴대폰 화면에 떴다. 

"케이즐(CASL)입니다. 민재 킴이 쓰러졌는데 어머니께서 오셔야 할 것 같아요."

얼른가야지 하는 생각과 달리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남편도 이 소식을 들었을까? 아니 정말로 쓰러진 걸까 온갖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학교에 도착했지만 주차할 곳이 없었다. 나는 학교 멀찍이 주차를 하고 걸어갔다. 아들의 사회선생님이 교문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교문 경비는 방문자의 신원도 확인하지 않았다.

'사단이 났구나!' 그때부터 무서웠다.

 학교 본관건물을 돌아서 강당으로 갔다. 그들은 우리가 보이자마자 양쪽으로 물러섰다. 넓은 강당에 소방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수많은 눈동자들이 나를 보는것 같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들이 보이지 않아서 가장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소방대원을 주시했더니 그가 멈춘 발밑에 아들이 누워있었다. 농구복은 찢겨진 채로 산소호흡기를 달고 누워있지만 얼굴은 곧 "엄마왔어?"하고 일어날 것 같았다.


소방대원들은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처치는 만족스럽지 않은지 우왕좌왕 했다. 마음같아서는 아들을 얼른 병원으로 이송했으면 싶은데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오고있을까?' 이곳까지 오려면 70KM나 운전해서 오는데 제대로 오는지 아니면 행여 너무 늦어서 아들의 깨어난 모습을 영원히 보지 못할까봐 초조했다. 민재와 입구를 번갈아 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들은 앰블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나는 교사의 차를 타고 그 뒤를 따라갔다.








                                                                                                                                                                                                                                                                                                                                                                                                                                                                                    

           























 














이전 02화 나를 구원하는 걷기와 글쓰기 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