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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와레몬나무 Aug 24. 2019

사흘, 긴 시간

엠블런스는 학교와 가까운 카스까이스 병원에 도착했다.

카스까이스 병원! 이곳은 며칠 전에 문구점에 왔을 때 보았던 곳이고 그때도 병원을 가느냐마느냐 두고 아들과 얘기했던 터라 더 황망하였다. 그때 왔어야 했는데......여름방학 직전에 아들은 수학시험 결과 월반했다. 아들은 발표소식을 듣자마자 다음학기 수학수업에 필요한 공학계산기를 사러가자고 했다.  대형문구점에 이르렀을때 바로 옆에 병원이 있었다. 


 "계산기 보다 병원을 가야되는거 아냐?"

"엄마, 오늘은 피곤하니까 그냥 계산기만 사고, 쇼핑센터로 바로 가요. 아빠 생일선물 사서 집에가서 쉬고 싶어요." 후회해도 이미지난 일이다.

아들은 현지나이로 소아에 해당되지만 소아병동에는 그의 덩치에 맞는 침대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성인환자가 있는 중환자실에 들어가고, 우리는 그가 소아에 외국인이라는 이유때문에 아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아들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인터넷 검색밖에 없었다.

아래에서 올려다 본 페나성

신체적 손상없이 깨어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TV 드라마처럼 보호자들이 한눈파는 사이에 혹시나 아들의 말초기관이 신호를 보내지나 않을까 그를 주시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했다. 

간호사가 들어와서 환자의 몸을 닦고 보살필 때, 병실밖에서 기다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더 절망적이었다. 중환자실은 우리를 더 암울하게 만들었다.

 침상마다 커튼이 가려진 병실, 여럿 환자가 있지만 바스락 거리는 이불소리는 커녕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이곳에서 아이를 데리고 나가야 하는데......' 남편은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아들에게 신호라도 보내듯이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페나성의 처마- 해초와 조개를 상징하는 마누엘양식

 "4시간 만에 일어나면 뇌손상은 없다고 했어. 그 전에 일어나겠지?" 그는 아무 댓구도 하지 않았다.

4시간, 4 시간 , 4시간이 문제였다.

시간은 우리편이 아니었다.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아들 몸에 호스 하나를 더 연결했다. 하루가 더 지났다.

이튿날 날이 밝자 간호사는 아들의 몸을 닦으러 들어왔다. 그의 손에 들린 기저귀가 눈에 띄었다.

땅끝마을(Cabo da Roca)

 1998년 남편이 포르투갈로 부임하던 첫 해에도 아들은 17개월짜리 애기였고 기저귀를 차고왔다. 한국으로 돌아온지 10년만에 다시 포르투갈로 왔지만 아들은 여전히 기저귀를 차다니! 억장이 무너지는것 같았다. 아들의 얼굴은 부어서 손가락으로 누르면 살은 탄력이 없었다. 

카보다로카에서 트래킹하는 사람들

사흘째가 되자 의료진들은 냉각요법을 시작했다. 의사는 처치법은 한국과 다르지않고 환자상태가 위독하지만 청년이기 때문에 알수 없는 일이라고 극단적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새벽에 들어온 간호사에게 아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 물었더니, 그는 대답대신에 다른 형제자매가 있으면 부르는게 좋겠다고 했다. 

 아들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인내심이 바닥을 쳤다. 며칠 전만해도 남편의 생일선물로 향수를 사고, 자기처럼 아빠를 생각하는 아들이 없을거라며 우쭐거리던 애가 아무말없이 며칠째 누워있다니. 

 반칙이다.

아들은 남편을 좋아하고, 도덕시간에 존경하는 사람을 아빠라고 쓰는 아이었다. 쳐다보기만 해도 흐뭇해서 웃음을 감출 수 없게 만들었던 자식이 부모앞에 누워있을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의 빰에 얼굴을 부볐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갈수록 침묵이 무서웠다. 침묵은 병실에 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릴것 같아서 무엇이라도 고요한 침묵을 깨야만 할 것 같았다.

카보다 로카에서 본 파도치는 대서양

"자기, 민재가 중학교 3학년일 때 S 엄마랑 역술가한테 간적이 있어. 그사람은 여든이 넘었고 보청기까지 하고 있었어. 누가 사주풀이가 독특하다고 해서 찾아갔어. 그런데 그 사람이 민재 것을 보더니 애가 많이 떠돌아다닌다는거야. 네. 여행하는거 좋아해요 라고 말했더니 그런게 아니라며 애가 학교는 잘 다니고 있는지  묻더라구. 내가 무슨소리냐며 펄쩍 뛰었어. 전교 1등하는 애한테 무슨 소리냐며 화를 냈더니, 만약 살아있으면 한 몇년은 힘들지만 그 고비만 잘 넘기면 잘 살거라고 했어. 지금이 고비겠지?"


"그런일이 있었어?" 휴대폰과 아이를 번갈아보던 남편이 댓구했다.

"응. 너무 기분나쁘고 재수없어서 안했나봐. 그런데 우리 민재랑 사진 찍어야 되지 않나?  이렇게 누워있는동안 우리가 얼마나 애가 탔는지 모를거 아냐?" 남편과 나는 누워있는 아들옆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시간은 다시 침묵속에 흐르고 "애를 데리고 오는게 아니었는데......"라는 남편의 한숨소리가 들렸다. 남편의 한숨소리에 나는 무너지는것 같았다. 기도를 했다.

"어느 분께 기도를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처음하는 기도지만 중요한 문제여서 한 분에게만 의지할 수 없어 여러 신들을 부릅니다. 가네쉬, 조로아스터, 부처님, 예수님, 알라여! 제 아들은 부모와 누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우리한테는 사랑스러운 아들이고, 누나에게는 자랑스러운 동생이었습니다. 가끔씩 남매가 싸우기도 했지만 다툼없이 자라는 오누이가 있겠습니까?

등대쪽에서 본 카보 다 로카

 아들은 신사의 품격처럼 멋있게 살고 싶어 했습니다. 아들이 이렇게 계속 누워있다면 그리고 누워서 생활한다면 그것은 아들이 원하던 모습이 아니고 저도 그런 아들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살 수 없습니다. 제 아들이 학교에 가던 그모습 그대로 저희와 함께 집으로 갈 수 있기를 빕니다. 만약 그럴수 없다면, 없다면 당신들의 뜻에 맡기겠습니다."

처음하는 기도는 형식도 두서도 없었다. 기도를 마치자 의료진들이 들어왔다. 보호자는 중환자실 밖으로 나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뭔지 모르지만 간호사 들어와서 기저귀를 갈때와 다른 분위기였다. 남편과 나는 중환자실 복도에서 서성거렸다. 간호사가 다급하게 뛰어왔다.

에메랄드 빛 대서양

"킴(Kim)이 눈을 떴어요!"

뛰었다. 갑자기 신발이 벗겨졌지만 그대로 뛰었다. 남편이 손목을 낚아채며 "얼른 신발 제대로 신고 정신차려." 완곡한 말투였다. 의료진들이 아들을 애워싸고 있었다. 아들의 의식은 돌아온 것 같지만 눈동자는 아들의 모습이 아닌것 같았다. 까맣고 동그란 눈동자가 부처의 눈처럼 3분의 1은 감긴것 같고 초점이 흐릿했다. 가까스로 붙어있는 의식은 곧 꺼질것만 같았다.

"민재야 엄마야. 내말 들리지? 사랑해."

"민재 수고많았어."남편도 옆에서 거들었다. 아들의 입이 달싹거렸다.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갖다 대자 간호사가 입안에 호수가 많아서 자칫하면 다칠수 있다고 아들이 말하는 것을 자제시켰다.

카보 다 로카 등대

 "민재야 다칠수 있다니까 이딸가 말하자. " 고 했더니 힘없는 입동작이 멈추었다. "학교선생님이 오셔서 너보고 스트롱 보이라고 하면서 넌 곧 일어날거래." 반응이 없었다. 나는 또 말했다. "엄마는 네 엄마여서 영광이야."라며 생각나는대로 말했다.

 의료진은 아들을 리스본에 있는 산타마리아 병원으로 이송하기로 결정했다. 그곳에 소아 심장센터가 있기때문에 정확한 검사이후에 처치가 가능하다고 했지만 남편과 나는 불안했다. 아직 온전치 못한 아이를 이송하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봐 걱정되었다.

벨렝(Belém) 제로니무스 수도원

그날 밤 10시 쯤 산타마리아 병원에 도착했다.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산타마리아 병원은 카스까이스 병원에 비하면 구식이었다. 아들은 응급실로 들어갔지만 산소통에 문제가 있는지 곧 연결하지도 못하고 스태프는 우왕좌왕했다. 무슨 일이냐고 묻고싶었지만 더딘 손이 더 느려질까봐 지켜볼 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카스까이스 병원에서 설명할 때는 무슨 대단한 병원같았는데 막상 와보니 한 눈에 영세한 국립병원이란걸 알 수 있었다.

 담당의사가 불렀다. " 환자의 의식이 돌아왔다고 해서 검사를 허락했는데 이런 상태로는 힘듭니다. 상황을 장담할 수 없어요."라며 보호자는 병실밖에서 대기하라고 했다. 황망했다.

병실 밖이라고 해봤자 마땅히 기다릴 곳도 없고 혼미한 정신을 깨우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는 병원앞에서 기다렸다. 산소통이나 제대로 연결했는지 걱정하면서. 

제로니무스 수도원 야자수 회랑

남편은 진정하라고 말하면서 "괜히 옮긴것 같애. 카스까이스에 그냥 있을걸......"라며 중얼거렸다.

포르투갈의 밤은 쌀쌀했다. 한여름이지만 새로운 계절이 모퉁이에 기다리고 있는것처럼 스산했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짙은 남색, 하얀 별이 아득히 먼곳에서 빛났다.

포르투갈, 어쩌다 나는 이토록 먼 나라에 와 있는걸까? 어째서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이곳으로 왔을까. 리스본의 알파마부터 골목길 하나까지 익숙하고 반가웠는데 그날따라 생소했다. 멀리서 간호사가 뛰어왔다.


발견기념탑 엥리케왕자와

2013년 7월 21일 밤 11시였다.

 "방금전에 킴이 숨을 거두었어요."

간호사의 말이 밤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나는 아들이 죽었다는 소리보다 작은 생명하나 지켜주지 못한 신들이 야속했다. 신이 왜 신인가!  인간이 한계상황에 놓이면 그들을 찾는 것이고 비록 내가 온전한 아들을 원한다고 하더라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 하는게 아닌가! 어떻게 그 어린 생명을 데리고 갈 수 있단 말인가. 신은 에미의 진심을 들어야지 어떻게 이런 자들을 신이라고 하는지!

"민재야, 민재야. 사랑해. 네 엄마로 살아서 행복했어. 우리 다시 엄마아들로 다시 만나자." 나는 아들의 얼굴을 보듬으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남편한테도 이렇게 뜨겁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남편도 "민재! 그동안 수고 많았어. 나중에 만나!"라며 아들의 두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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