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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와레몬나무 Aug 27. 2019

조금 더 사랑할 걸

시댁 마당에는 동백나무가 두그루 있는데, 그 중에 올래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있는 것이 문제였다. 시동생과 시누이가 차를 타고 마당까지 들어오면 입구에 서 있는 나무때문에 단박에 들어오지 못했다. 전진과 후진을 몇 번 한 뒤에야 비로서 마당에 들어왔다. 

그럴때마다 시부모님은 "저 낭(저나무) 잘라야 하는디 어쩔거냐"며 발을 구르셨다. 

 어머니는 동백꽃을 좋아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이 드나드는 길에 방해가 되는 이유만으로 나무를 미워하셨다. 한때는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 맹목적이고 구식이라고 치부했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은 자식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나는 시부모님만큼 자식을 사랑하지 못했다. 아들이 친구와 다투었을 때도 나는 무조건 아들편을 들지 않았다. 억울한 표정을 짓는 아들에게  "너도 분명히 잘못한게 있을거야"라며 검사같이 다그쳤다. 

아들은 어미가 완전히 자기편이 되기를 바랐을텐데 나는 오히러 상대방 입장을 생각하라고 말했으니 얼마나 외로웠을까. 우리의 인연이 이렇게 짧은줄 알았더라면 원없이 더 많이 사랑할 걸.......

아들이 자기만 알고 편협한 사람이 될까봐 경계했던 말이 얼마나 서운했을까. 아들에게 나는 따뜻한 엄마로 기억되는 순간이 있을까? 사랑만 해도 짧은 인생에 인성을 가르치겠다고 다그쳤던건 아닌지 후회되었다.

가르칠려면 아이의 건강이나 살피면서 그러던지......중학교 3학년 때 아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베게에 코피를 흘렸다고 했다. 엄청난 코피였다. 나는 입시를 앞두고 힘들어서 그런줄 알고 들어가서 더 자라고 했다. 전에도 몇번 코피를 흘렸는데 나는 그때마다 쉬는게 상책이고 성장기의 아이는 잘먹고 잘자면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친정모친은 코피를 자주 흘렸지만 한번도 그것 때문에 병원에 가지는 않으셨다. 그래서 그날도 나는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았다. 

 자립형 사립고 면접시험이 있기 전날이었다. 그는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심장이 들어갔다나갔다 하는것 같다고 바람쐬러 나간다고 했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입시생들에게 의례히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청심환을 사다 주었다. 지나고보니 모든 것이 "그날"을 암시하는 복선이었다.

 농구수업시간에 쓰러졌을 때에도 그는 모험담을 얘기하듯이  "엄마, 애들이 내이름 부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고 그러다가 곧 일어났어."라고 말했다. 그래서 J도 "아니 이렇게 멀쩡한 애가 기절했다는게 믿기세요?"라며  동의를 구하듯이 말했다. 누가 어떻게 말하더라도 나는 살펴봤어야 했다. 자식의 몸이 말하는 신호를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다니! 똑똑한 척은 혼자 다하고 정작 제 자식은 돌보지 못한 등신이었다. 

몬산토, 바위에 눌린 작은집

밥이 보약이라는 생각에 아이들 끼니 챙기고 먹고싶은 음식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면 그것이 전분줄 알았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또래 아이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많이 누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태하게 사는 것을 경계했다. 아이들이 제 할일은 스스로 잘 챙겼음에도 불구하고 "부모 잘 만나서 운으로 산다는 얘기 듣기 싫으면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열심히 살아라는 말이 아들이 슈퍼거북이가 되기를 독려했던것 같다. 동화속의 슈퍼거북이는 원래의 자기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아들한테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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