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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별 Mar 15. 2021

세월의 흔적 안에 우리

마흔 속 친구들

마흔을 만나고 나서야 이제야 조금 나이 듦에 대해서 아주 조금 마주할 시간이 생겼다. 

이십 대는 젊음이 신기했고 삼십 대는 여물어 드는 젊음이 조금 이해가 되어 아쉬웠고 사십 대는 젊음이라는 단어가 조금씩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돈의 여유도 시간적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는데 친구를 만날 시간은 나의 여유와는 반대로 가고 있는 기분이다. 어쩌면 나는 아직 아이가 없어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이 있지만 친구들은 스스로를 위한 시간보단 가족을 돌아볼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 보니 여전히 우리는 볼 시간이 부족하다. 

이십 대 삼십 대 때 퇴근길에 아무 때고 친구들과 만날 수 있었던 그런 날들이 얼마나 나에게 소중해질지 그땐 몰랐다. 그저 그 시간이 그대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느꼈을 뿐 그 자연스러운 것들을 못하게 될 시간이 올 거라는 건 몰랐다. 이렇게 금방 못할 줄 알았으면 더 소중히 더 많이 즐길걸이라는 생각도 든다. 

분명 일을 하고 퇴근을 하는 일은 똑같은 일상인데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저녁 약속을 잡기 위해 핸드폰을 만지작 거릴 일이 없다는 것이다. 회사를 퇴근하고는 집에 가는 게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결혼 6년 차.. 물론 지금은 코로나로 집으로 가는 게 당연하지만 불과 1-2년 전 마흔을 코앞에 둔 그 시점에도 지금과 다를 바가 없았다. 비단 이런 요즘의 삶이 코로나 때문이 아님을 나는 알고 있다. 코로나 덕에 자연스러운 핑계가 생겼을 뿐..


친구들의 출산 전엔 그래도 퇴근길에 만나는 것이 이토록 소중하지 않았는데 출산을 한 친구들이 하나 둘 생기면서 나는 친구들이 보고 싶으면 의례 맛있는 걸 사들고 친구의 집으로 가는 게 일상이었다. 아이들과 뒤섞여 내가 친구를 보러 온 건지 애를 보러 온 건지 모를 정신없는 상황 안에서도 그저 친구를 만났다는 것이 소중했기에 미션을 완수하듯 그렇게 우리들의 우정은 친구의 늘어나는 티셔츠의 늘어짐과 함께 그렇게 이어져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친구들과의 만날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지만 그 시간을 채울 한 번의 시간이 생기면 그날은 정말 엄청난 결심을 하고 열심히 놀게 된다. 얼마 전 고등학교 친구 세명과  마흔을 기념하자며 호텔에 모여 파티를 했다. 이 파티를 위해 친구들은 남편들에게 한 달 전부터 미리 선전포고(?)와 같은 날짜 픽스를 했으며 만남 일주일 전부터는 아이들의 컨디션을 체크한다. 절대 아프면 안 되기 때문에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올 최적의 컨디션을 만들고 엄마들은 집을 비운다. 그것도 1박 2일로 말이다. 물론 철없는 아빠들은 아이들 어릴 땐 자꾸만 영상통화를 하자며 전화기를 울려 댄 졌도 있지만 세월이 지나 이제 초등학생이 된 아들 딸내미를 둔 친구들은 엄마를 한 번도 찾지 않는 울리지 않는 핸드폰에 서운해하는 지경이 되기도 했다. 이제는 엄마가 어디 가는걸 젤 좋아한다는 딸내미가 섭섭하다는 친구의 푸념을 듣고 있자니 우리도 이젠 어느덧 부모의 마음을 알아갈 그런 나이로 저물어감을 새삼 다시 느끼는 시간이다. 

똑같은 잠옷을 입고 호텔 벽에 풍선과 마흔을 축하한다는 데코를 붙여놓고 음악을 틀어놓고 깔깔대며 잔을 부딪혀 본다. 아이들 생일 때만 해줘 봤지 정작 본인들을 위해서는 해본 적 없는 엄마들.. 볼이 터져라 풍선을 불고 love라고 쓰여있는 풍선을 붙이며 행복해하는 모습이 영락 없는 10대 그 시절로 돌아간다. 

우리만 아는 그 추억거리들을 꺼내며 고등학교 시절 짝사랑 이야기에 100 일주를 마셨네 안 마셨네 설전을 벌이며 추억 맞추기에 여념이 없었던 시간.. 그 시간은 오롯이 나와 내 친구들 우리 셋만 아는 추억이었기에 그 추억을 꺼내는 재미에 취해 술에 취해 우리의 시간은 흘러갔다. 

별거한 것도 없는데 그 시간 안에 흩어져 넘치던 웃음소리는 어찌나 경쾌했던지 그곳엔 누구의 엄마도 누구의 아내도 아닌 그대로의 우리가 있었다. 

가장 빛날 17살에 만난 마흔의 우리,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로 23년을 함께 해온 그 세월이 오늘만큼은 크나크게 빛나 준다. 

앞으로 딱 50년만 이렇게 더 살아보자 잔을 부딪힌 우리의 마흔 파티! 

마흔 속 우리들은 여전히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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