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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별 May 08. 2021

저도 덕후가 되고 싶습니다!

무언가에 미쳐본 사람

우리 남편은 야구광이다. 한국야구 미국 야구 일본 야구 등 야구와 관련된 것은 하나같이 다 관심을 가지고 좋아한다. 두산 베어스 팬이자 소실적에 선수 팬클럽 총무도 하며 야구사랑에는 빛이 난다. 남편을 보면서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건 참 괜찮은 일인 것 같았다. 

2015년 14년 만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한 두산, 그날 티켓팅에 성공은 못했지만 경기가 끝날 때까지 잠실구장 밖에서 목이 터져라 응원하다 열린 구장 문을 열고 뛰어 올라가서 눈물을 글썽이던 남편의 모습, 이게 울 일인가 싶다가도 얼마나 좋으면 저렇게 글썽일까 싶어 나도 모르게 등을 토닥여 주던 기억이 난다. 

그 덕에 지금은 나도 야구팬이 되었다지만 나는 그저 좋아하는 것이다 보니 가끔은 좋아하는 무언가에 흠뻑 빠져 즐겁게 유유자적 힘든 줄 모르고 좋아하는 것들을 즐기는 순진무구한 그의 표정이 그들의 표정이 부럽기도 하다. 

나도 한 번쯤은 덕후가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다. 그래서 야구도 더 좋아해 보려고 노력해보고 여행도 뭐라도 한 가지에 빠져보려고 부단히 애를 써보았지만 이건 애를 쓴다고 될 일은 아니었다. 마음이 스스로 움직여 누구도 시키지 않은 나만의 리그에서 그것을 위한 행복한 전투를 시작해야 하는데 나는 도무지 몰입이 안된다. 좋아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이렇게 까지 해도 되나 하는 마음. 다른 일을 해야 해서 이건 잠깐 미뤄야 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먼저 드는 까닭으로 무언가를 포기하면서 까지 계속하게 되는 덕질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저울질을 하고 있는 건 덕후의 자세가 아님을 알기에 나는 감히 덕후라는 덕질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물론 나도 좋아하고 설레고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은 아주 많다. 야구도 노래도 BTS도 여행도 뮤지컬도 독립영화도 글쓰기도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요즘은 BTS 뷔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고 알러뷰 베이스볼, 주간야구를 알아서 틀어서 볼 정도의 내공은 쌓인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꾸 여러 개보단 하나의 덕후가 되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나는 왜 다양하게 여러 개를 즐기고 좋아할까?"

"한 가지로는 나의 마음을 춤추게 하기는 어려운 것이었던가?"


솔직히 꼭 덕후가 되어야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를 오래도록 그리고 온 마음 다해 좋아하고 뜨겁게 바라보고 엄청난 지지해주는 그런 마음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디가 끝인 것인지 그 깊이가 궁금해졌다. 

2019년 HOT의 단독 첫 콘서트 하는 그때, 나의 주변에 살아있던 HOT 덕후 친구들이 봉기했었다. 그날만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같이 모여 회사일을 그렇게 했으면 부장은 했었을지도 모르는 엄청난 추진력으로 그들만의 리그를 시작했다. 

나는 아일랜드에 있었던 터라 그들의 실행을 응원하며 지켜봤지만 한편으론 내가 한국에 있었어도 그들의 리그에 내가 저렇게 장렬히 참여할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 애셋 엄마도 그때는 그냥 클럽 HOT일 뿐 미리 남편들에게 시간을 비워둘 것을 한 달 전부터 선전포고 한 후 회사에도 휴가를 내는 것은 기본으로 그들은 가뿐하게 다시 또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그들만의 축제를 즐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콘서트 한 달 전부터 각자 만들 수 있는 굿즈를 기획하고 숨어있던 깨알 같은 손재주들은 총동원하여 피곤할 줄 모르고 밤새가며 굿즈를 제작하고 콘서트 전날엔 모여서 술 한잔씩 먹으며 응원 플래카드를 만들고 콘서트 당일에는 클럽 HOT로 모인 많은 사람들에게 굿즈를 나눠주며 영원한 오빠들(?)을 응원하고 맘껏 즐기다 왔다고 했다. 

그녀들은 나에게 그랬다.


"미칠 거 같아 너무 행복해서! "

"우리 고등학교 때 보다 더 신나지 않냐? 나 잠도 못 잘 것 같아 " 


멋지다 못해 미친것 같았던 나의 친구들의 모습에 나는 부러웠다. 온 힘을 다해 무언가를 좋아하고 행복할 수 있는 그 순간이 내 삶 속에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복이지 않을까?

다양한 것들을 좋아하는 것도 좋은 방식이지만 아주 가끔은 덕후의 세계에 풍덩 빠져보고 싶었다. 발만 담그는 나만의 스타일 말고 흠뻑 빠져들어 보는 것! 

지금 그때의 우리의 추억을 기억하고 그리고 또 먼 훗날 지금의 추억을 꺼내볼 수 있는 아삭한 덕후의 추억 거리들이 즐비한 삶은 얼마나 달콤할지..

깨물어 먹을 달콤한 추억

인생을 살아갈 찐득한 이야깃거리

덕후 친구들 대부분이 다 그랬다. 


"그냥 좋아" 

"그냥 행복한 걸 어떡해 " 

"나도 몰라 내가 왜 이러는지 그냥 그냥 좋아 " 


이유 없이 좋단다. 나는 여전히 그 이유를 찾고 있었는데 말이다. 

덕후의 깊이엔 이유가 없단다.

무한한 사랑 그리고 온전히 그걸 받아들여 행복해질 마음 하나 

덕후님들 부럽습니다. 

나도 언젠간 그 무한한 마음에 몸 담가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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