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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별 Dec 13. 2020

서른과 거리두기  

마흔으로 갈아타기. 

얼마 전 온라인 강의를 하나 신청할 일이 있었다. 사전 설문 조사로 나의 연령대를 체크하는 란이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30대에 체크를 했다. 다음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그걸 보던 남편이 말했다."자기 40대잖아?" 

아.. 맞다 나 사십대지


술집에서 민증을 보여달라는 말에 괜히 기분 좋아져서 꺼내던 그런 일이 지금 나의 마흔이라는 나이 앞에서도 일어나 줬으면 하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외치고 싶어 진다. 괜히 얄미운 나의 남편...

"알아 아는데 그냥 마흔까지는 만으로 서른아홉이라고 우기고 싶은 그런 마음.."


알고 있었다. 나는 내가 마흔이라는 것을 근데 꼭 그런 설문조사가 나오며 그냥 뭔가 40대라고 표시하는 게 억울했다. 나는 여전히 젊은것 같고 오직 내 나이만 나를 앞서 가는 것뿐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티브이에서 40대 혹은 30대 주부들이 나오면 나도 저렇게 늙어 보이나? 거울에 있는 나는 내 눈에 나는 여전한데 문밖으로 나가면 20대, 30대 편 가르듯 세대가 구분되어 가름 지어지는 그 선이 나를 움츠려 들게 만든다. 

내 뱃살 따위도 푸석해지는 피부결도 아직은 괜찮은 거라며 화장품을 꺼내 덕지덕지 커버를 하면서도 여전히 나는 마흔과는 거리두기 중이다. 충분히 마흔인 줄 알지만 서른에도 그랬듯 마흔을 받아들이기엔 조금의 시간이 필요하다. 


스물아홉에 그렇게 싫어했던 서른을 나는 생각보다 참 잘 살아냈다. 서른아홉의 나는 아일랜드에 있었고 결혼도 했고 거기다 행복하기까지 했다. 내가 꿈꿨던 삼십 대 보다 조금 더 잘 살아졌다. 힘들었던 이십 대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그 나이를 나는 잘 넘겼다. 

생각해보면 나의 삶은 예상 밖으로 버라이어티 했다. 집에 빨간딱지도 붙어보고 수학여행비가 없어서 못 낼 뻔 한적도 있고, 대학은 당연히 학자금 대출을 받았으며 그 10년 대출의  마지막 건을 상환한 33살의 2월은 생생하다. 세상에 저렇게 집이 많은데 우리는 왜 내 집이 없을까를 생각하며 동네를 한없이 걸었던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빚은 나이가 듦과 함께 점점 줄어들며 그 사이에 행복이 사랑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스물아홉과 서른아홉에 나는 많이 달라졌음에도 이십 년을 꽉 채워 놓은 나의 젊음을 보내기엔 마흔의 나는 여전히 아쉬운지도 모르겠다. 자꾸 잘한 것보다는 더 해보지 못한 것들이 생각나고, 그 젊음이라는 글자가 가져다주는 찬란함을 마치 잃어버리기라도 한 듯 괜한 아쉬움이 밀려왔다. 오늘도 지금도 내 인생에서는 가장 젊음 날임을 알면서도 세상이 그어놓으 젊음의 숫자의 호수에 나는 아쉬움을 던져본다. 아쉬움이 파장이 되어 나의 마음에 계속 남아 있는 중이다.

아직 나는 서른을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 


마흔은 어쩌면 또 다른 젊음으로 갈아타야 하는 플랫폼 인지도 모르겠다. 젊은 세대에서 중년 세대로 넘어가는 관문 같은 곳.. 나는 이 플랫폼에서 열차가 지연되기를 기다리며 혹은 막차를 타겠다는 마음으로 지나가는 열차들을 계속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플랫폼에서 멍하니 가는 기차를 보내느라 2020년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세월을 가늠하고 있는 중이었다. 

 2020년 12월에 바라본 나의 2020년은 서른 살을 보내기가 아쉬운 나의 조금 더 젊은 삼십 대를 향한 투정이었는지 모르겠다. 마흔을 받아들이기보단 나는 뭔가를 아쉬워했었다. 자꾸 뭘 더 이루어내어 서른에게 보여주고 가야 할 것 같았다. 아일랜드에서 미처 다 마무리하지 못하고 온 영어도, 미처 다 돌아보지 못하고 온 유럽여행도, 내 삶에 대한 글쓰기도 모두가 다 아쉽고 미련이 남아 마흔으로 가기 전 뭐라도 해놓고 가고 싶었다. 그래야 이 행복이 끝나지 않고 따라와 줄 것만 같았다. 


이제는 그 차를 타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다. 인생의 플랫폼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아쉬워하고 있기엔 마흔도 거의 다 가버렸기 때문이다. 

젊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젊음을 맞이해보는 시간.

2020년 남은 며칠은 나에게는 그런 시간이다. 

서른과 거리두기를 통해 다가올 마흔하나에게 좋은 내가 되기 위한 시간..

새로운 마흔하나라는 단어를 받아들일 시간이다.

오늘이 내가 사는 날 중에 가장 젊은 날임을 잊지 않고 과거의 삶에게는 미소를 지어줄 시간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함을 다시 되새겨 보는 시간이다. 


마흔의 나는 서른의 나보다는 한 뼘 성숙하고 꽤 행복한 삶이다. 힘든 날이 있으면 행복한 날이 있음을 나는 믿는다. 이제는 마흔의 기차를 타고 그 시대로 가보는 거다. 

나이 듦에 조금은 당연해질 필요가 있다. 

과거의 시간이 있기에 지금의 나의 삶이 있기에 인생을 갈아타는 맛을 느낄 필요가 충분하다. 

너무 빠르지는 않지만 편안한 인생으로 안내해줄 마흔의 열차를 탔다.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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