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삶은 별 Sep 16. 2020

마흔 살 내가, 스물아홉 나에게...

괜찮아 여기까지도 잘 온 거야  

29살이던 12월 31일 밤은 왜 그토록 서러웠는지 두려웠는지 모르겠다.

어른들 말처럼 지나고 나면 참 별거 아닌데 그 별거 아닌 그날은 나 역시도 유난스럽고 참 볼상 사납게 보내고 말았다. 매일 친구들을 불러내서 술을 먹고 노래방을 가고 1차를 가고  금요일 밤이면 토요일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뭐가 그렇게 싫은지 같이 있는 친구들이 지겹다 할 정도는  12월 한 달 내내 나는

' 정말 서른 살이 싫다 싫다 미치도록 싫다 '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땐

받고 싶은 만큼의 연봉도 아니었고, 메이저 광고 대행사도 아니었고 그 덕에 명절에 친척들의 어디 회사 다니냐고 물어보는 게 싫었고, 2년째 사귀고 있던 남자 친구와는 권태기스러워질 찰나에다, 우리 집 형편도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돈한 푼 모은 것 없이 늘 빠져나가기 바쁜 그런 스물아홉이었기에 그해 아홉수 악재는 내가 다 받은 것만 같았다.

' 왜 나는 늘 원하는 건 하나도 안될까?'

' 내 친구들은 운도 좋아 잘만 풀 린던데 그놈의 운은 오지게 나만 비켜 가는 걸까? '


솔직히 나는 나름 꽤 열심히 살았다.

대학교도 2-3번 장학금 받을 정도로 열심히 다녔고,

대학 때도 주말엔 2년 동안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하며 용돈은 내가 벌어 썼고,

취업하기 전까지 인턴도 유급 인턴만 찾아서 돈 벌면서 취업 준비까지 했고

이력서 넣다 넣다 대기업은 안되니깐 차곡차곡 경력 쌓아서 이직 하자 생각해 광고 대행사 취업해서 3년 만에 대리 진급도 했다. 근데도 뭔가 계속 억울했다. 엄청 열심히 살았는데 나아지는 게 하나도 없으니깐 나는 계속 힘들어지는 것만 같아서 나한테 잘 살았다고 말해주기는 커녕 잘 나가는 주변 사람들만 바라보며 내 성실함은 다 쓸모없는 삶인 듯 구겨버리고 싶어 졌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10년을 딱 더 살고 보니 꼭 그렇게 까지 나를 미워하고 원망하지 않아도 되었었는데 나는 삶의 에너지가 조금 많이 사용돼서 다시 모으는데 남들보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린 거였을 뿐인데 잘못된 게 아니었는데 그땐 그걸 몰랐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아버렸다.

괜찮아 여기까지 잘 온 거야  


내가 29살 나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괜찮다고 여기까지도 잘 왔고 앞으론 더 괜찮아질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 삶의 모든 경험과 노력이 쌓여가며 삶의 에너지를 멋지게 소비하고 있었는데 유독 내 삶의 에너지가 쌓이는 속도보다 사용하는 양이 많아 재 생산이 느렸던 시기였을 뿐인데 에너지가 고갈되고 없어지는 게 두려워 나는 내가 쌓아 놓은 내 삶의 노력 조차 잊어버렸던 것이다.

차곡차곡 쌓다 보니 이제는 그 에너지가 차고 넘쳐서 행복한데 그땐 왜 알아채지 못하고 두려워만 했었는지..


생애 첫 회사를 광고 대행사를 다닌 덕분에 남들보다 제안서 작성, 아이디어 도출 등 기본기가 나름 탄탄해졌고

4년씩 2번의 장기 연애를 지독하게 한 덕에 남들보단 꽤 많이 늦었지만 서른다섯에 제대로 멋진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알콩달콩 살고 있고

친구들이 3년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퇴직금 들고 이십 대 마지막을 즐기러 다들 워홀 떠날 때 나는 남편과 7년 더 일해서 10년 채워 두둑한 퇴직금으로 서른아홉에 꿈에 그리던 해외 살이, 아일랜드 어학연수를 여유롭게 다녀오게 되었다. 물론 결혼해서 차곡차곡 벌어 놓은 돈을 아일랜드 연수에 다 쓰고 와서 어쩌면 우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아주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싫음 보다는 까짓 거 즐겁게 일 하면 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든다.


스물아홉의 우리는 절대 불행하지 않았다.


단지 내 스스로 내 삶의 에너지를 가늠하지 못했던 것뿐이다. 좋은 삶이 잘 돌아가고 있는 중인데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것뿐이다.


이제 나는 마흔 살이다

분명 나이는 더 먹고 내 젊음은 더 줄었는데도 서른아홉이, 마흔이 전혀 싫지가 않다.

물론 외형적으로 늙어지는 나를 보면 울적하긴 하지만 내면적으로 쌓인 즐거운 마음으로 견딜 만 해졌다.


내 나이 마흔 아홉 즈음에는

스물아홉 때처럼 말고 서른아홉 즘에 느꼈던 행복을.. 아일랜드에서 느꼈던 짜릿한 자유를

딱 두배만 더 느낄 수 있는 선명한 삶의 에너지가 나에게서 반짝여 줬으면 딱 좋겠다.


빛나는 인생이어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