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줄 아는 요리가 거의 없는 올해 서른 딸램
할 줄 아는 요리라고 하면, 일단 라면이고(이것도 요리의 축에 들지는 모르겠으나) 그다음 계란 프라이, (이것저것 재료를 몇 개 뺀다면) 김밥과 유부초밥, 카레 정도이다.
흔히 먹는 된장찌개나 김치찌개의 간을 맞출 줄도 모른다. 그나마 미역국은 한두 번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끓여보았다. 그 외에 혼자 만들어본 것은 이빠이 양이 많은 흰 죽 정도.
직장 다닌답시고 언제쯤 배우려고 했던 '요리'는, 저 멀리 구석에 처박아두고 퇴근하고도 각종 모임들을 하다가 늦게 귀가하기 일쑤였다. 그러던 차 코로나도 점점 심해지고, 생애 처음으로 전신마취 수술도 두 차례 받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집순이가 되었다. '집안의 살림꾼'이던 남동생까지 취직을 하면서 백수가 된 내가, 엄마의 30년 차 주부생활을 옆에서 보고 배우며 거들어오고 있다. 엄마가 하는 일들에 비하면 1/10도 안되지만..
일단, 빨래는 웬만하면 내가 널려고 하고(주말에는 '누나가 빨래 너는 방식'을 탐탁지 않아하는 남동생이 '방해되니까 내가 넌다, 저리 가라'라고 한다..) 세 번 중 한두 번은 설거지를 맡아서 하려고 하고, 쓰레기를 모아 20리터 쓰레기 봉지를 일주일에 한 번 버리는 일, 일주일에 한 번 재활용품을 버리는 일 정도를 한다.
자궁근종 수술을 위해 일주일 정도 입원해있었을 때, 골칫덩어리 딸내미의 간호를 하러 엄마까지 병원에서 같이 생활했고 코로나 때문에 드나들 수도 없었기에, 엄마도 병원밥을 함께 먹었다. 의외로 간이 심심했던 병원밥은 엄마의 입맛에 잘 맞았고, '누가 해주는 밥이 역시 제일 맛있다'하며 힘든 간병생활 중에도 매식사시간마다 엄마가 행복해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 모습을 보며, 엄마가 어언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우리의 식사를 책임져오면서, 꽤나 고생이 많으시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남동생은 할 일없이 빈둥거리는 누나에게, '엄마가 하는 요리는 다 할 줄 알아야지'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래서 요즘에는, 뜨개질을 하거나 핸드폰을 가지고 아침시간에 뒹굴지 않고 퍼뜩 일어나서 엄마의 식사 준비를 종종 돕는다. 토마토를 강판에 갈아 주스를 만들고 사과나 배, 오렌지 등 과일을 깎고.. 예를 들어 카레를 만드는 날에는 각종 채소를 써는 일을 굳이 맡아서 해보려고 하고, 김밥을 만드는 경우 잘 만들지도 못하면서 지단을 개판으로 만들기도 한다.(엄마의 잔소리는 덤..) 중간중간 설거지거리가 쌓이면 해치워버리기도 한다. 어차피 아침 설거지는 거의 내 당번이기에..
자칭 '빵순이'이므로, 종종 식빵을 사 오는데, 그것으로 샌드위치를 만들기도 한다. 얼마 전엔 남은 식빵을 구워서 계란 프라이와 양상추, 참치, 토마토, 케첩을 얻어 샌드위치를 대강 만들었는데 의외로 맛이 꽤 괜찮았다.
참, 파스타도 (소스만 있다면) 그럭저럭 만들 수 있다. 예전에 가족들에게 몇 번 대접한 적이 있다.
'남이 해주는 밥이 맛있다'는 엄마의 말에, 삼시세끼 중 적어도 한 끼라도 내손으로 대접해드리려 한다.
뭐, 엄마만큼의 요리는 못하지만... 간단한 점심의 역할을 할, 샌드위치 같은 것 정도?
오늘 아침 동안 어마어마한 빨래를 해치우고 난 엄마는, 끊임없이 돌아가는 세탁기에 혀를 내두르는 동생과 함께 그 빨래를 다 널어놓고 침대에 잠시 누우셔서, 몇 시간째 빈둥거리는 날 보며, '오늘 점심에 맛있는 거 해줘'라고 조금 귀엽게 말씀하셨다.
등산을 시작하고 나서도 엄마의 그 말이 계속 맴돌아서, 짱구(머리)를 굴리다가, 결국 생각해낸 것은, 주문해놓은 동생 옷을 찾을 매장 옆에 위치한 햄버거 가게에서 무난한 메뉴인 불고기버거세트를 사는 것이었다.
냉장고 구석에 오래된 모닝빵이 있긴 했지만, 패티가 없으므로... 그리고 소스도..
그래서 옷을 찾고 곧바로 햄버거 가게로 향했다. 아빠는 시골에 계시니, 불고기버거세트 3개 주문. 탄산음료는 집에 많이 있으므로, 세트메뉴 중 음료는 커피나 우유로 바꾸고(맥000의 커피 참 맛있죠) 프렌치프라이도 두 세트에서는 (행사 중이라) 치킨너겟으로 바꿨다. 너겟의 소스도 오렌지와 스윗칠리 각각 하나씩, 나름 세심하게 주문을 마치고 포장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햄버거의 기름진 냄새'에 기겁하시는 엄마는, 처음에는 '뭘또 이런 걸 사 왔냐, 운동한 거 소용없다'라고 내키지 않아 하셨지만, 이내 모두 맛보시고 꽤 만족하셨다.
사실은, 직접 뭐 만들어 드리는 게 좋긴 한데, 실력이 모자라고 시간도 부족하고 하면..
엄마세대의 어른들도 '이런 젊은이들 음식'을 생각보다 잘 드시므로, 건강 생각해서 너무 자주 말고 가끔씩 사드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요즘 엄마는, 산에 가서 쑥을 캐오신다. 오늘은 참꽃(진달래)을 따오셨다. 진달래가 몸에 좋다나 뭐라나..
사람들 좀 구경하고 보게 따지 말라해도 말을 안 듣는다~~ 여튼 엄마가 이렇게 무엇을 고생해서 따오면 그것을 다듬는 일이라도 맡아서 하려고 한다. 쑥 다듬는 일은 꽤 힘들다. 어제 한 2시간 하니 눈과 목이 빠지겠더라..
'꼭 즈그 아부지 같이 다듬네' 엄마가 만족한 듯 말한다. 아빠는 이런 일에는 꽤 세심하다.
내일 아침에는 아마 그 쑥들로 쑥국을 끓이지 않을까. 아님 오늘 저녁에 끓일 수도 있고.
이번에는 아픈 이모 갖다 드리려고 조금 더 많이 따오셨다 하더라.. 그래서 다듬는 것도 힘들었다.. 허허.
저번에 카레가루도 좀 남았으니, 조만간 카레도 한 번 다시 만들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