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몇 달 전 가입만 해두고 활동을 해오지 않던 등산모임에 이번 주 일정만은 참석을 하려고 했건만, 우천 소식으로 취소가 되었다. 모임의 취소 소식을 들어도 그렇게 아쉽지가 않다. 오히려 더 편해졌다고 할까. 내심 취소가 되길 바랐던 걸까. 낯선 이들과 만나는 것은 스트레스기도 하다. 우선, 낯선이 들을 만나기 전까지 약한 울렁증의 증상이 나타나고.. 얼른 헤어져서 나 혼자 있게 되기까지 없던 긴장도 생긴다.
그럼에도, 나는 모임에 들려고 하고, 사람들을 만나려고 한다. 사실은 이 마음이 확실한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나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외로워서, 심심해서 그런 걸까.
모임에 나가리라 마음먹었지만, 막상 취소되니 오히려 내 시간이 생겨서 좋은.. 아이러니.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직장생활 외의 시간에서, 억지로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경우는 잘 없어졌다. 학창 시절에는 식사를 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선생님이 오셔서 어깨 안마를 해주신 적도 있는데, 다닥다닥 붙어있는 자습실에서 그런 대접(?)을 받으면.. 뭔가 부끄러웠다. 칸막이로 가려져서 내가 졸고 있는지도 몰랐을 앞 옆 뒤 친구들에게 내가 순간 졸았음을 의도치 않게 알아채게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뭐, 나 같은 경우에는 근처의 친구들이 선생님 찬스 기상 알람을 받을 때, 괜히 알게 모르게 느끼고 있는 경쟁심리나 긴장이 한결 풀어지기도 했었다. '아, 쟤도 많이 피곤한가 보네.', 'ㅋㅋ 쟤는 엄청 자주 존다니까..'.
지나고 보면 그 치열했던 시절도 추억이다. 그 시절에는 당시가 싫었지만, 너무 공부 강박에 매여서 그 시간만의 무엇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무릇 직장을 퇴근하고서는 집에 와서 발 뻗고 푹 쉬거나,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아도 되었을 터인데, 나는 굳이 이것저것 모임에 가입하거나 모임장으로 활동하며, 썩 마음에 내키지 않을 때도 시도 때도 없이 모임에 참여했다. 나만의 온전한 휴식시간은 거의 없었다. 잠들기 전에도 SNS에 넘쳐나는 각종 불필요한 정보들을 잔뜩 보다가 눈이 피곤해지면 그제야 억지로 잠에 들었다.
온전히 쉬고 있는 때에도, 나를 가만히 두지 못하는 병.
항상 무엇인가 일을 벌여야 하는 성질.
대학교 시절에는, 갖은 대외활동에 참여했고 어떤 포스터나 홍보글을 볼 적마다 '마치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랑 꽤 비슷한 사람들도 있는 것을 '다큐3일-제주 치유의 숲'편을 보고 알았다.
나보다 나이는 많았지만, 부부끼리 오신 분이었는데 아내분이 계속 은퇴 후에도 무엇인가에 참여하려 하고, 가만히 쉬지 못하고 일을 벌이는 스타일이라고 남편분이 말씀하시는데, '어, 나도 저런데?' 하며 공감했다.
음,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으나.. 아마 고교시절에 끊임없이 나에게 했던 채찍질도 한 몫한 것 같다.
공부시간 강박증에 시달리던 나는, 그 누구보다 일찍 학교에 와서 교실 전등을 켜야 했고, 자습실에 그 누구보다 오랜 시간 앉아 있어야 했다. 급식소 줄을 기다리면서도 공부자료를 봤고, 혼자 밥을 먹던 시절에는 밥을 먹는 중에도 책을 들여다봐서 선배들이 아마 장난으로 물컵까지 떠다준 적도 있었다. 이후에 나 자신도 그런 내가 너무했다 싶었는지 친구들과 어울려서 밥을 먹긴 했지만.. 주말에도 자습실에 남아서 졸기도 하면서 공부하다가, 기숙사 점호에 늦은 적도 있다. 학교 불이 다 꺼져있고 문까지 잠겨있었으니.. 몇 번 찾아가서 뵀던 수위 아저씨도 날 기억할 수도 있겠다. 아마 이런 일련의 일들은, 중학교 시절 다 공부좀한다는 친구들만 모인 그곳에서 입학시험성적에서 나름 큰 절망을 했었고, 이를 계기로 더 공부에 집착하게 된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조금 아쉽다. 사실, 단순히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들만 모였던 곳'이라고 인식하게 되어버린 그곳에도 나름 진솔한 교우관계를 쌓을만한 기회는 꽤 있었던 것 같기도 하기에..
그렇게 나를 가만 두지 못하는 병이 아직까지 남아서, 혼자 느긋하게 잘 쉴 수 있음에도 계속, 이제는 없어져버린 공부 강박 대신에, 인간관계 강박이 생긴 것은 아닐까.
히키코모리라는 말이 부정적으로만 인식되듯, 혼자 있으면 뭔가 괜히 도태되어 버릴 것 같아서, 낯선 사람들과 억지로 부딪히려 하는 것이 아닐까..
사람을 만나고 오면 나는 체력과 정신력이 방전되는 스타일이다.
충전되는 경우는, 오랜 시간 봐왔던 진솔한 사람들과의 만남뿐이다.
'낯선 이'를 만나는 것에는.. 스트레스를 느낌에도 계속 모임에 들어가는 것은 왜일까.
아마, 내가 이전부터 시도해오곤 했던 일들만큼 크고 거창한 일은 아닐지라도, '제일 하기 쉬운 도전'이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라서 그런 걸까. 그래, 나는 도전병도 있었다.
입시나, 편입이나.. 이제는 그런 것들은 어느 정도 다 거쳐와서 다시는 안 해도 되는 일들임에도,
그런 일들에 임할 때 나의 마음이 좋았어서, 그런 '기분'을 느끼려고 이런 '사소한 모임에 참여하는, 약간의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도전'을 계속하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