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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시절의 군것질

점심시간의 일탈

by 박냥이

08, 09,10년에 고등학생이었으니, 지금으로부터 10년은 넘었지만, 그 시절 즐겨사먹던 간식거리들은 아직도 기억난다.

고교시절 집에서 먼 기숙사 학교에 들어가서 외로움도 많이 느꼈다. 비록 나의 선택이긴 했지만, 첫 기숙사 입실 후 부모님을 떠나보내는 날 진눈깨비가 흩날렸고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주말에도 서로의 눈치를 보며 집으로 가기보단 각자 자리를 지키고 앉아 '공부하는 척'하기 바빠서 마음은 더 피폐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음식으로 외로움을 달래기도 했던 것 같다.

기억나는 음식으로는, 학교 인근 빵집의 주황색 유산지(?)가 덧씌워진 치즈머핀이다. 그곳에서 파는 달달한 마늘바게뜨도 많이 먹었다. 아직까지 군침이 돌 지경이다. 그 시절에는 칼로리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회시간이었나, 눈은 칠판과 선생님을 보고 있었지만 머릿속에는 점심시간에 뛰어나가 치즈머핀을 사 먹을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음식 생각뿐 아니라 이런 각종 공상들을 하면서 수업시간을 보낼 때도 꽤 있었다.

제일 하기 쉬운 일탈의 형태였달까.


그리고 도넛도 좋아했다. 자주 사 먹진 못하지만 지금도 좋아한다. 가끔 당이 떨어질 때 크리스피크림 오리지널 글레이즈드(?) 하나 먹으면 그만한 게 또 없다. 아메리카노랑 같이 먹으면 금상첨화. 다만 크리스피 매장이 잘 없어서 아쉬울 뿐..(어쩌면 다행일 수도..)

고등학생 땐 더 달달한 것을 잘 먹었다. 던킨도너츠의, 아마 아직까지 판매하는 하트디자인의 양쪽에 각각 크림, 딸기잼이 들어간 분홍색 도넛과, 뚜레쥬르에서 팔던 비슷한 색의 둥근 도넛을 즐겨 먹었다. 어느 날엔 빵을 장장 만원치 사 와서 삽시간에 모두 해치워버린 적도 있고, 룸메가 주말에 집에 가면 던킨도넛 6개들이 세트를 사 와 밤새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다 먹곤 했다. 그렇게 먹어대도 살은 그렇게 많이 찌진 않았으니 확실히 젊을 때는 소화력이 좋은갑다. 어느 날엔 또, 치즈케이크를 하나 사서 비닐에 넣고 먹어대면서 버스를 종점까지 타고 가는 기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어지간히 외로웠나 보다.. 그 시간에 집이나 갈걸..


인근에 가끔 시장이 섰는데, 그곳 깊숙한 오래된 건물 안에 어떤 할머니가 하시는 열무비빔밥을 먹으러 종종 갔었다. 잠시나마 입시경쟁에서 벗어나서 '그곳에 사는 주민'인양 시장거리 속에 앉아있으면 알게 모르게 긴장이 풀어지기도 했나 보다. 그 할머니 댁에서 콩국수도 사 먹고.. 할머니의 몸이 편찮으신지 문이 닫혀있을 때가 많았다.

어느 날엔 그곳 근처의 목욕탕에도 한번 갔었다. 생각보다 불편했다. 처음 보는 얼굴에 아줌마들이 이리저리 한두 마디씩 걸어왔기 때문이다. 나에겐 '혼자 즐기는 일탈'이 필요했다.

이런 점심시간/주말 시간 중의 일탈은 거의 늘 혼자였다. 그럼에도 가끔 사람이 그리울 때도 있었다.


치킨집 앞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낯선 아이랑 잡다한 대화를 하며 간식거리를 나눠먹다가 한 번은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기도 했었다. 거의 요상한 체육복만 입고 다녔으니.. 보는 이의 입장에서 그럴 만도 했을 수도..

급식이 나오지 않는 날에는, 본죽에서 갖가지 죽을 돌려먹는 게 유일한 호사였다.

단호박죽, 잣죽, 팥죽, 전복죽..

배탈 난 것도 아닌데 죽을 그렇게 쑤어다 먹었다.


또 뭘 먹었더라.. 그나마 배스킨라빈스를 그리 즐겨먹지 않은 것은 (건강적인 면에서는) 다행이다.


비교적 최근에 가본, 고교 근처에는 전에 못 보던 맥도날드와 한솥도시락 같은 대형 체인점들이 많이 생겼더랬다. 휴, 내가 있을 땐 없었어서 다행이지, 아니면 이것까지 먹어댔을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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