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날 어서 오라고 손을 흔드는 소나무들
이제 남친과 3주년이다. 서로 자잘한 기념일은 챙기지 않지만, 아직 몇 주년 정도는 챙긴다. 현재 백수신세라 무슨 선물을 할지도 고민이었다. 값비싼 것을 준다고 이담에 취직하면 줄게~하는 것은 뭔가 안 내킨다. 곰곰이 생각하며, 평소 의류 쇼핑을 하는 사이트인 나이키, 아디다스를 차례차례 둘러본다. 아디다스에서 나온 신상 신발이 레고를 연상시키는 듯 귀여운 색상이지만, 남친에겐 이미 신발이 꽤 많다. 다음으로 아우터 코너에 들어간다. 우리는 이미 많은 아디다스, 나이키 바람막이를 커플 아이템으로 소장하고 있는 중이다. 역시, 기본 디자인은 다 소지하고 있다 보니 독특한 디자인 중에서는 눈에 들어오는 아이템이 잘 없다. 그냥, 나중에 천천히 고를까 하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옛날에 백화점의 MLB 매장에서 남친이 예쁘다고 했던 디자인의, (영 내 취향은 아니었던) 아이템이 생각났다. 당시에 봤던 것은 두께감 있는 맨투맨이었지만, 이번에 찾아보니 같은 디자인의 바람막이가 있다. 엊그제 계속 서늘했던 날씨에, 같은 디자인의 완전 얇은 바람막이보다 살짝 두께감 있는 바람막이를 고른다. 백수에겐 조금 부담스러운 20만 원선.. 반나절 동안 고민하다가 무려 7개월 할부로 결제를 했다. 당연히 무이자다. 하하하.
인제 뭐, 비밀 이벤트를 벌이고 비밀 선물을 하는 것도 다 귀찮아서 그냥, '이거 샀어~'라고 카톡을 보내 놨더니 몇 시간이 지나도록 답이 없다. 평소보다 답장이 늦어져서 괜히 서운하다. 메시지를 읽지도 않은 것으로 보아하니 일이 바쁜가 보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겼을까 싶어서 서너 시간이 지나고 밤이 되자, 다시 카톡을 보낸다. 바로 읽는다. '뭐야, 게임하고 있었나, 짜식이..'
다행히 게임은 아니었고, 집에 퇴근하고 나서 회사에서 일이 생겨서 처리한다고 바빠 카톡을 그제야 봤더란다. 뭐, 자신은 조금 있다 확인하려 했겠지만 여친의 다그치는 듯한 추가 카톡 메시지에 어쩔 수 없이 창을 열었나 싶기도 하다. '이건 바로 확인하면서..' 사소하게 다툴 시기는 지나갔기에 잠자코 있다.
그리고 이어서 고맙다는 조금 어색한 표현. '옷 내가 입고 싶어 하던... 뉴욕 힙합 스타일... 고마워' '00이 카드값이 걱정되긴 하는데..' '00이는 뭐를 줘야 좋아할까 고민 좀 해보겠음'
나는 '카드값을 달라'라고 농담을 했다가, '답이 없어서 병원에 실려간 줄 알았다고 걱정했다'라고(가끔씩 일어나는, '공상의 확장판. 실은 정말 그랬다면 잠옷바람에 옷을 갈아입고 밤 운전을 해서 그곳까지 가는 상상까지 했다..) 불평을 토로한 뒤, 잠시 생각해보다가 '등산화'를 사달라 했다. 뭐, 대부분의 괜찮은 등산화 값이 20만 원내외니 엇비슷한 셈이다. 다만, 등산화는 인터넷으로 댕강 사버린 2XL 사이즈의 바람막이와는 달리, '직접 신어보고' 사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현재 고민 중인 브랜드는, K2, 블랙야크, 콜핑 같은 '등산전문가 포스'가 뿜뿜 뿜어져 나오는 브랜드이다. 컬럼비아 꺼는 하나가 있어서, 다른 브랜드를 살 생각이다. 사실 아웃도어 브랜드에 대해 자세히는 모른다. 그리고 나사로 돌리는 형식의(?) 신발끈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아서(엄마가 쓰시다가 고장 난 적이 있다) 그냥 일반 운동화처럼 묶는 형식의 등산화를 선호하는 편이다.(그리 험한 산을 타는 것도 아니고..)
오늘 오후 1시에 (자꾸만 시골로 도망가려는) 아부지를 데리고 엄마와 오리탕을 먹으러 갈 예정이다. 그전에 시간이 되면, 오랜만의 맑은 날씨에 등산에 가려고 한다. 어제 새로 산 등산스틱을 가지고~ 집 바로 뒤에 소나무(나머지 나무들도 있지만 이름을 모른다..)들이 '어서 오게나~'하고 바람에 살랑살랑 가지를 흔든다. 날이 흐려 이틀간 쌓여있던 4인 가족의 빨래를 구시렁거리면서 널면서 창문 밖을 보니, 산의 겉모습에 금방 매료되어 버렸다. 그래.. 등산을 최근에 가긴 했지만 어두컴컴하고 날도 흐려서 제대로 못 갔다 왔었지.. 오늘은 맘껏 즐겨주겠다! 하고..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