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는 시간은 어쩌면 지루한 과정 속에서일수도

300미터 산을 매일 오르는 일, 새로운 이벤트만을 바라기보다

by 박냥이

'오늘은 뭐할까'에 대한 두어 가지의 선택안이 있었다.

1번. 나 홀로 등산, 2번. 사진모임 참석

금세 쌓인 가족들의 빨래를 해치우며 베란다 밖에서 넘실거리는 산의 모양을 보니, 대번 1번이다 싶었다.

매일 등산하는 것은 힘들어서 이틀 사흘에 꼭 한 번은 등산을 하자고 내심 다짐하던 차였다.

사진모임에 가면, 특히 오늘 가는 곳이 주말이면 사람이 꽤나 붐비는 곳이기에 그곳에 가면 인파에 치여야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날씨 좋은 일요일에) 내가 바라는 일이 아니었다. 참석인원 중에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고는 모임장님 딱한 명뿐이기도 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만, 한편으로는 상당한 불안감과 긴장을 동반하게 되는 일이다. 특히 낯선 사람을 만날 때는 더욱더 그렇다. 29살에서 서른으로 차차 넘어가면서 체감한 것은, 나라는 사람이 '혼자 있는 시간'을 꽤 즐긴다는 사실이다.

물론 가족들과 함께 있을 경우 시시때때로 엄마의 칭찬과 애정을 갈구하긴 하지만.. 가족들이 저마다 일정으로 집을 비웠던 어젯밤엔 나 홀로 집에 있었지만, 마냥 고독했던 것은 아니다.(예전엔 집안에서 혼자 불 끄고 자는 것이 무서워서 불을 켜고 잠이 든 적도 있다)

그래도 괜히 쓸쓸한 마음에 외출 길에서 돌아오면서 편의점에 들러 평소에 잘 마시지 않는 맥주도 두어 캔 사긴 했었다. 그렇지만 이내 그것과 엄마가 해놓고 가신 미역국, 김치찌개, 콩나물 볶음 등을 안주삼아, 드라마를 보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김치찌개에는 냉장고의 새 두부를 리필해서 나름 나의 손길도 더해, 혼술의 안줏거리를 만든 것이다. 고작 맥주 한 캔에서 끝이 나서 소박하고 짧은 술자리였다. 건강상 찬 음식 섭취를 줄이려고 하고 있어서, 조금 차가운 맥주와 팔팔 끓인 미역국, 김치찌개를 함께 먹으니 꽤 괜찮았다.



300*30=9000

미뤄둔 설거지거리도 다해치운 뒤, 오전 11시. 더 늦기 전에 등산 갈 채비를 했다. 우리 집 뒷산은 해발 330미터 정도의 야트막한 산이다. 그 안의 주로 다니는 등산로도 완만한 편이다. 등산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와 경주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천천히 내가 쉬고 싶을 때 쉬어가며 즐기고 있다. 이제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등산 초입부터 숨이 턱 하니 막혀버리기도 한다. 오늘같이 건조한 날씨에는 수시로 물을 마신다.

문득 늘 다니던 산행길을 걸으며, 진정으로 오직 나 자신과 만나는 기분이 든다. 각종 모임에서 낯선 이의 생각이나 시선에 신경을 두며,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망각하는 것보다 한결 자연스럽고 편한 순간이었다. 굳이 짙은 화장이나 주목받을만한 값비싼 차림새가 아니더라도, 선크림만 바르고 나와 이제 흙투성이의 바지 차림인, 있는 그대로의 제일 편한 내 모습과 함께.

매일 같은 길을 통해 산을 오르는 과정은 이십 대 어느 시절엔 그저 지루하게만 느껴질 때가 많았고, 그보다는 어서 빨리 대중교통을 타고 시내로 가서 인간관계의 폭을 넓히는 일이 우선이었다. 니면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에 주로 관심을 두었다. 그런 자잘한 도전이 없는 삶은 왠지 모르게 시시하다 생각했었다. 사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닥 안 하고 싶고 꺼려지는 일'일지도 몰랐던 많은 일과, 삶의 고난들마다 조금씩 걸러진 그닥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에 매여 나 자신을 온전하게 살펴보지 못했다.

그런 끊임없는 인간관계의 확장과 각종 모임 참여의 부질없음을 고작 몇 년 사이의 건강문제덕에도 슬며시 알아갔고, 불편하고 속을 알 수 없는 어떤 누군가(이성이든 동성이든)와 어울릴 바에, 혼자 산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것이, 한결 더 나의 마음이 편한 행동임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집 뒷산을 타는 것이 고작 해발 300미터라 해도, 한 달을 오르면 그것이 9,000미터로 에베레스트의 고도(산세 면에서는 비할바가 아니겠지만)만큼을 오르내리는 것과 같지 않을까. 그만큼 다른 누구가 아닌 나 자신에게 정성을 쏟고 싶다. 나 외의 다른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삶은 피곤할 뿐이다.


주말의 동네 뒷산은 평일보다는 붐벼서 조금 덜 여유로운 모양새지만, 뭐 어떠랴..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도 없고, 누군가의 미움을 받게 될까 조마조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불멍, 산멍, 물멍

티브이에 나온 어떤 부부는 '불멍'이 취미라 했다. 장작불 따위를 보면서 '멍'을 때리는 것이다. 우리 시골집에도 아궁이가 있다. 부모님을 따라가서 장작이 여러 개 타는 모양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새삼 신비롭게 느껴지고, 그 주홍빛 따스한 색깔처럼 마음도 따듯해지는 기분이 든다. 시골에는 아마 한여름을 제외하고 거의 밤을 보내기 위해서는 불을 떼야한다더라.


나는 산에 와서 보이는 벤치마다 열심히 앉아서 '산멍'을 때린다. 요즘은 핸드폰에 볼거리 들을 거리가 넘쳐나서 멍을 때리는 시간이 많지 않다. 예전에 들은 얘기인데, '멍 때리는 것'이 뇌에 휴식시간을 준다더라. 뭐, 그사이 공부했던 자료 같은 것도 (마치 깊은 수면 중과 비슷하게) 뇌에서 정리하고 그런다나 뭐라나..

머리보다 엉덩이로만 공부하던 나의 경우에는, 한때 시험기간 벼락치기로 활자들을 마구 욱여넣은 적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없었던 적이 있다. 그 과목의 성적도 그리 좋지 못했다.

오히려 중간중간 쉬고, 바깥바람도 쐬면서 하는 것이 더 효율이 괜찮았다.


'물멍'은, 물 흐르는 것이나 바닷가 파도 같은 것을 보면서 멍을 때리는 것. 생각보다 많은 강물들은 오염되어서 가까이서 보면 영 운치가 살지 않지만, 멀리서 강과 바다를 보는 것도 매력이 있다. 나는 심해(深海) 공포증이 있다. 예를 들면, 수영장의 성인풀도 두려운 공간이다. 목욕탕을 주 1-2회 자주 갈 만큼 물과 친근한 것 같다가도..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물의 모습은 어떨 때면 무섭게 느껴진다. 나에게 '물멍'은, 차창 밖 흐르는 개울가에 비치는 저녁노을의 모습이나, 목욕탕에서 부글부글 끓어대는 온탕의 모양 같은 것을 볼 때 주로 적용된다.


새롭고 설레는 일로 매 순간을 채워나가는 것도 장점이 있겠지만, 익숙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는 일들을 혼자서 차곡차곡 해내면서 살아가는 순간들 속에서 나 자신과 오롯이 마주할 수 있다.

다른 누군가와 비교할 필요도 없다. 남이 잘 나간다 해서 배 아파해도 무얼 하겠는가. 그렇게 된 것이 나중의 내가 더 잘될 수도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고, 어차피 다들 수명은 제한되어 있다. 얼마 남지 않은(아마 고작 몇십 년일지도 모르는) 자신의 인생만 소박하고 부지런히 잘 살아낼 수 있다면야, 뭐 부러울 것도 시샘할 일도 없다.

나 같은 경우에는 전 직장의 사장님에게는 희소식일만한 일을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뭐 어떻게 보면 내가 지금 그 자리에 없는 게 참 다행이다 싶을 일이기도 했다. 그 희소식으로 인해, 나는 두세 배의 일을 해야 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저 홀로 있는 속에서, 무념무상의 태도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나은듯하다.

따지고 보면~ 일상생활을 유지함에 있어서도 종종 당연스레 여기는, 감사할 일들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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