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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냥이 May 17. 2022

등산로에 대한 취향 차이

J이모와 나, 내리막길과 오르막길

  아마 J이모랑 단 둘이서 산에 오른 것은 처음일 것이다.

이모는 내가 힘든 시절을 계속해서 함께 해준.. 감사한 분이다. 우유부단하고 무른 나와는 달리, 이모는 앙칼지고 단호하고, 사리판단이 빠르다.

그래도 엄마 말마따나, '시골 태생' 또는 '촌사람'이라서 그런지 특유의 인정이 있어서 엄마랑 우리 가족이랑 거의 20년가량 이웃 간 정을 주고받고 있다.


  우리 집 뒷산에는 같은 곳으로 향하는 길 중에도 갈래길이 많다. 정상의 고도는 약 330미터 정도이지만, 그곳까지 다다르는 수많은 등산로의 형태들은 저마다 다르다.

내가 일주일 중 두세 번은 오르내리는 등산로는, 아마 동남향(?)인듯한 경로인데 오전 중에 가면 따스한 햇살에 요즘같이 더운 날씨에는 숨이 헉헉 차는 길이지만, 가는 길에 나무 그늘도 많아서 한숨 돌리면서 편하게 정상 부근에 도달할 수 있는 경로이다.

  이 경로는 수많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로 구성되어 있는데, 집에서 목표지점 그리고 다시 목표지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많은 부분이 겹치는 경로이다. 그러므로 산을 오를 때는 '오르막'길이었던 곳이 다시 돌아올 때는 '내리막'길이 된다. 반대로 '내리막'길로 가볍게 내려왔던 구간은 되돌아올 때에는 약간 숨이 차오르는 '오르막'길이 된다.

그래도 경사가 아주 급한 구간은 거의 없고 있어도 급경사로 느껴지는 구간도 단시간만 오르면 금방 완만한 구간들이 나오는, 비교적 평탄한 구간이다. 그럼에도 이 경로를 걷는 것이 (나에게는) 적당한 운동이 되고, 약 20도~65도쯤 되는 것 같은 경사로를 오르내리다 보면 어느 순간에 정수리부터인가 땀이 흘러내린다.


  어제는 'J이모의 코스'로 산을 올랐다. 처음부터 정상 부근까지 지속되는 오르막길.. 평탄한 구간은 거의 없었다.

이모는 올라가는 길 거의 내내 통화 중이셨는데, 나중에야 얘기하신 것이, '갑자기 전화만 안 왔었으면 뛰어서 올랐을 건데..'라고 하셨다. 나는, '통화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라고 안도했다. 사실, 혼자 오를 때는 중간중간 몇 초 정도라도 숨을 돌리고 오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동안 '평탄한 등산로'를 타면서 알게 모르게 '오르막길을 오를 때의 숨 참'에 내성이 생겼는지 많이 헉헉대지 않고 재빠르게 움직이는 이모의 뒤를 따라 정상 인근까지 오를 수 있었다.

이모는, 내리막길도 꽤 경사가 있는 구간으로 (올라왔던 오르막길 말고 다른 구간으로) 하산을 했다.

그래도 이모 말씀에는, 같은 길로 되돌아가면 경사가 높아 무릎관절에 무리가 가니 그나마 덜 경사진 그 길로 내려간다 하셨다.


  오늘은 혼자서 '나의 코스'로 다시 산을 올랐다. 어제 이모랑 오른 길들도 다 어떻게 나의 길과 이어져있긴 하지만..  

하산할 때 어제 이모랑 내려왔던 (비교적 그늘진) 길로 들어서 보려다가.. 그냥 원래대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등산로도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 것이다. 어쩌면 성격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모는, 등산의 목적이 '운동'이므로 그에 충실하게 신체적으로 운동이 되는 코스를 선호하고..

나는, 같은 목적이지만.. 조금 널널하게 즐기는 편이라..(아마 그래서 살이 잘 안 빠지는 것일 수도 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2-3시간 천천히 등산을 하는 편이다. 그리고 오르막, 내리막, 평탄한 길이 반복되는 코스를 좋아한다. 너무 오르막만 있으면 뭔가 힘들고, 여러 구간이 적당히 뒤섞인 경로에서 평탄한 구간이 나오면 한숨 쉬어간다.


  아마.. 인생도 너무 '위'만 보고 달려가면 빠르게 결과를 도출할 수는 있겠지만..

어차피 결론은 내리막도 있는 것이고, 가끔 마주치는 내리막길도 잘 내려갈 수 있어야, 다음 오르막길을 오를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하고 또 공상의 나래를 펼쳤다.


  최근에 종영한, 좋아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인 '다큐 3일'의 고물상 편에서, 고물상을 운영하는 아저씨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인생을 알고 싶으면 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아래'를 봐야 한다.'라고..

정확히 그 언어가 '아래'인지 '밑'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동안 끊임없이 '위'만 보고 부러워하고, 건강을 간과하고 물질적으로만 풍요로워지려 했다.

이제는 '아래'도 보면서 걸어가고 싶다. 아등바등 치열하게 살아가는 많은 이들을 보면서.. 삶에 주어진 것들을 당연시하거나 게을러지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태함이 섞인 우울감 같은 것들을 좀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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