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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냥이 May 31. 2022

불합격이라도 괜찮다

오랜만의 면접

작가의 서랍 보관 일: 2022.5.25.

본문 쓰기 시작한 날: 2022.5.31.


  중고교 시절에는 아마, '수능 성적'이 곧 삶의 성패를 좌우하는 어떤 것이었고, 단지 그것을 못 봐서 삶을 포기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얼핏 들었다. (나 자신도 수능시험 전날 이런저런 걱정에 꼬박 밤을 지새웠다.)

이런 일들은 이런 체제로 인한 희생자들의 잘못이 아닌.. 그냥 그런 방식들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에서 본 성적 향상을 위해 꾸준하게 노력하는 몇몇의 모습은 멋지기도 했지만, 또 다른 이들은 옹졸하기도 했고 부도덕하기도 했다. 내가 다니던 고교에서는 학우들 간에 따돌림이 빈번했고 정원 180명 정도 중 10명 정도가 스스로 학교를 떠났다. 떠난 그들의 삶이 이후에 더 잘 풀린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억지로 그런 모순되어 보이는 사회에 자신을 죽이고 사는 일이 꼭 미래의 삶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어느 순간부터 사회로부터 거부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 일을 겪는 것이 나에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여겨지게 되었다. 음, 예를 들면 원하던 직장에서 채용에 대한 거절의 의사를 밝혀도 그에 대해 나 자신까지 부정하면서 슬픔에 잠겨 들기보다는, '뭐, 내 자리가 아니었나 보지. 더 좋은 곳이 있겠지.'하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차원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특별히 대단한 사람'이란 없고 그러니 나를 쉽사리 판단하거나 좌지우지할 사람도 없는 것이다. 사람은 다 먹고 자고 하는 기본적인 생리활동이 없으면 병들고 죽는 점에서 다 똑같다. 좋아하는 M이모가 하는 말이 있다. '00아,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그래, 설령 그 어느 곳에서 나를 싫다한들, 뭐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더 잘 맞을만한 더 나은 곳이 있으리라. 이 글의 제목은 어느 곳의 면접을 보고 나서 괜히 드는 열등감(?)과 스스로 긴장되는 마음 때문에 그 기분을 잠시 진정시키려고 브런치에 짤막하게 제목만 써두고 서랍에 넣어두었던 글이다.

사람의 일은, 어떤 과정에서는 합격이라도 이후에 신체검사 등 여러 과정들에서 어떤 변수가 생길지는 모른다. 의외로 직장에서 또는 직장 입사를 위한 건강검진에서 예상치 못한 질병을 발견하게 되는 이들도 꽤 있는 듯했다.


  그리고 나의 경우에는, 어떤 직장에 입사를 했었지만 하루 이틀 만에 해고 통보를 받은 적이 있다.

사장은 첫날부터 나의 굼뜬 행동들이 크게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그 경험은 나에게는 민망한 경험이 되기도 했지만, 그때 거절당한 경험이 이제 또 다른 거절에 대한 내성을 키워준 면에서 장점도 있다.

또한 그 경험으로써, 만약 어떤 직장에 합격해서 무난히 다닌다한들 이후에 어떠한 일들로 불가피하게 해고를 당하거나 자발적으로 퇴사를 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염두할 수 있게 되었다.


 


  고리타분한 직장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하고..  이런 내용들을 연애에 적용시켜 보면,

친한 지인은, '남자들은 다 자신만의 기준이 있어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쉽게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지난날 오랜 짝사랑으로 힘겨워했던 터라 참 공감이 갔다.

그 시절에는 '불도저처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면 계속해서 마음을 표현하고 그로부터 똑같은 답을 듣기를 바랐는데 쉽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당연히 나도 짝사랑의 실패에는 아프긴 했지만, 지금 돌아보니 너무 아파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 A가 나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또 다른 가능성이 있는 남자 B, C도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자의 입장에서는 여자 A가 나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또 다른 여자 B, C도 있다.

꼭 한 사람에게 너무 목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어떻게 사귀게 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그 상대방은 내가 원하는 만큼의 사랑이나 관심을 나에게 주지 못할 수도 있다.  

차리리 '나 자신을 위해서' 나랑 더 잘 맞고 더 관계의 발전 가능성이 보이는 다른 이성에게 노력을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물론, 나의 이십 대 시절에는 사리판단도 힘들고 감정에 한없이 휘둘리다 보니 '내가 1을 원하면 꼭 1이어야만 한다'는.. 그런 생각에 마구마구 무너져버릴 때도 있었다.



  엄마는 내게 물었다. '신체검사 결과상 안 된다 하면 어떡해?'

나는 엄마를 보고, '에이~ 그럼 더 좋지. 한 달 더 쉬면서 천천히 구하지 뭐. 너무 그렇게 한 곳에 목매면 내만 힘들다. 그럴 필요 없다.'

엄마는 날 보고, (의외라는 듯) '그렇지~'라고 하셨다.

사실, 불과 얼마 전까지의 나에게는 '한 곳(예를 들면, 시험, 수입)에 너무 집착해서' 다른 많은 중요한 것(예를 들면, 마음, 건강)들마저 무너뜨려버린 경험이 몇 번 있었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그리 반응하는 것에 의외라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른다.


  뭐, 겪어보니 역시 건강이 첫째고,

나머지는 다 부수적인 것들이었다. '남의 관심', '남의 칭찬', '남의 호감' 이런 것들은.. 삶에서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도 모르게 진심이 섞인, 즐겁고 행복한 웃음을 짓는 것', '가족과 허물없이 지내는 것', '산에서 맑은 공기를 들이켜는 것',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면서 흐르는 땀에 '살아 있음'을 체감하는 것'과 같은 것들이었다.

  음, 아무리 남에게 잘 보여봐야 뭐하나. 계속 그런 것만 추구하다 보면 왠지 괴로워질 것만 같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나 자신'. 그리고 다음으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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