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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냥이 Aug 20. 2022

반도의 흔한 목욕탕-규모 조금 있는 대중목욕탕

목욕탕에서 공상이 취미인 인프피-희석되는 텃세, 목욕탕 코스튬, 잇템

  갑자기 일이 생겼다.

타지의 한 숙박업소. 변기 물이 고작 휴지 몇 뭉치에 막혀버렸고.. 이후의 일은 상상에 맡긴다.

체크아웃은 오후 12시였지만.. 그런 일로..

여튼 다행히 인근의 목욕탕으로 가게 되었다.

  나같이 낯선 곳에 가는 것에 약간 부담감이 있으신 분들은 느끼실 수도 있는데, 여느 동네의 목욕탕에서 특히 여탕을 가면, 미묘하게 느껴지는 텃세가 있다.

  음, 특히 나같이 예민한 이들은 곧잘 느낄 수 있는데..

약간의 무례함을 덧씌운 느낌이랄까.. 그것이 텃세인지 단순 예의 없음 인지는 구분하는 것은 뒤로 하고..

오늘 있었던 일을 예로 들자면, 내가 자리에 내려놓은 바가지를 뒤에 온 옆자리 아줌마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신에게 거치적거리니 치워버린 일이 있었다.

구석자리에 그런 일까지 당하니.. 몇 분 지나지 않아 얼마 되지 않는 짐을 들고 내가 자리를 옮겼다.

괜한 실랑이를 만들긴 싫으니.

  그리고 여자들은 하루에 몇 천 마디를 해야만 스트레스(?)가 풀린다는데, 같이 온 이들은 서로 쉴 새 없이 지껄인다. 물론 나도 친한 이와 같이 오면 그리 지껄이기에 지껄이는 것 자체에 불편한 것은 아니고, 그렇게 지껄이면서 잘 모르는 남도 어떻게든 헐뜯을 조짐이 보이려 할 때가 조금 토 나오는 순간이랄까.. 나도 그들처럼 과한 오지랖이긴 하지만, 목욕탕에서 여느 아줌마들에게 몸매가 좋은 이들은 연고도 없이 숱한 시선의 대상과 뒤에서 비아냥대는 목표물이 된다.(물론 나는 아니다.)

그렇다고 심술궂게 비아냥 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당사자에게 반드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것도 아니다.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에서 1대 다수에서 항상 1의 입장이 좀 더 외롭게 느껴졌는데, 목욕탕의 입들은 고작 둘셋넷의 다수의 우위로 '우위도 아닌 우위''1인 타인'에게 배설해버리는 것이다. 여자들이 많이 모이는 집단을 내가 싫어하는 이유다. 쓸데없이 질투하고 헐뜯고 비아냥대는 게 일상이다. 자신이 한 나라의 공주나 여왕도 아니면서, 고작 몇 푼의 친분을 등에 업고 남을 씹어댄다.

일단 다크한 얘기는 여기까지. (사실 목욕 자체는 괜찮았다.)


   위에서 적은 텃세는 목욕탕의 규모가 커질수록 그만큼 방문객의 수가 많아지니 희석되는 편이다.

그래도 알음알음 얼굴을 아는 사람들은 서로 가볍게 멀리서도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아마, 내가 안경을 쓰지 않았다면 목욕탕에서 멀리서 지인이 인사해도 몰라볼 수도 있겠다.

규모가 크다 해도, 타지의 낯선 목욕탕이고 동네 목욕탕을 갈 때에 항상 구비하는 여러 자질구레한 물품도 없어서 가볍게 샤워만 할 요량으로 근처 편의점에서 제일 저렴한 여행용 세안 세트를 샀다. 그런데 목욕탕, 다소 넓은 온탕에 몸을 담그고선 바로 생각이 바뀌었다.

갑자기 때를 밀고 싶었다.

차 트렁크에 이태리타월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타워 주차까지 했고 맨몸이다. 각종 옷가지, 가방, 목욕 도구들이 즐비한 카운터가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현금은 없지만 계좌이체는 되겠지.' 카운터를 지나 먼저 락카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고 나서 당초 사려고 한 이태리타월뿐만 아니라, 머리망사두건(여탕의 잇템, 욕탕에서 흘러내리는 머리를 잡아준다)에 좋아 보여서 고민하던 차(카운터 이모가 '그거 때 잘 밀린다'라는 말에 충동구매한) 때 비누에 매실음료(사우나나 찜질방에서 주로 넣어주는 물병에 담아)까지.. (토탈 13,000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시 욕탕으로 들어와서 (생리기간 때문에) 일주일 동안 목욕을 못해서 쌓였던 때를 밀어 본다.

보통 평일 저녁 조용한 동네 목욕탕서 때를 밀 때는 자리도 넓고 편하게 미는데, 옆사람이 가까이 있으니 조금 불편하긴 했다. 그래도 그녀가 옆의 지인과 탕에 들어가는 시간과 나의 시간에 차이가 있어, 그녀가 없는 동안엔 한결 더 편하게 때를 밀었다.

참, 아까 전에 목욕용 코스튬 몇 가지를 구입했더니 뭔가 이 목욕탕의 이방인 신분에서 벗어난 기분이 괜히 든다.

나란 인간은 어디 외국에서나 낯선 도시에서, 최대한 덜 부자연스러워보이기 위해(사실 타인들은 그리 신경도 안 쓰겠지만..) 가능한 한 빨리 주위에 적응하려 하고, 그 방편으로써 관찰력을 이용한다.

  이번 목욕탕은 좀 특이했던 게, 수도 버튼을 누르면 물이 나오다가 일정 시간 뒤에 바로 끊기지 않고(체감하기에 같은 방식을 이용하는 다른 곳보다 좀 길게 나오더라) 물이 나오는 시간이 긴 만큼 눌렀던 버튼을 다시 당겨야 물이 닫히더라.(물이 나오는 게 멈추더라.)

이런 것을 곧잘 관찰하고, 마치 이 목욕탕이 익숙한 것처럼 굴어야 불편하게 느껴지는 은근한 텃세가 좀 덜해지기라도 할 것처럼..

흔히 어떠한 가게 등에서 사람들에게 보라고 붙여놓은 안내문구 같은 글귀는 무시당하기 십상이라지만, 나는 소심한 성격 탓, 과하게 주위에 관심이 많은 탓에

이것저것 그런 안내 글귀뿐만 아니라 대형 목욕탕에 흔히 보이는 자잘한 신문기사 따위에도 시선을 두는 편이다.

  어딜 가나 처음 그곳을 마주한 이에게 세심하거나 따끔하게 주의를 주는 문구는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나 같은 경우 낯선 타인(이 경우엔 목욕탕 관리인)에게 나도 모르게 어떠한 지적을 받는 것보다 내가 스스로 그곳의 규칙 같은 것을 찾아보고 되도록이면 사람과의 자잘한 실랑이를 줄이려고 한다.

그냥 어떤 사람의 신경질적인 모습이 내게는 스트레스인 것.


  그래서 되도록 짜증을 내는 타인에게 나도 똑같이 짜증을 내지는 않으려 하고, 그 사건 자체를 그냥 무시하고 잊어버리려고 하는 편이다.


  운전을 하는 경우, 골목길에서 속도를 내고 싶은 뒤차가 빵빵거리고 속된 말로 00을 해도, 나는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속도로 간다.(결국 조금 앞 정지선의 1차선에서 2차선의 나보다 뒤에 서 있는 그 차량을 보고는.. 어이가 없었다.)

물론 화가 나서 손가락 욕을 하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시선이 닿지는 않게 한다. 왜냐하면 더 큰 분란이 생기는 게 더 큰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조수석의 냉혈한 남자 친구는, 이런 상황에서 서슴지 않으려 하지만.. 오히려 내가 말린다. 더 싸우는 게 나한텐 더 피곤한 거라고 하면서..


  다시 목욕탕 얘기로 돌아가서-

나는 목욕탕에서 사람들을 관찰하거나 (이에 흥미가 떨어지면) 멍 때리면서 혼자 공상하는 게 제일 재밌다.

완전 쓸데없는 공상이지만, 그 순간엔 내가 진정 나이고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운 순간인 것 같다.


  요즘엔 사람 없는 시간에 가서 조용히 목욕을 하고 오다 보니, 한동안 목욕탕 이야기는 안 썼는데 오늘은 탕만 5개 정도 있는 다이나믹한 목욕탕에서 많은 사람들을 보고 오니 뭔가 글이 쓰고 싶어져서 잔뜩 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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