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아무 계획이 없는 날이 오히려 편하다

먹을 계획 한 두 개 정도 빼고

by 박냥이

등산 초입부터 온전하게 집중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금방 지쳐버릴까 봐, 핸드폰을 더 많이 보고 오르니 영 산을 오르는 것 같지가 않다. 역시 중간중간 특정 벤치에 앉아 잠시 보는 게 낫다. 다시 또 온 가장 좋아하는 고요한 등성이.

어제 생일이어서 평소보다 너무 많은 이들과 연락을 주고받아 지쳤는지, 다소 늦게 든 잠이 문제인지, 곧 있을 생리 때문인지... 오늘은 아침부터 지친다.

아, 아마 일을 쉬고 항상 부족한 재정상태 때문일 수도.

그렇다고 지난번처럼 너무 섣부르게 직장을 구하고 싶지는 않다.

어제 어머니가 물으셨다. "내일은 뮈할거니?"

순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지만 막막하기보다 편했던 것 같다. '아~ 얼마 남지 않은 백수 생활이 이리 좋다니까~'

산에 와서 멍 때리고 있을 때가 제일 좋다. 간간이 허기가 몰려오지만 챙겨 온 물로 달래니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흠냐~ 언제 내려갈지도 계획이 없다. 특정 시간 안에 특정 지점까지 올라가야 할 의무도 없다. 오르고 싶을 만큼 내 속도로 오르고 내려가고 싶을 때 쉬엄쉬엄 내려간다.

저녁엔 치킨을 먹을 예정. 어제 받은 기프티콘의 사용법을 예습해보기도 한다. 거짓말 같지만 거의 매일 아인슈페너가 먹고 싶다. 이런~ 직장인일 때는 그나마 '아아'중독이었는데, 백수 신분에 무슨 아인슈페너 중독이래~ 본전도 안 나온다.

마치 돈 먹는 하마 같이 비자발적 백수라도 돈 들어갈 곳은 많다. 주위 사람들이 고생이다. 그래도 근 3년 만에 제대로 쉬어보고 싶어서 조바심 내진 않기로 했다. 공기가 안 좋지만 산속에선 조금 견딜만하다. 누구의 간섭도 없기에 오히려 편하다. 아무리 백수라고는 하지만, 넷플릭스 보며 누워있기만 할 때보다 산에 앉아 쉬는 게 눈도 머리도 덜 아프다. 이런 백수에게도 다이어트란 숙제가 있지만, 역시 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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