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5년 전, 중학교 시절의 추억들
더 잊어버리기 전에 써보는
이제 서른이다. 학창 시절은 머나먼 추억이 된 지 오래다. 그래도 유치원 시절부터 계속 같은 동네에 살고 있어서 가끔씩 추억이 떠오를 때가 있다. 동네 거리를 걷거나, 초등학교나 중학교 근처에 가거나, 버스를 타고 지나갈 때 마치 내가 두 명인 듯,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교차할 때가 있다.
중학교는 집에서 가까운 곳이 아닌, 좀 더 공부하기 좋다는 여자중학교로 진학했다. 버스로 15~20분, 그때 왕복 2차선이던 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매번 거기서 정체가 너무 심해서 시간이 두세 배로 걸리곤 했었다. 아마 직장인들의 출퇴근 시간과 맞물렸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은 아마 왕복 6차선으로 넓혀진 상태이다. 그 시절에만 해도 우리 동네에는 사람들이 꽤 많이 살았고, 종점 부근인 우리 집 근처에서 출발한 버스는, 남자중학교 쪽 마을과 시장을 거쳐서 여자중학교 근처까지 갔다.
우리 집에서 남자중학교까지는 더 편리한 노선이 있었지만, 거의 매일 학교 가는 시간대의 버스에서 다수의 남학생들과 마주쳤다.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 시절에 은근히 설레는 것도 있었던 것 같다. 이성친구들과 같이 버스를 타면, 외모에 그렇게 관심이 없던 나였지만 남자 중학생들의 시선들에 조금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이윽고 버스가 학교에 도착하면, 약 300미터 정도의 골목길을 내려가야 학교 정문에 도착했다. 중학교 바로 앞과 뒤에 각각 여자고등학교와 (평판이 좋았던) 남녀공학고등학교가 위치해있었다. 아마 고등학생들과 체육시설 중 일부를 공유해서 쓰기도 했었던 것 같다.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친구들은, 1/3~1/2 정도만 그 여자중학교에 함께 진학했고, 여러 명의 새로운 얼굴들도 많이 보았던 듯하다.
그 시절에 배치고사였던가. 우연찮게 1등을 해서 의지와는 상관없이 교내의 많은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얼굴과 이름이 알려졌었다. '전교 1등'이란 타이틀은 어떤 면에서는 참 편한 것이었는데, 그다지 대인관계에 능숙하지 못한던 내게, 먼저 알은체를 해주는 친구들이 많았고, 나도 누구든 가리지 않고 '안녕'이라고 하기가 편했다. 중3시절에는 아버지의 교통사고로 어머니가 집을 비우시고, 아마 그 허전함 때문이었는지 밤새 메이플스토리를 한다고 성적이 좀 떨어졌다. 졸업 시에 내가 성적우수상을 받지 않는 것을 보고 몇몇 친구들이 '니가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크게 욕심이 나진 않았던 듯하다. 중3 담임선생님께서도, 부모님께서도 '마지막까지 열심히 했어야지'하고 핀잔을 주시기도 했다. 그래도... 그 시절에 메이플스토리는 뭔가 나의 유일한 숨구멍 같은 느낌이었달까.
중학교 바로 뒤에 위치한, 비교적 지역 내에서 평판이 괜찮은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도 있었지만, '좀 더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 공부하고 싶다'라는 '이후에 엄청 후회한, 다소 무모한 생각'으로 타지의 기숙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이에 대해서는 추후에 써보려고 한다.
다시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서, 나의 친구들은 크게 두부류로 나뉘었는데,
1) 만화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오타쿠(?) 기질이 있는 성적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친구들과,
2) 성적에 연연하며, 어쩌면 내가 1등할 때마다 속으로 질투를 했을, 그런 친구들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3명의 여자 무리에서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친구들에 대해 조금 힘들었던 나는, 특히 '여자 친구'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그리 기대하지도 집착하지도 않는 편이었다.
그래서 내가 편한 대로 1의 친구들과, 2의 친구들을 오가면서 점심식사도 여기서 했다가 저기서 했다가 편한 대로 했었던 것 같다. 당연히 마음이 편한 곳은 1의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었지만, 2의 친구들도 꽤 재밌는 부분들도 있었다. 개중 전교 2등이었던 친구와는 서로 이상한 별명을 지어서 부르기도 했었다.
나는 자만이나 우월감은 접어두려고 하고 가리지 않고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놀았었다.
뭐, 성적이 그리 대단한 건가 싶을 때도 있었고, 전교 2등 친구가 대놓고 시샘을 하거나 빈정거리는 말을 쏘아올 때도 그냥 능글맞게 지나갔었다. 예를 들면, 버스정류장에서 수첩으로 암기과목을 공부하던 내게 2등이, '야, 여기서도 공부하냐'라고 하면, 시답잖은 농담으로 친구의 긴장을 풀어주면서 같이 시시덕거렸다.
그리고 체육시간에는, 소위 '날라리(?)'라고 불리던 친구들과도 잡담을 주고받으면서 특별하게 그들에게 거리를 두려하진 않았다.
선생님들의 시선은 조금 버거운 감도 있었던 게, 저마다 기대치도 있으셨을 테지만, 특히 수학선생님은 많이 부담스러웠다. 항상 얼굴이 반지르르하시고 뭐랄까... 귀공자 이미지를 스스로 뽐내시고 마치 자신이 왕자인 것처럼 행동하시던 선생님이셨는데, 날라리지만 이쁜 아이들에게는 짓궂은 장난도 많이 치셨다.
게다가 수학천재를 찾는 것 같았는데, 나는 수학에는 유독 젬병이었고, 그나마 교과적인 수준에서 전교 1등을 했던 것이지, 그 선생님이 원하는 '올림피아드 금상'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그리고 외모도 그저 '뚱뚱한 안경 쓴 돼지'였으니... 아마 그 선생님 입장에서는 그다지 마음에 안 드는 전교 1등이었을 수도.
여중을 다니면서 외모에 특별하게 콤플렉스를 느끼진 않았지만, 남자 선생님들의 조금은 예민하게 느껴지는 그런 체벌이라든가, 분위기를 통해서 예쁜 여자 친구들을 대강 인지는 하고 지낸 것 같다.
중3 담임선생님은 국사선생님이셨는데, 내가 마지막에 성적우수상을 타지 못한 것에 대해 꽤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셨다. 선생님은 선도부장이기도 하셔서 유독 태도나 복장이 불량한 친구들에게 엄격하셨다.
생리대를 너저분하게 두는 친구들에게는 경고성으로 '화장실에 일장기 펼쳐놓을래'라고 엄포를 놓으시기도 하셨다. 그 외에, 쌍화점의 주연배우 조인성을 좋아하시던 여선생님도 계셨고, 항상 물먹은 과목이었던 음악을 가르치시던 우아한 여자 선생님도 기억이 난다.
그래도 그 시절이 행복하게 기억되는 것은, 이후에 이어진 고등학교 시절보다 훨씬 다양한 친구들이 있었고, 성적에 목매지 않는 저마다의 취미를 가진 친구들도 많았고, 성적으로 경쟁하더라도 서로를 별명으로 놀리던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는 남녀공학이었으나 3학년 때는 분반이 되었고, 여자만 있는 학급이 되었지만, 그때는 여중시절과는 많이 달랐다. 전국서 공부 좀 한다는, 머리가 좀 더 커진 이들은, 대놓고 서로를 까내리기도 질투하기도 시기하기도 했고, 내가 잘되는 것이 중요했지 남이 잘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진정한 우정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저 쟤를 밟고 올라가서 어떻게 더 좋은 이름의 대학에 들어갈까... 이런 생각으로 점철된 고등학교 시절에 비하면, 중학교 시절은 나에겐 황금 같은 시간이었고, 마음 한편에서는 그 친구들과 같이 바로 뒤의 고등학교에 갔다면, 아직까지 남은 '학창 시절 친구'가 되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뭐, 그 고등학교에서도 중학교 시절보다는 성적 경쟁이 치열해졌겠지만, 적어도 내가 선택했던 고등학교에서만큼은 아니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