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콤플렉스
허스키한 여자 목소리에 얽힌 웃지 못할 일들
아마 성대가 후천적으로 발달하는 거라면, 어느 정도 나의 탓도 있다. 기억에 있는 한자릿수 나이 시절에 마냥 여성스럽게 굴지 않았다. 또래 남자아이들과 인라인스케이트랑 자전거를 타고 놀았고, 만화영화 역할놀이에서는 구슬 동자의 블랙봉, 디지몬 어드벤처의 태일이와 매튜를 담당했을 정도로, 공주틱(?)한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친한 친구 중에 확연한 차이가 나는 비교대상이 있었다. 그 친구는 레드봉과 미나를 담당했으니... 게다가 나와는 달리, 거의 모든 놀이에서 공주대접을 받길 바랐다.
이런 행동이 성대에 영향을 끼쳤는지, 나는 흔히 허스키하다 말하는, 목소리를 가진 여자 사람이다.
이런 목소리에 콤플렉스가 있냐 하면 있다 한다.
올해 서른인데 약 15년 전의 일도 잊혀지지 않으니 콤플렉스라 할 자격이 있다 본다.
스토리는 길지 않다. 늘 그렇듯 중학교 하교시간,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귀가하고 있었고, 자리가 없었는지 운전석 바로 뒷좌석 부근에 다들 서 있었다.
운전기사의 귀에 내 말소리가 희한하게 들렸나 보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여자 목소리가 왜 그래요?'이런 뉘앙스의 말을 듣고, 애써 기분 나쁜 티를 내진 않았지만 속으로 상처받았던 것 같다.
이후 지금으로부터 6,7년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실습장소에서 상대방에게 무엇에 대해 설명하는 중, 옷차림이 튀는 아줌마가 내 말을 듣다 말고, 깔깔거리며 '목소리가 왜 그러냐'라고 한 것이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별다르게 대꾸하진 않았다.
실습생 신분이기도 했고. 그저 무시로 일관하는 게 편했다.
실습장소의 담당자님은 보다 더 자상한 성격을 가지고 계셨고 내가 무안하지 않게, '난 네 목소리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건네주셨다.
순간 처졌던 어깨가 그 말 한마디에 다시 힘이 났다.
이런 일들, 아마도 앞으로도 웬만해선 잊혀지지 않을 일을 겪고 나니 목소리에 자신감이 없어졌다.
이후 직장에서는 의도적으로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소개팅 어플을 할 적에는, 누군가와의 통화가 그렇게 부담스러울 수 없었다. 그나마 통화할 정도로 관계가 발전했던 이들은 목소리 콤플렉스가 있다는 나에게, 듣기 좋은 칭찬을 해주긴 했지만.
이후 직장에서 수많은 사람들,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상대하면서, 이런 마음의 짐은 조금 덜어졌다.
어르신들은 목소리가 여성스러운 것보다 알아듣기 쉽게, 큰 목소리로 설명해드리는 것을 더 원하는 듯했다.
몇 번씩 마주쳐 얼굴이 익은 사람들은 나에게 무엇이 이상하다고 말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받아들여주셨다.
아마, 나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내뱉었던 그들은, 비록 나보다 나이는 많았지만 그들이 나보다 한참 어릴 적에 똑같이 나이가 많은 그 누군가로부터 말로 상처를 받은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생을 살면서 그렇게 가벼운 말의 화살을 쏘아대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내 주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이제 내가 그만큼 만만한 나이가 아니어서, 이전보다는 인상이 마냥 좋진 않아서 일수도 있다.
뭐, 어쨌든 갈수록 무례한 사람을 덜 마주치니 좋다.
거기다 나를 감싸고 보호해주는 많은 사람들도 있으니.
혹여 다시 그런 일을 당한다 해도 그냥 새똥 맞았다 생각할 것 같다. 새똥은, 빨리 씻어내야지 계속 두면 지우기 힘들다.
참, 그러고 보니 목소리에 대한 칭찬도 한번 들어본 적이 있다. '목소리가 이상하다', '목소리가 왜 그러냐'하는 말과 달리, '목소리가 특색 있어서 누굴 가르치는 일을 하면 어울릴 거 같아요'라고 말해주셨던 이름 모를 아주머니들.
기분 좋은 말을 해주신 그분들께도 기분 좋은 말들이 많이 들려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