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런던 여행하기
아침부터 밖이 어둡다.
비가 많이 오는 것 같은데, 오늘은 어떤 외출을 해볼지 걱정부터 앞섰다.
아이와 여행하면서 점점 더 계획형, 다들 이야기하는 강력한 엄마 J가 돼 간다. 어쩔 수 없다. 내가 틀리거나 잘못 결정하면 아이는 실망할 것이고, 난 괴로워질 테니 미리 준비하고 대안까지 생각해야만 한다.
비가 오는 아침, 왠지 뜨끈한 수프가 생각났다. 환하고 깔끔한 도심의 카페 말고, 역사도 느껴지고 아늑한 나무가 많은 인테리어로 된 그런 맛집을 찾아가고 싶어졌다.
구글로 찾아본 경로, 10번은 넘게 이래저래 골라보는 경로들...
엄마여서인지 내가 J여서인지는 모르지만, 머릿속은 일정에 대한 시뮬레이션으로 가득 차있다.
머리에서 김이 폴폴 날 것 같았다.
오늘은 템즈 강을 건너 테이트 모던에 가보자! 비 오는 템즈를 걸어보자꾸나.
비가 많이 오니 방수되는 신발을 신고 우산을 쓰고 단단히 준비하고 밖을 나섰다.
그전에 우리는 따뜻한 브런치를 먹으로 오랜 역사가 느껴지는 The Delaunay counter를 찾아갔다.
브런치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클래식한 카페였는데, 점심이 되기 전 시간이라 한가로운 분위기여서 더 좋았다.
주룩주룩 비가 오는 어둑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면서 음악을 들으며 카페에 앉아있는 것은 그저 행복이었다.
먹고 싶은 게 참 많았고, 다 시키기로 했다!
키 크고 굵직한 영국 말씨를 쓰는 웨이터 아저씨가 친절하게 서빙해 주는 덕에 아이는 새침하게 신이 나서 주문을 해보았다.
* 욕심껏 시킨 메뉴들
-나: 크림소스가 얹어진 버섯(Wild Mushrooms on Sourdough), 가지구이(Aubergine Schnitzel),
-딸아이: 파스트라미 샌드위치 (Pastrami & Mayfield Swiss Cheese), 치즈 케이크 (Baked Vanilla Cheesecake) 그리고 아이스 초코 (Ice-chocolate)
오전 11시 반 이후로 되는 음식들이 있었는데, 가지 구이가 그중의 하나였다. 기다렸다가 시켜서 먹고야 말았다.
순삭으로 없어졌는데 꽤나 기름기가 많은 튀김의 느낌이었으나 배고픈 나머지 싹싹 긁어먹었다.
평소 같으면 많이 먹지 않을 스타일의 요리였지만, 비가 오는 쓸쓸함에 허기가 몰려와 맛있게 먹었나 보다.
런던에 간다면, 클래식한 브런치와 진득한 크림수프가 그립다면, 가보길 추천한다.
언젠가부터 아주 깔끔하고 하얗고 딱 떨어지는 느낌의 딱딱한 의자가 있는 카페는 차갑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오히려 오랜 경력으로 서빙하신 분들이 친근하게 말 걸어주는 전통이 있는, 오래된 맛집이 훨~씬 좋아졌다.
그런 의미에서 The Delaunay counter는 딱 내가 찾던 곳이었다. 추천~하고 싶은 곳!
테이트 모던을 가려는 목적은 사실 여러 가지였다.
천장이 무척 높고 구조가 신기한 미술관 공간이 주는 매력이 있고, 찾아가는 길에 걷게 되는 다리, 그. 리. 고 비 오는 템즈강이 그 이유가 된다.
자유로움과 여유가 느껴지고 동시에 역사가 느껴지는 좁은 강이 템즈강에 대한 나의 느낌이다.
한강처럼 넓지는 않지만, 길게 뻗어있는 강 주변으로 런던의 주요 건물들이 보이고, 그 강변을 걸을 때 느껴지는 감정은 낭만이 섞인 찐득한 뭉클함이었다. 이 도시에 내가 와있구나 하는 묘한 뿌듯함?
강변에서 헌책을 파는 벼룩시장이 열릴 때면 마치 내가 지식인이 된 듯한 착각도 들었었다.
하지만 오늘은 비 오는 날씨에 아이와 함께 하니 가이드 모드로 부지런하게 미술관으로 안내했다.
샘이 보였다. 아이도 알고 있는 샘. 신기했다. 이제껏 아이와 미술관에 다니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경험인데, 처음으로 아이가 책에서 봤다고 먼저 알아보는 작품이었다.
뭔가 흥미를 갖고 보는 것 같아서 내심 뿌듯했다.
하루 일정이 빠듯할 필요는 없지.
분위기 좋은 브런치 카페에서 데이트하고, 미술관에서 천천히 여유지게 작품보고~
비 오는 하루, 아이와의 고즈넉한 런던 데이트로 충분히 채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