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01] 혼자가 좋은 강릉 봄여행 : DAY1, 하나
이 여행기는 2021년 3월 말에 떠났던 것으로, 현재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행지는 강릉을 중심으로 차로 1시간 내 이동할 수 있는 많은 지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방역과 지역별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며 여행하였습니다.
2020년 내 인생의 큰 변화를 겪은 나는, 2021년 2월 정든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게 마치 유행과도 같았던 '번아웃'이었든, 아님 새로운 나를 일깨워 줬던 운명이었든 간에 날 다시 다독거릴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여행 가고 싶다'라는 막연하고도 지루한 생각만 했다.
일상생활에 '훅' 끼어든 코로나 때문에 여행이라는 삶의 휴식과도 같았던 희망의 단어가
이젠 진짜 희망이 되어버린 탓에 더더욱 여행에 대한 열망은 슬금슬금 커져만 갔다.
나는 적절한 여행 시기를 찾기 위해 코로나 확산 세나 심각성을 모니터링하고 있었고,
조금씩 상황이 나아져 가던 2021년 3월의 어느 날 밤 결정했다.
'까짓 거 떠나자! 뭐 어찌 되겠지'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모든 일이 항상 그렇듯 결정이 어렵지 시작하면 별 것도 아니다. 특히 여행의 경우는 더더군다나 그렇다. 흔히 뜬금없이 계획 없이 떠난다고들 많이 하지 않나..
그렇지만 곰곰이 돌이켜 보자. 계획이 없었을지언정 이유가 없지는 않았을 거다. 회사 출장으로 여행을 가든, 신혼여행을 가든, 가족 혹은 연인과의 여행.. 아니면 지금처럼 무작정 떠나는 여행이든..
이유 없는 여행이란 없다.
특별한 꼬리표가 없어도 그것 자체가 삶의 쉼과 휴식이기에...
강릉을 여행지로 선택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강릉은 나에게,
그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내 인생에 고민거리를 툭 던져놓고 돌아왔던,
젊은 날의 추억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기억 속 창고 같은 곳.
그래 강릉은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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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꽤나 흘러간 세월에 이젠 아련하게만 느껴지는 그곳, 그리고 그 추억에 가슴이 두근댄다.
'얼마나 변했을까?, 예전 그곳은 그대로 있을까?'
'좋은 호텔들도 많이 들어섰다지?'
'오래전 이곳으로 이사 온 보고 싶은 친구는 잘 있겠지?'
설레는 마음을 잠깐 동안 추스르며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추운 겨울이 지나갔지만 그래도 강원도 바람은 살을 에이게 할 것이 분명하니, 두꺼운 외투도 챙기자. 목도리도 하나 넣고... 혼자 가는 여행에 짐이 점점 많아진다.
"짐은 반으로 줄이고, 돈은 두배로 가지고 떠나라"
예전 대학 교수님이 여행에 관한 '진리'라 하시며 말씀하신 게 기억난다. 하지만 항상 후회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리바리 챙기게 되고 어느새 짐은 솜사탕처럼 불어나 있다. 노력해도 잘 안 되는 것 중에 하나다.
기다려! 우리 곧 만나자~!!
강릉을 가는 길에 꼭 들려야 할 곳이 있었다.
지금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20여 년째 잠들어 계신 곳..
한동안 여기에 오지 못했었는데, 어쩌면 코로나가 좋은 핑곗거리였던 것 같기도 하다.
오랜만에 온 아버지 산소는 마치 버려진 무덤처럼 온갖 잡초와 가시덩굴이 가득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나쁜 자식, 아들이 된 것만 같았다. 한참 동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후회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교차되어 숨 가쁘게 머릿속을 지나간다.
하늘도 노하셨는지, 잔뜩 흐린 하늘에 주르륵 빗방울이 내 어깨를 두드린다. 멍하니 산소를 바라보다 가지고 온 담배와 커피를 꺼내어 산소 옆에 놓았다. 아버지는 생전에 말보로 레드와 커피를 무척 좋아하셨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내려오는 길에 관리사무소에 들려 산소 정비, 일명 '떼'를 입히고 보수해달라고 부탁했다. 꽤 높은 가격임에도 더 좋은 옵션은 없냐며 제일 좋게 해달라고 몇 번이고 당부했다.
그렇다고 미안하고도 안쓰러운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미안해, 아빠. 앞으로 자주 올게. 아빠를 잊은 게 아냐..
(다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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