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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K-Pop 명곡 II, 백스물아홉

아카시아 아가씨, 빛과 소금 : 4집 - 1994

by Bynue

숨은 K-Pop 명곡 전체 듣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LlxikA5wuioeKnEXE1vbD93Gr_Basdrd


감자탕에
감자가 별로 없네!


뭐? 감자?
많기만 하구만!


그리고 난 '씨익'하고 웃었다. 뭔가 눈치챈 듯 어이없어하는 친구의 표정을 즐기며...


얼마 전 이미 성큼 다가와 버린 봄날씨에 조금 거만해졌는지, 얇디얇은 점퍼하나만을 걸치고 친구와의 저녁 약속에 나온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온몸을 찌르는 매서운 칼바람에 넉다운이 된 나를 보며 친구는 '오랜만에 감자탕?'라고 물었고, 뭔가 이 추위를 중화시켜 줄 뜨끈함이 필요했던 나는 '최고지!'라고 답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일상적 '사실'이 왜곡되거나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의 무지함에 적지 않은 당혹감을 느낄 때가 있는데, 그런 면에서 '감자탕'은 참 좋은 예가 아닐까 생각한다.


감자탕의 감자는
돼지 등뼈사이에 있는 고기(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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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황작물 감자가 많이 들어간 감자탕(왼쪽), 감자없이 감자만 있는(?) 감자탕(오른쪽)


감자탕의 감자는 '돼지 척추뼈 사이에 있는 쫄깃한 고기(척수)'를 뜻하는 것으로 우리가 흔히 부르는 구황작물인 '감자'와는 전혀 다른 음식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감자탕에는 돼지뼈 이외에도 큼지막한 감자알들이 함께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충분히 오해할 만도 하다.


어쨌든 잠시 마치 21세기 위대한 지식인이 된 양 어깨의 힘 '으쓱', 미간에 주름 '팍팍', 안경을 '들었다 놨다' 하며 감자탕의 유래에 대해 친구에게 설명하는 것도 나름 일상의 재미난 활력소를 준다. 물론 내 놀림 섞인 강연을 어느새 듣기 싫어하는 친구의 찌푸린 얼굴을 보는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아카시아 나무가
아카시아 나무가 아니라고?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감자탕'과 같이 흔히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상식'이 또 뭐가 있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는데, 바로 머리속에 떠오른 단어가 오늘 소개할 숨은 명곡과도 관련이 있는 '아카시아' 나무이다.


흔히 한국에서 '아카시아'라고 불리고 있는 '아카시아'는 실제 '아카시아' 나무와는 다른 '아까시' 나무이다. 같은 콩과이긴 하지만 호주 원산의 '아카시아'는 실거리나무아과고, 미국 원산인 '아까시' 나무는 콩아과이다.


아까시나무가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왔을 때, 일본이 잘 못 표기하여 부르던 명칭을 그대로 따른 것이고 일본도 이후 잘못된 이름을 '니세-아카시아(가짜 아카시아)'로 바꾸어 부르게 된다. 한국도 이를 바로잡기 위해 기존의 이름과도 비슷하고 실제 까시도 많기 때문에 새롭게 작명한 이름이 "아까시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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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미국 원산 '아까시' 나무, 오른쪽이 호주 원산 '아카시아' 나무


어쨌든 본명은 '아까시' 나무이지만, 아직까지 '아카시아'가 우리에게 익숙한 까닭은 상처 내기 싫은 어릴 적 아름다운 추억이 함께 하기 때문일 것도 같은데, 수십 년 이상 우리 아이들의 입에서 불려 온 동요 '과수원길'에 등장하는 아카시아 가사만 봐도 당장 그 시절 그 풍경이 바로 어제의 일들처럼 머리속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건 나 혼자만 느끼는 감정은 아닐 듯하다.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 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 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생긋

아카시아 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 길


저 노래의 아름다운 가사를 '아까시' 나무로 바꾸는 건 상상할 수 조차 없는 대재앙과도 같다. 그러니 가끔은 '그러려니', '눈치껏', '은근슬쩍' 사실을 외면하는 기술을 부리는 것도 우리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할 수 있는 지혜가 될 수 있다.


'과수원길'이 아카시아를 노래한 동요의 대표주자라면, 나이가 들면서 접하게 된 아카시아 노래가 있는데, 바로 오늘 소개할 백스물아홉번째 숨은 명곡, 장기호 작사/작곡, 빛과 소금 편곡/노래의 '아카시아 아가씨'이다.


https://brunch.co.kr/@bynue/83


https://brunch.co.kr/@bynue/168


숨은 명곡 시리즈에서는 이미 빛과 소금과 관련하여 스물여섯 번째로 소개한 '조바심', 빛과 소금의 멤버였던 장기호가 낸 솔로앨범 Kio 1집에 실려 백여섯번째로 소개한 '왜 날?'이 있는데 오늘 소개할 '아카시아 아가씨'는 1994년 발매한 4집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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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발매된 빛과소금 4집의 앨범 표지 및 속지


이 앨범은 전작과 비슷한 빛과 소금의 음악적 방향성과 그 결을 같이한 앨범으로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진 곡은 없었지만 타이틀 곡인 '오래된 친구'가 비교적 사람들에게 익숙한 노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후 재결합을 통해 지금까지 너무나도 훌륭하고 멋진 음악들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는 그들이지만, 당시엔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멤버였던 장기호가 미국 버클리 음대로 유학을 떠났기에, 그들의 활동은 중단되었고 잠정적인 해체의 수순을 밟게 된다. 그러니 어쩌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들의 전성기의 마지막 앨범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적당히 몸을 살짝씩 흔들 수 있는 미디엄 템포로 빛과 소금만의 서정적이지만 감각적인 연주로 시작되는 노래는 특유의 비음과 더불어 바이브레이션과 같은 큰 기교 없이 툭툭 내던지듯 부르는 매력적인 장기호의 보컬을 맞이하게 된다.


특히 중간중간에 들리는 기타 세션의 수준 높은 일품 연주가 귓가를 즐겁게 하는데, 이는 국내 '펑크 마스터'인 한상원의 작품이다. 흥겨운 멜로디와 가사를 따라 후렴구에 진입하면 뭔지 모를 너무나 익숙한 가사와 멜로디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데, 이는 80년대 '여자들만을 위한 껌'으로 유행했던 해태 '아카시아 껌'의 CM 송의 멜로디와 가사를 리메이크했기 때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q1q0jJ-t7uM


원곡인 아카시아 껌 CM송은 지난 백 한 번째 숨은 명곡의 주인공인 김도향이 작사/작곡한 노래로 실제 아카시아 껌 판매나 대중적 인지도를 끌어올리는데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https://brunch.co.kr/@bynue/163


다만, '아카시아 아가씨'를 만들면서 작곡자인 장기호는 단조(마이너)였던 원곡을 장조(메이저)로 바꾸는 재미있는 시도를 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 곡이 굉장히 익숙하지만 보다 경쾌하고 흥겹게 느껴져 마치 새로운 노래처럼 들리는 결과를 낳은 듯 하다.


장단조의 변화만으로
느낌이 참 다르네~!


어느 날 문득 길을 걷다, 익숙한 향기에 뒤를 돌아보게 될 때가 있다.


"아니 왜 마음이 이리 두근대는 거지?"


모두 머릿속에서 지웠다고 자신만만했는데,

이렇게 무심코 전해지는 그녀의 향기에 무너져 버린 단단했던 내 맘은 어찌할 수 없나 보다.


세상에 같은 향수나 샴푸를 쓰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아서, 이번에도 그냥 비슷한 사람일 꺼라 애써 단정해 보지만, 난 그녀인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참 바보같이도...


혹시 아카시아 꽃이 피는 5월이 오면 그 향기와 함께 그녀도 다시 돌아올까?




아카시아 아가씨

빛과 소금, 4집 - 1994


작사 : 장기호

작곡 : 장기호

편곡 : 빛과 소금

노래 : 빛과 소금


내 곁을 스쳐 지나간 어느 소녀의 내음이

코끝에 남아 있는데 내 맘을 흔들어


한번 마주친 얼굴이 기억 날리도 없는데

두 눈을 가만히 감고 그녀를 생각해


아름다운 아가씨 어찌 그리 예쁜가요

아가씨 그윽한 그 향기는 뭔가요


나도 몰래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네요

아가씨 내 맘을 흔들어 놓았죠


그대 지나가고 걸음 멈추고

뒷모습만 보여 안타까웠죠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노래로 바로 이어집니다.)

https://youtu.be/6BtEDtzYi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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